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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Feb 09. 2023

희망을 지지하는 일 (1)


(이 글은 2022. 11. 30. 작성되었습니다.) 


어제는 아침 일찍부터 서울출입국에 다녀왔다. 우크라이나 출신인 N과 함께, 법무부 특별체류허가지침에 따라 새로 비자를 신청하기 위해서다. 


N는 우크라이나 돈바스 사람이다. 2014년 내전이 발발, 현재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중인 곳. 그 한복판에 N의 고향이 있다. N은 2020년 3월 한국어 공부도 하고, 여행도 할 겸 한국에 들어왔다가 코로나로 인해 발이 묶였다. 여행비자는 단기 비자라 연장할 수 없었고 코로나로 인한 특별 출국기한 유예허가를 받아 체류를 하게 되었다. 그러던 2020년 5월 가족으로부터 '조카가 전쟁 중 폭격에 맞아 다리와 눈을 잃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부모님으로부터 귀국하지 말라는 요청을 받은 N은 2020년 8월, 한국에서 첫 난민신청을 시도한다. 하지만 신청서가 영어나 한국어로 작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접수를 거부당하고, 모든 서류를 영어로 번역한 끝에 2020년 11월 겨우 첫 난민신청을 접수하였다. 그러나 N의 난민인정신청은 불허되었고, 2021년 3월 이의신청을 접수했지만 1년 7개월째 아무 소식도 듣지 못한채 기다림이 계속되고 있었다. 


보통 한국에 와서 난민신청을 하는 사람은 g-1-5라는 비자를 신청해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N의 경우는 달랐다. 이미 체류기간이 도과하고 "출국기한 유예"상태에 있었기 때문이다(새로이 체류자격을 받기 위해서는 출국했다가 들어와야 하고, 체류자격을 변경하는 것은 체류기간이 만료되기 전이어야 가능하다는 것이 출입국의 원칙이다). 출국기한 유예 상태의 외국인은 유예기간 연장 없이는 당장이라도 출국해야한다. 1~3개월마다 출입국에 가서 연장허가를 받아야 하고, 별도의 신분증을 발급해주지 않으며, "취업불가"가 찍힌 종이 한 장이 그 사람의 신분증이 된다. 



신분을 증명할 어떠한 번호도 없이, 이 땅의 이방인으로 그녀는 2020년 3월부터 지금까지 체류해왔다. 그간 그녀가 혼자 출입국에 다니며 애쓴 흔적들을 살피며 속이 상했다. 한국어도, 영어도 잘 하지 못하는 그녀가 출입국 공무원들을 상대로 고군분투 했을 모습이 눈에 선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난 10월에 처음 만났다. 그녀가 비자를 새로 받을 수 있도록, 그래서 최소한 일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리고 난민으로 인정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난민불인정 이의신청 사건을 진행하기 위해 법무부 난민심의과와 수차례 통화하던 중, 우크라이나 국적자는 출국기한 유예 상태에 있더라도 법무부의 특별체류허가지침에 따라 g-1 비자를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뛸듯이 기뻤고, 우리는 서류도 미처 다 준비하지 못한 채로 서둘러 출입국에 갔다. 


어느 순간부터 출입국외국인청은 예약방문이 필수가 되었지만, 체류기간이 만료된 외국인은 예약이 불가능하고, 민원실에서 아침 일찍부터 대기표를 받아 기약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라도 서류를 받아주면 감사한 일이다. 우리가 어제 2시간을 기다려 겨우 만난 공무원은 다행히도 서류 보완을 요구하면서도 접수를 받아주었다. 그런데, N은 접수가 되도 거부당한 적이 있었다며 불안해했다. 나는 그런 N을 다독이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알게 된 많은 것이 있지만, 그 중에 한가지를 공유하고 싶다. 그가 본국에서 실력있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일했고, 멋진 그림 실력을 가진 예술가라는 사실이다. 한국, 서울의 도시 풍경을 사랑하는 그가 이곳 저곳을 다니며 스케치를 한 작품들을 보여주었고, 그 중 한 그림이 유독 내 눈길을 끌었다. 자기가 살던 옥탑의 풍경을 그린 그림이다. 그 밑에는 "좋은 집을 구하고 싶다"라고 쓰여있었다. 



왜일까? 처음 그 문장을 발견했던 어제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눈물이 나는 것을 막을 수가 없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그저 더 나은 삶을 원하는 사람의 마음, 그 당연한 것이 이렇게 힘들 일인가. 이제 새롭게 외국인등록증이 생기면 쿠팡으로 고양이 사료도 주문할 수 있고 은행 통장도 만들 수 있을거라 좋아하는 그이를 보면서 마음이 복잡해진다. 


돌아오는 길, N은 여전히 비자를 받을 수 있을까 의심에 가득차있다. 우크라이나는 지금 전쟁이 나서 한국에서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강제로 출국시키지는 않으니 걱정 말라, 일단 접수가 되었다면 받아줄거다, 수차례 같은 말을 하며 안심을 시키는데, 결국 N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내게 고맙다며 운다. 나야 말로 고맙다, 이제까지 버텨주어서... 그렇게 대답하고, 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었지만 그냥 내 눈에 고인 눈물만 연신 훔치다가... 웃으면서 그녀와 헤어졌다. 


사무실에 돌아와 N이 선물한, 직접 그린 그림으로 만든 엽서들을 정리하면서 생각한다. N이 정말 좋은 집을 구했으면 좋겠다고. 이제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 변호사로 할 수 있는 것 말고도, 친구로서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려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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