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의 3~4개월을 낚시 중이었다고 하면 이 표현이 맞을 것도 같다. 아버지는 '꾼'이었다. 엄마는 낚시꾼인 아버지를 무척이나 못마땅해했지만, 종국엔 엄마도 낚시 동호인이 됐다.
라떼만 하더라도 첫 월급을 받으면 부모님께 내복을 선물했었다. 난방이 좋지 못했던 시절에 내복 업체가 고안해 낸 마케팅이, 효 선물로 둔갑한 게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지금의 밸런타인데이나 빼빼로데이 상품처럼 말이다. 암튼 당시엔 첫 월급은 의례 부모님 선물로 내복을 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내복을 안 하기도 그렇고 또 그것만 달랑하자니 왠지 좀 섭섭한, 내복은 그야말로 디폴트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내복 외에 선물을 하나 더 준비해야 했다. 아버지 선물은 의외로 고민할 게 없었다. 단지 어떤 모델의 낚싯대가 좋을지만 결정하면 될 문제였기 때문이다. 여러 날 이것저것 낚싯대를 고르다가, 결국엔 낚시 좀 한다는 이들의 추천을 받은 낚싯대를 선물해 드렸다. 당시에 꽤 큰돈을 주고 샀던 것만큼은 기억한다. 첫 월급을 쓴 보람을 느낄 만큼 아버지는 기뻐하셨다.
종종 부모님과 낚시를 갔었다. 낚시 아지트가 있는 대부도는 두 분이서 다니셨고, 주로 나는 당일치기 강이나 저수지 낚시길에 동행했었다. 엄마와 난 밑밥으로 떡밥을 사용했고, 아버지는 지렁이를 미끼로 썼었다.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때를 기다리는 게 대부분의 일이었지만 그 시간이 좋았다. 미끼 옆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을 물고기를 상상하는 것도 흥미로웠고, 무심히 강을 바라보는 것도 좋았다. 무엇보다 물고기를 낚아 올릴 때 손맛은 정말이지 짜릿했다. 다들 이 맛에 빠져 '낚시광' 되는 건가 싶을 만큼 말이다. 강이건 바다건 낚아온 물고기는 거의 동네분들 차지가 되는데도 어찌 된 일인지 집안 냉동고는 사계절 비좁았다. 낚시 손맛은 즐겼어도 낚시 장비에서 풍기던 그 특유의 냄새와 생선 비린내만큼은 끝내 적응이 안 됐다.
가끔 그때가 그립다. 파라솔 아래서 아버지의 월척 모험담을 듣던 일, 찌 흔들리는 소리에 뛰 가다 무르팍이 깨졌던 일, 다 잡고 놓친 물고기가 아쉬워 얕은 탄성을 질렀던 일하며, 한여름 뙤약볕 아래 그 무료한 시간까지, 여전히 그 시간대에 아버지가 있다.
아버지를 모신 곳 지척에 너른 저수지가 있다. 그 길 위에서, 수면 위로 올라오는 물고기 주둥이를 볼 때도 있다. 어쩌면 꼬리일 수도 있겠다. 멀찌기서 보일 정도면 그 수면 밑이 어떨지 짐작된다. 거기 가셔서도 아버지는 낚시 포인트를 제대로 잡으신 게 틀림없어 보인다. 만날 그 많은 월척을 어쩌시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