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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림의 왕 수니 Sep 27. 2024

1차 SOS(부모와 나), 상담 결과 - 소통

네가 좀 더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에.

 

  어머니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 위해, 대화의 순서마저 정리했다. 그러니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수단이 문제였다. 전화로 얼굴을 못 본 채 대화하면, 또 다른 오해가 생길 것 같았다. 민감한 이야기이니 만나서 하고 싶었다.


  집에서 친정까지는 자차로 왕복 두어 시간. 아이를 맡기고 적당한 날을 찾아야 했다. 어쩌면 이런저런 핑계로 다시 주저했던 것도 같다. 그렇게 겨우 낸 용기는 또다시 힘을 잃어갔다.


 그 무렵, 아이에게도 일이 생겼다. 갑자기 시작된 고열이 며칠간 계속됐다. 급기야는 열성경련과 이어진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았다. 모든 게 와르르 무너졌다. 아직 어린아이를 돌보는 게 우선인데, 나를 돌보는 사치를 부린 것만 같았다. 또다시 모든 게 내 탓 같았다. '엄마'로서 처음 마주한 큰 위기에, 가장 먼저 생각 난 사람은 나의 '엄마'였다.


엄마, 지금 우리 집에 오실 수 있어요?


  사실 나는 이러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매우 싫었다. 그래서 우울증이 심했을 때도 그 시간을 혼자 버텼다. 그 이유는 비슷한 상황으로 오빠네에 다녀오시면, 어김없이 몸살을 앓으셨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들었던 어머니의 힘들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맴돌았다.


 그런 불편함을 뒤로한 호출이었다. 남편도 조퇴가 어려웠다. 혹시라도 그사이 아이가 다시 경련을 하면 혼자서는 대처가 어려울 것 같았다. 어머니는 빠르게 준비하여 출발하셨다. 대중교통으로는 편도로만 2시간 이 걸리는 거리였다. 엄마는 엄마였다.


 몇 시간 뒤, 나의 엄마가 왔다. 여전했던 고열로 아이를 데리고 다시 병원을 갔지만, 함께한 어머니 덕에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이의 몸에서 열렸던 전쟁은 잔뜩 피어난 열꽃으로 종결을 알렸다. 그날 밤, 나는 엄마 옆에 누워 이야기를 시작했다.


  먼저 부모님의 과거를 공감했다. 역할을 떼고 남자와 여자로 바라본, 그들의 인생의 고단함을 위로했다. 그리고 과정은 위태로웠지만 그들의 노력만큼은 진심으로 존중했다. 이후엔 내 마음속 진짜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이었다.


"엄마, 내가 심리상담 받는다고 했잖아요. 나는 산후 우울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뿐만이 아니더라고요… 내가 아직 어린 시절에 머물러 있었어... “

"나 정말 너무 무서웠어. 남도 그렇게 안 싸우는데 엄마 아빠 심하게 싸우고, 맨날 내가 그거 말리고 그래도 또 반복되고…“

“두 분이 안 싸우는 날에는 엄마가 친할머니랑 아빠 원망하는 거 계속 듣는 거… 진짜 버거웠는데 내가 아니면, 엄마 얘기 들어줄 사람이 없는 걸 아니까. 그것도 못 들어주는 딸이 되는 같아서 죄책감 들고..."

"들어보면 아빠가 너무 미웠어. 그래서 아빠가 나한테 직접적으로 잘못한 거 말고, 엄마한테 그랬다는 이유로 같이 원망했어... 근데 결혼하고 나니까, 엄마아빠를 가끔씩 만나잖아요. 이제는 만날 때마다 나이 드는 게 눈에 보이는 거야..."

"근데 나는 딸이 돼서는, 아빠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위로를 해준 적이 없잖아. 아빠가 다른 문제 없이, 어쨌든 열심히 사신 부분은 감사해하고 인정해드렸어야 하는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던 거 같아서... 그런 죄책감도 또 들어서 너무너무 슬프고 괴로웠어…“


미안해.. 네가 그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엄마는 절대로 안 그랬을 거야...


"그랬구나... 엄마 아빠가 그렇게 싸우고 나서, 나라도 너희한테 미안하다고 꼭 말해줬어야 하는데. 정말 그걸 못했네.. 너무너무 미안해."

"엄마는 진짜 하나도 몰랐어. 나랑 아빠의 일이니까, 괜찮아할 줄 알았어. 내가 그런 말해도, 너는 그냥 듣고 잊어버릴 줄 알았어..."

"지금 이렇게 다 얘기했다고 해도, 살다 보면 또 생각나고 서러울 때 있어. 그럴 때마다 전화로라도 꼭 얘기해서 풀어.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알았지?"


  그날 용기를 낸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나는 오랜 시간 발에 묶여 있던 모래주머니를 내려놓았다. 나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2023년, 36살의 끝에서.
나는 진짜 독립을 시작했다.


낀대의 여섯 번째 Solution.

나의 방식을 바꾸면, 상대의 방식도 바뀔 수 있다.

  이야기를 들은 상담 선생님은 정말 기뻐하셨다. 내게 최고의 내담자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그리고는 아래의 말을 덧붙이셨다.

"상담을 하다 보면, 대부분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자신을 바꾸거나, 할 수 있는 노력부터 시작해 보라는 조언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이렇게 용기 낸 일은 정말 대단한 일이에요!! 잘 따라와 주셔서, 저 역시 정말 고마워요."

  그렇게 나는 나만이 피해자라는 '피해 의식'을 스스로 버렸다. 그리고 일 년이 흐른 지금, 나의 부모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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