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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림의 왕 수니 Nov 20. 2024

돌준맘, 나는 T라 미숙해.

9개월 - 돌잔치가 이렇게 큰 행사일 줄이야.

  2023. 04. 팝콘 같은 벚꽃이 휘날리던 어느 날.


  생후 9개월이 된 아이와 함께하는 첫 봄. 길가 벚꽃나무엔 가득한 꽃망울이 팝콘처럼 톡톡 꽃잎을 구워냈다. 귓가엔  "그대여~ 그대여~"라는 노래가 자동으로 맴돌으니, 올해도 어김없이 벚꽃연금을 수혜 할 장범준 씨의 미소마저 그려졌다.


쟈니 돌까지 얼마 안 남았네?
돌잔치 준비 해야겠다.


  요즘 '돌잔치'는 과거보다 간소화된 추세이지만, 엄마들 사이에서는 농반진반으로 이를 '제2의 결혼식'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유인즉 돌잔치 준비 리스트가 결혼식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a'와 매우 유사하기 때문이다.


<돌잔치 준비 리스트>

1. 돌잔치가 가능한 식당예약
2. 돌 상차림 및 장식 예약 (+돌잡이 물품 준비)
3. 돌 촬영 (스냅 or 동영상) 예약
4. 의상 준비 (아기 및 부모 드레스 or 한복) : 대여 시 미리 예약
5. 아이 돌 선물 준비 (주로 반지 or팔찌)
6. 답례품 준비
7. 헤어/메이크업 예약 (필요시)
8. 성장 동영상 (필요시)


   결혼식은 웨딩플래너의 도움이 있지만, 돌잔치는 부모가 직접 발품(요즘은 손품)을 모두 팔아야 한다. 이런 분주함을 반영하듯 돌준맘(돌잔치를 준비하는 맘: Mom), 돌끝맘(돌잔치를 끝낸 맘)이라는 말까지 생긴 지 오래다.


  하지만 나는 이런 문화가 크게 공감되지 않았다. T성향을 지닌 MBTI 덕인지는 몰라도, 마치 '주객이 전도'된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나의 일이 되니, 공감과 준비는 별개의 일이었다. 조금 더 솔직하자면, 우리만 안 하자니 아쉬울 것 같았다.


  그렇게 ’어쩌다 돌준맘'이 된 나의 첫 미션은 장소 예약이었다. 낮은 출산율로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작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원하던 곳은 예약 신청일이 매월 정해져 있었고, 해당 일엔 전화 폭주로 연결조차 불가했다.


여유롭게 6개월 전부터 준비하란 게 진짜네.


  놀랍게도 차선책 역시 이미 마감되어, 결국 실제 생일보다 한 달 뒤 무렵으로 예약할 수 있었다. 이어 스냅사진과 의상 결정으로 몇 주를 보내고, 드디어 마지막 옵션의 결정만이 남아있었다.



"여보, 성장 동영상은 필요 없겠지?"

"있는 게 낫지. 양가 부모님도 오랜만에 만나셔서 어색할 텐데, 영상 보면서 얘기 나누시면 괜찮을 것 같아."

"뭐? 그거 업체 제작은 생각보다 비싸고, 내가 셀프로 만들긴 좀 버거운 걸ㅠㅠ. 1년 동안 찍어둔 사진 중에 잘 나온 것을 골라야 되지? 화면 비율에 맞게 편집해야 하지? 기존 영상들은 목소리나 주변음 없애는 편집도 추가로 해야 해. 근데 내가 종일 혼자 쟈니보고, 육퇴 하면 이유식 만들기도 빠듯한데…ㅠㅠ“

"그래? 그럼 내가 만들어 볼게!"



  아기자기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직접 만들겠다니 조금 의아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서고 싶진 않았다. 여러가지를 준비하며 계속 가성비를 계산하느라 이미지쳤기 때문. 이에 더해 시간과 체력을 쪼개어 작은 휴대폰으로 영상까지 편집하려니, 생각만으로도 뒷목이 뻐근해졌다.



   어느덧 돌잔치 당일.

사실상 가족모임에 가까웠지만, 스냅사진도 찍고 상차림 업체 직원의 진행이 더해지니 제법 잔치다웠다. 딱 한 사람, 남편의 모습을 제외하고 말이다. 그는 무려 한 달을 공들인 ‘성장 동영상'의 발표(?)를 앞두고, 긴장감으로 떨리는 동공을 붙잡느라 바빠 보였다.


  잠시 후 커다란 모니터에서 재생된 ‘그의 야심작’엔 우리의 1년이 하나둘씩 스쳐갔다.

성장동영상 일부^^


숟가락 하나 드는 것조차,
혼자서 해낸 것이 아니었다.


  사춘기 시절, 어쭙잖은 반항으로 '혼자서 컸다.’는 표현에 답했던, 친정어머니의 말이 떠올랐다. 당시엔 내 노력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무척이나 서운했다. 하지만 그 말속엔 수많은 의미가 있었다.


  누워만 있던 아이가 몸을 뒤집고, 앉고, 서다가, 한 발씩 내디뎌 도움 없이 걷고, 스스로 먹기까지… 시간의 흐름으로 당연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세 식구의 성장이 담긴 영상은 모두에게 돌잔치의 진정한 의미를 전했다. 그리고 준비 내내 가성비만 생각했던 '티라미숙한’ 돌준맘도 마침내 돌끝맘이 되었다.


우리의 돌스냅


* 2024년에 전하는 여담.

  피곤함은 순간이고, 인생샷은 영원하다!ㅋㅋ 성장 동영상과 그날의 사진 덕에, 찰나의 순간들이 우리에겐 영원이 되었다.



* 커버 사진 출처 : 유죄남 권정열 버전, 티라미수 케익 ( https://youtu.be/5Djtd-e42_s?si=SgUto4gjCmtElyo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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