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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이 Jul 26. 2024

낡은 것들로 가득 찬 방에 대하여

23.07.24. 화 아침에 쓰는 글

  재작년에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이삿짐을 쌀 때의 일이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아무도 다시 책상이나 소파를 사거나 바꿔야 하지 않느냐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낡은 서랍장과 책장, 그리고 소파를 챙겼다. 서랍장은 테이프로 꽁꽁 감아 안에 있는 내용물이 흐르지 않게 두었고 책장은 부서지지 않도록 책을 모두 꺼내 따로 꺼내 두었다. 그리고 내 방 책장 앞을 항상 지키던 2인용 소파는 꼭 들고 가야 한다며 우겼다.

 대학교에 다니는 동안 자취방을 두 번 이사했다. 첫 자취방은 내가 가장 어릴 때 살았던 방으로 아주 작은 방에 책상 하나 냉장고 하나 옷장이 그 위에 쌓여있었다. 나는 그 방이 너무 좁다고 생각했고 아래층에 있는 카페 탓인지 밤이면 벌레들이 기어 나와 나를 괴롭게 했다. 그래서 학교에서 더 멀고 조금 큰 방으로 다음 해 이사를 했다. 그 방은 햇볕이 잘 들고 자리도 넓어서 친구들이 와도 몇 명이서 작은 판을 펴고 배달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아주 잘 지내던 방이라 아직도 기억하는데, 지낸 지 2년이 되는 해에 내가 갑자기 입원을 하고 휴학을 하게 되어서 부모님께서 짐을 다 빼오셨다. 나는 침대에 누워 조금 울었던 기억이 있다.

 학교로 돌아갈 때가 되어서 방을 알아보다 역 근처에 집 값이 싸고 큰 방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역 근처에 있는 낡고 부엌이 넓게 있는 꽤 넓은 방에 살게 되었다. 일 년 넘게 머물거라 생각했는데 그 집에서도 일 년 하고도 6개월 밖에 지내지 못했다.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는 그 낡은 집에 대한 이야기다.

 이사 첫날 나는 낡은 책상 두 개와 서랍장 두 개 그리고 전자 피아노와 소파를 들고 집에 들어갔다. 아직 침대가 오지 않은 때라 이불을 깔고 빈 바닥에 누워 잠들었다. 그리고 그다음 날부터 박스에 담긴 짐을 하나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입던 옷들과 책을 꺼내 서랍과 책장에 넣고 철이 아닌 것들과 당장 읽지 않을 책들은 베란다에 내놓았다. 그리고 오래된 전자 피아노의 코드를 연결하고 다른 전기선들도 집 가장자리를 따라 정리했다. 빈 바닥 중간에 러그를 깔았다. 이사를 오고 정리하는데 이주 정도 걸렸다. 나는 그 집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늦은 밤에 켜두는 무드등을 끄고 냉장고에서 아침 먹을거리를 꺼낸다. 그리고 찬 물에 차를 한잔 달여마시고 피아노를 30분쯤 쳤다. 그 뒤에는 영어공부를 조금 하거나 블로그에 올릴 글을 썼다. 그리고 아침 일기를 세장 쓰고 나면 9시가 넘어 있었다. 그러면 나는 세수를 하고 연습실로 나섰다. 내 아침 일과의 일이다. 아침 내내 낡은 방에 해가 창틈으로 들어섰다. 그런 해그림자를 볕뉘라고 부른다는데, 그때는 그 단어를 몰라서 나는 그 빛의 모임을 해그림자라고 불렀다.

 오래된 소파에 앉아있으면 내 무릎에 낡은 해그림자가 들어섰다. 나는 그 아침 시간을 좋아했다. 그 집에서의 추억이 많다. 아파서 한 달째 누워있기만 했던 나를 감싸는 편안한 불빛이 가득한 방과 절망한 채 앉아있던 나를 들여다보는 듯한 새벽녘이 여전히 내 몸 한켠에 남아있다. 낡은 피아노가 내는 조용한 소리와 앉아서 책을 읽으면 바깥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내 삶의 음악 되어주었다. 그래서 그 집을 떠날 때 많이 슬퍼했던 것 같다.

 한 달 동안 부산에 있기로 했다. 그동안 선생님께 단소도 다시 배우고 소금도 배울 생각인데, 요 며칠 몸이 좋지 않아 방에만 처박혀있는 중이다. 그 낡은 방이 생각나는 건 그래서일까. 잊지 않으면 그 풍경은 영원히 나와 함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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