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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이 Aug 02. 2024

파스타와 기다리는 사람

24.07.29.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어릴 적 문화 센터에 단소, 대금 클래스를 신청해서 일주일에 한 번 다녀오곤 했다. 늘 엄마나 아빠와 함께 갔는데 중학생이 되고는 평일 수업을 그만두고 주말에 하는 수업을 듣고 집으로 돌아왔다. 언제나 수업을 듣고 발소리조차 울리던 강의실 밖으로 나가면 부모님이 기다리고 계셨다. 그때의 기억을 밥 먹듯이 떠올리곤 한다. 시험 기간에 공부를 하다 겨우 다녀왔던 주말 수업이나, 가장 처음 다녀온 수요일의 (아직 요일까지 기억한다) 단소 수업은 지겹고 느리게 지나갔으나 부모님과 함께 돌아오는 길은 다정하고 유쾌했다.

 처음에는 대형 마트였고, 시간이 지나 선생님과 더 친해지면서 같은 선생님이 하시는 주말 수업인 백화점 문화 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내가 단소 대회에 나가게 되면서 선생님은 다른 곳에서 하는 수업도 들어올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는데, 덕분에 나는 여러 마트나 백화점에 다녀오게 되었다. 지금 할 이야기는 그 시기의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다.

 문화 센터 수업을 마치고 가끔 나는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식당가에서 엄마, 아빠와 마주 앉아 파스타를 먹었다. 가장 처음 떠오르는 기억은 아빠가 데리러 왔던 날의 장면이다. 아빠는 조금 신난 표정으로 어린 나를 파스타 가게에 데려가 맛있는 파스타를 사주셨다. 새빨간 토마토 향을 풍기는 파스타는 무척 맛있었다. 나는 부지런히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돌려 먹었다. 엄마가 없는 자리였고, 우리 가족이 주로 먹는 식당보다 아주 고급스럽고 예쁜 가게였어서 조금 당황해하며, 그렇지만 아주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조금씩 그 음식과 자리에 익숙해졌다.

 내가 중학생 때까지 문화 센터에 오래 다녔다. 다른 악기를 배우기도 했고, 단소를 불다 대금을 배우게 되면서 더 오래 그곳을 지냈다. 내게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입에 익는 음식은 백화점 9층 식당가의 파스타였다. 그리고 더 눈에 익는 장면은 수업을 마치고 나오면 뒷짐을 지고 서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나 동생 손을 잡고 나를 기다리는 엄마의 모습이다.

 그런 지난날이 기억되려면 기다리는 시간이 남아 있는 자리가 있다. 한 시간 수업 동안 바깥에서 서성거리며 기다리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루했을까. 시간이 빠르게 갔을까, 더디게 지났을까. 늘 아이를 강의실에 두고 백화점이나 마트를 둘러보면 그곳은 나의 보호자에게 어떤 곳으로 남았을까. 아직 그럴 나이가 되지 않았지만 나도 아이를 가지게 되면 그런 기분을 알 수 있을까. 비슷하게나마 겪을 수는 있을 것이다.

  처음 내게 파스타를 사주며 다음에는 더 맛있는 집에도 가보자던 아빠의 목소리를 기억한다. 그리고 먼 거리에서 버스를 타고 몇 분 남짓 걸어서 손을 잡고 데려다주던 엄마의 손길도 기억한다. 파스타는 맛있었고 연습은 힘들었고 수업은 조금 재미가 없었다. 이제 와서 솔직하게 하는 말이지만, 그래도 같이 먹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같이 머물 수 있어서 좋았다고도 말하고 싶다.

 지금은 파스타를 식당에서 사 먹기보다는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 편이다. 그러나 아직 내 입맛은 처음 수업을 들은 뒤 식당에서 먹었던 토마토 파스타의 맛을 쫓고 있다. 토마토 맛을  강하게 만들기보다는 조금 우유를 섞은 맛을, 그리고 닭가슴살을 같이 볶아 먹고 있고, 늘 함께 먹던 기분을 살려서 가족들이 많을 때도 가끔 해 먹는다. 몇 년 전 성의 넘치게 만든 파스타를 부모님이 극찬하며 먹었던 기억을 살려서 재료를 잔뜩 넣어 맛있게 해 먹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음식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기쁘다.

 처음 먹었던 식당에서의 파스타도, 엄마가 사주던 파스타도 온 가족이 같이 먹던 파스타도 맛있었고 그날 수업이 가기 싫었던 기분이 모두 사라지는 느낌도 서글프지만 좋아했다. 아직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파스타라고 말하면 누군가 내 기분을 이해할까 싶다. 어릴 적 남은 기억은 아주 오래가는 모양이다. 다시 그 수업을 마치고 나를 기다리는 사람과 맛있는 냄새가 가득한 식당에 마주 앉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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