그들도…
* 이 글은 나의 부모님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를 어머니의 시점에서 서술하는 이야기입니다.
심리적인 묘사 또한 들은 바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1964년 OO도 산골마을. 가난하지만 성실한 광부 아버지의 맏딸로 태어났다. 내겐 5명의 동생들이 있었기에 공부는 사치였고, 일찍이 타 지역에서 안잠을 살았다. 19살, 서울의 한 일터에서 그를 만났다. 부리부리하고 총기 어린 눈매에 날렵한 몸, 낭랑한 목소리, 추진력까지 있었던 그에게 마음을 뺏겨 연애를 시작했다. 이후 서울살이를 같이하던 나의 동생이 그의 존재와 우리의 관계를 나의 어머니에게 전했다. 보수적이었던 그 시대에서 우리의 관계는 자연스레 결혼으로 이어졌다.
가난한 집안의 여자와 더 가난한 집안의 남자.
그렇게 20살이 되던 해에 사랑하나만으로 미래를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지독했다. 신혼집은 반지하 단칸방 월세였고, 그에게는 남편과 별거 중인 젊은 ‘홑’ 어머니가 있었다. 별거사유는 아버지의 외도이며, 심지어 그가 아주 어릴 적부터 그랬단다. 동생이 둘이나 있던 그는, 강제로 가장이 되어 학교대신 생계전선으로 향했다. 그 치열함 탓이었을까? 매사에 예민했고, 의심과 화가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의 큰 눈망울 속에 감춰진 슬픔부터 보였기에 안쓰러웠다.
젊은 ‘홑’ 어머니는
그에게 상당 부분을 의지했다.
자신의 남편처럼 여기며 정신적으로도 기대 왔던 모양이었다. 그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나의 존재는 '버릴게 똥밖에 없는 금쪽같은 맏아들'을 뺏어간 사람으로 봤다. 모든 것을 마음에 안 들어했다. 수시로 찾아와 잔소리는 물론이고, '그녀의 뇌피셜'로 꾸며낸 말들을 그에게 전달했다. 나는 늘 나쁜 X이었다.
분명 대충 들어봐도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이었다. 하지만 홀로 자신을 키워낸 어머니가 한 말의 힘은 난공불락이었다. 오해라는 나의 말은 그의 귓등에서만 맴돌아 보였다. 예뻤던 그의 큰 눈은 어느새 내게 쌍심지를 켠 채로 매일을 화만 냈다.
어떤 날은 본인의 화를 도저히 참지 못했는지 살림살이까지 집어던졌다. 한번 던지니 그다음에는 툭하면 던져댔다. 가난도 힘들었지만, 매일을 오해로 화내는 남편을 받아주는 게 미친 듯이 억울했다.
그 와중에 금세 첫 아이를 임신했다. 물론 시어머니는 그조차 마음에 안 들어하셨다. 큰 보름달이 예쁘게 차오르던 추석쯤, 만삭의 몸으로 쪼그려 앉아 찬물로 나물을 박박 씻던 중 진통이 왔다. 아들이었다. 아들을 귀히 여기던 시대에 첫아이로 아들을 낳았지만, 나의 대한 대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저 '나 때는~'을 시전 하며 바리스타도 아니면서 계속 라테 이야기를 하며, 본인도 맏아들 낳은 이야기에 바쁘셨다. 편안한 산후조리는 꿈에도 없었다.
하루는 토끼 같던 아이를 두고 도망쳤다.
도저히 희망 없는 나날들을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때맞춰 불어나는 모유와 함께 떠오른 아이 얼굴에 가슴이 아렸다. 서둘러 정신을 차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죄 없는 아이가 안쓰러워서 이를 악물고 다시 매일을 버텼다.
쥐구멍에도 볕뜰날이 있다더니…
진짜였다. 우연한 기회로 남편이 대형 출판사에 취업을 했고, 경제적으로 나아지니 조금은 숨통이 트였다. 그리고 또다시 임신을 했다. 첫아이는 어느덧 4살이 되었기에 동생이 있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그렇게 이 아이를 둘째로 키워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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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