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오랜만에 친구에게 편지가 왔다. 몇 년 만인지도 모르겠다. 고등학교 동창인 우리는 고1이었던 17살부터 20대 초반까지도 서로 편지를 주고받았었다. 그러다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해서도 자주 연락하고 만나기도 하며 여전히 절친한 사이로 지내고 있지만 편지를 주고받진 않았었다. 그런데 친구가 서울에 살다가 올해 초 제주도로 이사를 갔다. 적어도 5년 간은 제주도에 살 것 같다고 했다. 서울에 있을 때는 그래도 몇 달에 한 번이라도 만나서 수다를 떨고 스트레스를 풀곤 했는데 제일 친한 단짝 친구가 제주도로 가버리니 소소하게 만나서 점심 먹으며 수다 떨 친구가 없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연락은 하고 지내지만 핸드폰으로 연락하는 것과 만나서 얘기하는 건 기분이 다르니까 그 차이가 점점 느껴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아들이 등교를 하는데 (나는 등교하는 아들을 우리 집 앞 복도에서 밖으로 쳐다보고 있을 뿐 같이 1층까지 내려가지는 않는다. 복도식 아파트 저층에 살아서 복도에서 아래로 보면서 인사하면 소리도 들리고 얼굴도 보인다) 오늘따라 1층으로 벌써 내려갔을 시간인데도 아들이 밖으로 안 나타나는 거다. 평소보다 늦게 내려와서 혹시나 넘어졌나 싶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엄마, ○○이 이모한테 편지 왔던데. 빨간색 편지야."
그러고 가는 것이다.
나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깜짝 놀라서 아들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바로 1층 우편함으로 내려갔다. 진짜 빨간색 봉투가 있었다. 크리스마스 카드가 들어있을 것 같은 빨간 정사각형 봉투였다. 우표에 찍힌 도장을 보니 12월 24일이었다. 연말에 우편물이 많은 건지 2주나 지나서 우리 집에 온 것이다.
갑자기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봉투를 열어보니 입체카드가 들어있었고, 글씨 쓰는 칸이 작아서 카드에는 Merry christmas, Happy new year.라는 내용만 있었다. 그리고 진한 연두색 종이에 따로 편지가 적혀있었다. 예전 추억들과 우리가 17살에 만나 10대, 20대, 30대, 40대를 함께 보내서 좋았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편지를 읽는 동안 17살, 18살, 그리고 고3 때 학교에서 편지를 주고받았던 일이 생각나서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눈물이 흐르기 전에 편지가 끝나서 후~ 하며 눈을 깜빡깜빡, 차오른 눈물을 말렸다. 어릴 적에 편지를 자주 주고받았을 때는 편지를 받아 좋기는 했어도 이런 감정이 든 적은 없었는데, 나이가 들어 40대에 친구에게 편지를 받으니 이건 그냥 지나온 우리의 시간이 눈물 나게 감동적인 것이다. 내 친구의 따뜻한 정이 눈물 나게 고마운 것이다. 요즘 우표 붙여서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는 40대가 어디 흔한가. 이렇게 특별한 아침을 만들어준 내 친구에게 고맙다는 감정 이상의 마음이 든다.
인생은 50부터라고 애들 다 크면 도깨비 여행 다니자고 친구가 편지 말미에 쓴 이야기처럼 40대를 잘 보내고 50대가 되면 친구가 일찍 결혼해서 엄마가 되는 바람에 20대 때 함께 더 즐기지 못했던 것들을 더 많이 즐겨보고 싶다. 무엇보다 건강해야지.
그리고 나는 친구에게 답장 보낼 편지지를 사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