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격하신 아버지와 자상하신 어머니’는 이제 그만.
초반 상담을 상담으로 받은 솔루션은 꽤 효과적이었다. 이에 상담 중반부터는 나의 원가족(부모)과의 관계 해결을 중심으로 했다. 첫 질문은 가족에 대한 소개였다. 하지만 잘 포장한 자기소개서용이 아니었기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불만과 비난 투성인 아버지, 사과보다 변명이 먼저인 어머니
아버지는 매사에 부정적이었고 불만이 가득했다. 가볍게는 날씨나 반찬이야기, 나아가선 대상에 대한 비난을 일삼았다. 쉽게는 가족이었고, 그중 가장 나약한 대상은 나였다. 실수를 하면 이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보다는, 이미 지나간 사실을 따지며 질책을 했다. 그렇게 자책하는 사고부터 익혀갔다. 성인이 돼서는 내 판단이 그에 반한다면, 경청과 존중대신 "너는 모른다.” 며 구박했다. 칭찬할 일엔 "좀 더 열심히"가 전부였다. 대체 얼마나 더해야 따뜻한 칭찬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건지 늘 의문스러웠다. 그러니 외부는 물론이고, 스스로도 충만함을 느낄 수 없었다.
어머니는 무표정한 날이 많았다. 모든 것을 체념한 사람처럼 눈은 텅 비었고 무기력해 보였다. 철장에 갇힌 병든 새 같았다. 늘 불만을 삼켰던 어머니는 참다못한 날엔 이를 술로 달래셨다. 그렇게 차곡차곡 모은 빈 병은 다시 팔아 또 술을 사 왔다. 그 과정에서 병을 드느라 강제로 한배를 탔던 나는, 그들의 싸움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함께한 죄책감을 떨칠 수 없었다. 아버지는 내게 엄마 안 말리고 뭐 했냐며 혼내기도 했다. 그렇게 어머니가 그간의 감정을 터트리며 열린 육탄전에서 나의 안전은 어디에도 없었다. 있는 건 자신의 감정과 억울함 뿐, 사과 역시 없었다.
저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해요.
그리고, 항상 불안해요.
이 때문일까? 인정과 수용에 항상 목말랐다. 지금도 잊지 못할 사건은 편입학 관련한 일이다. 나는 6개월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주경야독으로 두 개의 학교에 합격했다. 아버지는 그 소식을 듣고 나에게 "너 학교 붙었다며? 등록금은 어쩌려고 그러냐?"라고 했다. 남몰래 공부를 시작한 것도 아닌데, 그 궁리를 이제 와서 내게 따졌다. 당연히 떨어질 줄 아셨던 걸까? 이를 바라셨던 걸까..? 나는 공부 시작할 때 말했듯이, 학자금 대출을 받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건 바로 주는 줄 아냐고 화를 냈다. 함께 다른 방법을 찾는 과정은 없었다. 내가 시작한 일이니 해결도 내 몫이었다. 그렇게 나는 등록금 납부 마감을 1시간 앞두고 가까스로 해결했다.
이처럼 중요한 사건을 제외해도, 내 일상은 항상 불안했다. 수시로 버럭 하는 아버지, 말없이 불만을 쌓았다가 갑자기 화산처럼 폭발시키는 어머니. 그들과 함께 나는 가장 안전을 느껴야 할 곳에서, 수시로 해체의 위기를 겪었다. 여기에 경제적인 불안도 더하여, 수능을 끝내고는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적은 돈이었지만 그 무게는 컸기에, 그곳에선 타인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 눈치를 봤다. 필요 이상의 ‘을'을 자처하며, 무례한 소리를 들어도 대응보단 혼자 삼켰다.
감정이 수용되지 않은 경험은 지독히도 왜곡된 신념을 가져왔다.
우울할수록 애써 밝은 척을 했다. 나 혼자 애써 괜찮은 척하면 문제없이 흘러가니까... 사회는 물론이고 집에서도 그랬다. 이는 결혼 후 시댁이나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가 이것들이 한 번씩 터지는 날엔 괴물처럼 변했다. 내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상담 선생님은 내게 진짜 감정 표현 연습을 독려했다. 가장 가까운 남편부터 시작해서 어머니에게까지…그 과정은 사과를 받기보다 후련해지는 것을 목표로 하라 했다. 환갑을 앞둔 어머니는 여전히 자신의 감정수용조차 버거워 보였다. 그런 무기력한 어머니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여력이 있을까 걱정되었다.
"만약 수니 님의 딸이 본인 때문에 힘들었다고 말한다면,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들어요? "
"글쎄요... 너무 미안해서 눈물만 나올 것 같아요."
"맞아요. 어머니는 그런 관계예요. 자기 마음을 이해 못 한다는 서운함 보다는 미안함이 우선일 거예요."
내가 어머니의 '감정 보호자'가 되어 바뀐 역할을 했었다 한들,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었다. 나는 그녀의 딸이라는 것. 그래서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낀대의 네 번째 Solution.
1. 진짜 감정을 표현한다고,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누군가에게 감정이 상할 때, 이를 표현하면 분위기나 관계가 어색해지는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애써 괜찮은 척 웃었다. (물론, 썩은 미소였겠지만...) 상담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수니 님~ 기분 상한 거 표현하면 일어나는 최악의 일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분위기가 좀 싸해지는 거? 그러고 보니 대단한 일은 없을 거 같네요."
"맞아요. 그리고 제삼자들도 분명히 알아요. 그 사람이 수니 님에게 실수한 것을요. 싸해지면 어때요? 그건 그 사람이 잘못해서 만든 상황이지, 수니 님의 그런 반응을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반대로 수니 님이 다른 사람들의 비슷한 상황을 목격해도 그렇잖아요.^^"
2. 건강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을 연습하기.
1) 한 템포 쉰 후, 감정을 가라앉히고 화가 나는 이유 말해보기.
: 찬물 마시기, 숫자 세기 등...
2) 어렵다면 사전에 약속한 물건을 보여주어 감정을 표현하기.
Ex) 나 여기서 더 건드리면 터짐, 경고함!
-> 말대신 옐로카드 내밀기
3) 모두 다 어려울 땐, 무반응부터 시작하기.
: 참고 대응하는 것부터 멈춰보기 (무표정으로 있기)
4) 3)이 연습이 되면 말로 표현해 보기.
Ex) 김숙 - "어, 상처 주네?"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말투)
: 보통은 웃고 넘기거나 자신의 외모를 더 희화화하며 맞장구치는데, 그러지 않았다. 말한 사람을 지긋이 쳐다본 뒤 짧게 한 마디 했다. 그러자 상대가 농담이라며 사과했고, 김숙도 미소 지으며 곧바로 “괜찮아요.” 하고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화제가 전환되었다.
- 도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중에서.
* 사진출처
1. Freepik
2. https://m.youtube.com/watch?v=DlT93tXd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