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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이 Jul 19. 2024

느리게, 씹어 읽기에 관하여

24.07.15. 월. 여름 저녁

 글을 읽을 때, 단어를 머릿속으로 굴리고 입 속에 넣고 혀 끝으로 우물대는 느낌으로 느리게 여러 번 읽는다. 나는 그걸 '씹어 읽는다'라고 말한다.

 어릴 적 아버지가 사준 소설책을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읽은 책 중에서도 가장 두꺼운 책이었다. <황금나침반> 시리즈 중 1편이었는데 주말에 가족들이 다 같이 영화관에 가서 보고 왔던 작품이었다. 아버지는 원작 소설 첫 편을 사다 주셨는데 나는 그걸 읽을까 말까, 하고 계속 고민하다 어느 날 밤 자기 전에 어두운 스탠드 빛이 비치는 잠자리에 앉아 조금씩 읽었다.

 500페이지가 넘는 소설책이었다. 1, 2, 3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는 그 책을 다 읽고 나머지 시리즈를 모두 읽었다. 다 읽은 기간은 두세 달인데 거의 일 년이 다 되도록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이야기의 몽환적인 세계가 그때 내게는 아주 달콤하게 느껴졌다. 원래도 책을 읽으면 마음에 드는 책은 여러 번 읽는 습관이 있는데 내가 읽은 책 속의 그 세계는 몹시 아름답고 화려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게 만들었다. 나는 그런 식의 독서를 좋아했다. 지금은 여러 가지 책을 사놓고 여러 편을 동시에 읽는 독서 습관이 있는데 어릴 적 열 살 즈음에는 한 가지 책을 반복해서 읽었다. 오늘은 이 장면, 그리고 다음번에 읽을 때는 저번에 읽었던 그때 그 장면을 읽자, 하며 정신없이 책 속의 세계에 빨려 들어갔다. 그래서 나는 문장을 읽을 때도 여러 번 책을 읽었던 그때의 느낌을 되살려서 머릿속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최대한 여지없이 파고든다.

 그런 습관이 있어서 쓱, 읽고 한 번에 지나치는 일을 몹시 껄끄러워한다. 이런 습관은 공부할 때도 나타났는데, 언젠가는 별거 아닌 문장을 읽고 여러 번 생각하느라 시간을 모두 낭비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런 습관이 있음에도 나는 문장을 잘 외우지는 못한다. 이런 단점은 머리가 나빠서가 아닐까.

 그런 나에게도 외우는 문장이 한 둘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니체의 그 유명한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문장이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처음 읽은 문장인데 나는 그 글이 너무 좋아서 그 책을 세 번이나 읽는 짓을 하고 말았다. 그 문장이 나오는 그 대목과 장면을 다시 보기 위해서. 내게는 그 문장이 더운 여름날 마주친 너무 가까이 다가온 햇살이었다. 그만큼 강렬하게 다가왔다.

 또 한 가지 문장은 이영도 작가의 <폴라리스 랩소디>에 나오는 문장이다. 어느 신부의 대사였는데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 "별을 보는 눈을 가졌으면서도 나뭇가지 끝에도 닿지 않는 팔을 가졌다는 것은 너무 슬프지 않은가요?"라고 묻자 신부는 웃으며 "별은 보이지 않습니까"라고 말한다. 나는 이 대사에도 빠져서 허우적대곤 했는데 저 장면에서 말할 거리가 이것밖에 없지는 않지만 별은 보이지 않느냐는 단순한 말에 어린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다시 머릿속에 늘어놓았다. 쥘 수 없는 것이 많았음에도 걸어왔다고 생각하면 살고 싶어 진다. 그런 말이었을까, 하고 짐작한다.

 저렇게 문득 떠오르는, 살고 싶어지는 문장이 있다. 또 하나 걸자면 "스스로를 다해 성실함을 이루는 것이 어짊이다"라는 문장. 바른 문장인지는 모르지만 내 머릿속에 저렇게 남아있다. <중용>의 한 문장인데 성실함을 다루는 내용이 연습을 오래 하던 대학생인 나를 다독여주었다.

 우물거리다 보면 저런 문장을 만난다. 머릿속에서 웅얼웅얼. 문장 하나에 단어 몇 개도 안 되는 걸 가지고 머릿속으로 세상 끝까지 다녀온다. 저 기억의 끝까지도. 내 습관인데 이렇게 쓰고 보니 좋은 독서 기억이 많은 것 같아 뿌듯하다. 뭔가를 두고 이리보고 저리보고, 이렇게 보고 손 끝으로도 쓸어보려는 건 내 타고난 성질인 것 같다. 오늘은 연습실을 같이 쓰는 친구를 두고 혼자 단소를 불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옆에 두고 가만 보니 악기가 많이 늘었군, 그리고 키가 좀 더 큰 것도 같은데, 근데 소리가 많이 커졌네. 나보다 어린 친구여서 내가 다 흐뭇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고 카페에도 다녀오니 우리는 참 오래 지냈구나 싶었다. 나는 누가 봐도 지루한 성격을 가졌다. 그래서 옆에 사람도 많이 없고 친구도 오래 사귄 친구 밖에 없다. 언젠가 내게 마지막으로 남은 친구가 있다면 정말 한참 오래된 친구이지 않을까. 내 속도 훤히 다 알고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가끔 생각한다.

 문장을 오래 읽는 습관이나 한 책을 두고 여러 권 읽는 습관은 느리다. 그렇지만 이렇게 남은 글자들을 보니 꽤 사랑스럽다. 아프게 둔 마음이 토닥여지는 글이어서 많이 봐주었을 뿐인데 아주 오래 남아 같이 있어주니 반갑다. 뭐든 그렇게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연습하는 노래들도, 악기 소리도, 글도, 언젠가 본 여름 하늘의 별도. 나는 역시 느리게 살아야 하는 사람인 모양이다. 날이 더워졌다. 여름이 다가오고 더울 만큼 다 더워진 것 같은데 남은 더위가 더 있는 모양이다. 오늘은 습해서 연습실에 에어컨을 제습으로 해두었다. 단소를 연습하고 있는데, 들리는 소리가 조금씩 나아진다. 평소 자주 부는 대금을 닮은 소리가 반갑다. 어린 대금이 내 손가락으로 연습되고 있다고 생각하면 퍽 답답하던 마음도 얌전해진다.

 씹어 읽는 일이 무조건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쓰다 보니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글을 쓰는 일이 여전히 어색하고 두려운데, 나도 누군가의 저런 문장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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