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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림의 왕 수니 Sep 27. 2024

낀대의 부모 이야기 (2) - 함부로 폄하 말 것,

살아본 적 없는 그들의 인생을.


  둘째는 큰 눈망울이 남편을 빼다 박은 딸이었다. 다행히 조금 나아진 형편이었기에 과일도 사다 먹고, 입덧 후 그렇게 당겼던 짜장면도 먹었다. 첫째 때는 못해줘서 아쉬웠던 것들을 최대한으로 했고, 앞으로도 다 해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까지 들었다.


  아이들이 좀 크니 시간을 내어 부업도 할 수 있었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실밥 제거 부업을 시작했다. 비록 옷 한 개에 몇 원이었지만 부지런히 했다. 집안에는 옷먼지가 가득해 매일 코가 간지러웠지만, 소소하게 돈이 모이니 이조차 희망으로 간질댔다.


매일 실밥을 뽑고 또 뽑았다.


  남편의 월급은 최대한 아꼈고, 철저하게 가계부를 쓰며 생활했다. 그렇게 또 몇 년을 열심히 살다 보니, 운 좋게 신도시에 세워진 신축 임대아파트에 당첨이 되었다. 임대료를 5년간 내면 우선분양권도 준다니, 더욱 밝은 미래가 가까워졌다.


  곧이어 이사를 했다. 시어머니랑도 멀어졌고, 단칸방 반지하에 살다가 작은 평수지만 아파트로 오니 대궐이 따로 없었다. 아이들에겐 꿈에 그리던 2층 침대를 해주었고, 부부만의 아늑한 침실도 생겼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사에서 일하며 전집 사업에 눈을 뜬 남편이 자기 사업을 해보겠다고 했다. 월급쟁이가 훨씬 안정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총기 어린 눈으로 해보겠다는 그를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다. 그저 응원할 뿐..


팍팍하다는 '서울 모처'에 작은 가게를 내었다.

  그곳은 남편이 재직 당시 알게 된 '교육열이 높은' 지역이었다. 그러니 잘 될 거라고 장담했다. 전집도 팔고 책 대여도 하기 위해, 빚은 좀 냈지만 가게를 꽉 채워 책을 샀다. 사실 걱정은 좀 됐다. 하지만 아빠덕에 아이들에게 원 없이 책을 보여줄 수 있으니, 큰 이점이라 생각했다. 특히 딸아이가 아빠 책방에 가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했으니까..  


  어느덧 5년이 지나, 우선분양권이 쥐어졌다. 기존의 임대보증금과 악착같이 모았던 돈을 제외하고 추가로 은행 빚을 더 내었다. 그 덕에 우리에게 대궐 같던 아파트는 드디어 완전한 우리 집이 되었다. 빚은 지금처럼 일하면서 조금씩 갚아가면 됐다. 모든 게 나름대로 순조롭게 흘러갔고 희망으로 가득 찼다. 1997년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그날의 MBC뉴스 (출처 : https://ssully.joins.com/View/856)


  뉴스에서 IMF에 구제금융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단다. 나라 자체가 빚더미에 앉은 전례 없던 세상에 살게 된 것이다. 수많은 기업과 은행들이 도산을 했고, 잇따라 사람들도 일자리를 잃었다. 모두가 숨 돌릴 여유 없이 당장을 먹고살기 바빠졌다. 그러니 책을 사기는커녕, 빌려 읽지도 않았다.


집도 절도 없는 우리에게 있는 거라곤,
살자고 냈던 빚이 죽자고 달려들고 있을 뿐.

  20% 대가 코앞이던 은행이자와 카드 결제일은 정말 죽지도 않고 또 돌아왔다. 결국 가게를 내놓았고, 머지않아 유일한 보금자리인 우리의 아파트까지 팔아야 했다.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연속된 암담한 날들에 사정없이 치인 남편은 또다시 분노로 가득 찼다. 아니 전보다 더했다. 이유를 너무나 잘 알기에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남편의 감정쓰레기통'으로 전락한 나는 한없이 지쳐갔다.


  시어머니는 틈만 나면 전화를 했다. 나라 경제가 어려우니 걱정돼서 전화를 하셨단다. 그래놓고 매번 당신이 어디가 아파서 병원에 가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했다. 차라리 용돈 달라고 연락했다고 본론만 말하고 빨리 끊는 게 나았다.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어느 날, 혼자 소주 한잔 마신 게 시작이었다. 술에 힘을 빌려 남편에게 말했다. 사실은 당신만큼 나도 힘들다고.. 하지만 남편은 나의 '취중진담'을 그저 ‘술주정'으로만 봤다. 그렇게 맨 정신일 때보다 훨씬 큰 부부싸움을 시작했다.


  알 것은 알만한 아이들 보는데서 다투고 싶지 않았지만, 남편이 너무 야속했고 억울해서 싸움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다음날 또 술을 마셨고 당연히 또 싸웠다. 한동안 이런 생활이 반복되다 보니 점점 더 술에 의지하게 됐고 피폐해져 누군가에게 쫓기는 환각마저 보였다.


 나는 내가 아팠는지도 몰랐다.


  멀리 살던 동생이 걱정이 되었는지 한 번씩 통화하다 말고 어느 날은 우리 집에 찾아왔다. 나를 보고 아무래도 병원에 가야겠다며 데려갔다. 그리고 그제야 내가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음을 알았다. 병원에서 약을 받아왔고 꾸준히 먹으니 전보다는 나아지는 것 같았다.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하루라도 한숨을 돌리며 쉬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간은 흘러갔고, 아이들은 사춘기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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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사진 출처 :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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