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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AN Nov 07. 2023

우천 가을 배웅

비가 오락가락 날이 맑았다 흐렸다 변덕스럽다. 시간대별 날씨 변화를 검색해 보고, 집을 나선다. 우산을 받치고 한산한 산길을 걷는 것도 꽤 낭만적이잖나. 단풍이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 그곳에 함께 서 있는 것만으로 그림이 될 것 같았다.


바람이 분다. 새 날갯짓 소리처럼 바람막이 점퍼가 요란하게 퍼드덕 소리를 냈다가 잦아들었다가를 반복했다. 옷을 단단히 여미고는 천천히 걸었다. 낙엽이 꽃밭을 만들었다. 먹구름이 갑자기 햇살로 바뀌더니 단풍에 맺힌 물방울이 보석처럼 빛났다. 눈이 부시다. 아름다운 날이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폭신한 게 스펀지케이크처럼 걷는 맛이 좋다.


순식간에 맑았던 하늘이 시커멓게 얼굴을 바꾸더니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한기가 느껴지던 차에 잘 됐다 싶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차로 돌아와 히터부터 켜놓고, 근방에 갈 만한 카페를 검색했다.


후기가 좋아 찾아간 카페 안은 궂은 날씨에도 손님들로  차 있었다. 우리나라만큼 카페가 넘쳐나는 곳이 세계 어딘가에 또 있을까? 하긴 산중 어디라도 꾸역꾸역 찾아가 소비하고야 마는 나 같은 극성맞은 수요층이 있기에 가능한 공급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놀랍다.


그렇게 차를 댔다 뺐다 몇 차례 수고를 한 뒤에 고르고 걸러, 손님이 많지 않은 맞춤한 카페를 찾아 들어갔다. 들어서자마자 차를 주문해 놓고는 화장실에 다녀왔다. 화장실도 정결하고, 실내도 조용했다. 뭣보다 밖에 풍경이 고스란히 들어오는 통창이 맘에 들었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카페인지, 옆동은 건축 자재들이 쌓여있는 걸로 봐서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뵌다.


창가 쪽 자리에 앉자마자 주문한 홍차가 나왔다. 따뜻한 차가 식도를 타고 몸으로 퍼지는 순간, 얕은 감탄이 새 나올 뻔한 걸 꿀꺽 삼켰다. 창밖에는 서정미 물씬 풍기는 가을비가 내리고 ( 철없는 장맛비처럼 터프했지만, 추적추적 그랬다 치고)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창밖을 응시하는 여인의 모습...이 더해지는 상상. 그 가을 풍경 안에 하나처럼 있고 싶었다. 그림처럼,,, 음, 물론 타인의 눈에는 비 오는 날 청승 떠는 아줌마로 보였겠지만 말이다. ^^;;


실은 집을 나설 때만 해도 걱정거리가 있었다. 하긴 걱정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닌 문제이기는 했다. 세상 살아가는데 나만 그렇겠나. 이런저런 걱정거리를 머릿속에 욱여넣었다가 뺐다를 반복하며 가는 거지. 어려움 하나 없는 삶이 어디 있을라고. 그 길 위에서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다. 새삼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빠져 시선을 밖으로 던지고 있을 때, 주인장이 부탁도 하지 않은 뜨거운 물을 테이블에 놓고 갔다. 저그가 아담한 게 예뻤다. 홍차는 따뜻했고 카페 안은 아늑했다.



남의 일에 큰 관심이 없다고 해도, 우린 저마다 어려움 하나쯤 달고 사는 생이란 점에서 동질감이 느껴질 때가 있다. 어쩌면 하루 중 어떤 순간의 미소는 부단히 애쓴 노력의 흔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 타인에 대한 친절이 상대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일 때도 있다. 공손한  말 한마디가 주변을 밝게도 하니깐.  떠나는 가을, 극진히 보듬고 살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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