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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말 Jan 10. 2023

가스라이팅 2부

가스라이팅이라는 가스라이팅




 시장 상인들은 성실하고 착한 상연과 싹싹한 그녀의 만남을 응원했다. 나 역시 진심으로 두 사람이 좋은 만남을 이어가길 바랐고 먼저 결혼한 사람으로서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하루는 인사차 상연에게 물었다. "같이 사니까 어때요?" 상연은 "좋죠.." 하고 말 끝을 흐렸다. 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이었다. "남녀가 같이 살다 보면 당연히 부딪히는 부분이 생기게 마련이에요" 하고 자리를 깔아주자 상연은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의 고민은 그녀가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이었다. 그녀는 솔직한 성격인 탓에 상연의 부족한 점을 곧 잘 지적하곤 했는데 그 방식이 조금은 기이했다. 비슷한 나이의 두 사람이 만남을 가지는데 마치 부모가 자식을 혼내는 듯한 태도였다. 아니, 상연이 받았던 그 고압적이면서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군대에서 상병이 이등병을 갈구는 모습에 더 가까웠다. 그 지적이 상연을 위한 것이라고 하기에는 정도가 너무 심했다. 변명이라도 한 마디 했다가는 상연의 그동안의 실수와 그녀의 전 남편 이야기까지 꺼내면서 불 같이 화를 냈다. 상연은 입을 다물고 잘못을 시인하는 것이 폭풍을 잠재우는 방법임을 본능적으로 학습했다. 상연의 자존감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지적은 가게의 운영적인 부분, 심지어 재정적인 부분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왜 우유 재고를 이렇게 많이 가져가는지, 왜 커피 가격을 올리지 않는지, 왜 쓸데없이 인테리어에 돈을 쓰는지, 월 매출은 얼마인지, 순수익은 얼마인지. 카페의 운영에 그녀의 의사가 반영되고 가격과 메뉴에 변경이 생겼다. 상연은 자신의 인건비는 계산하지 않고 남는 것이 없는 장사를 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었다. 시장 장사라는 게 잘 될 때는 내 인건비 이상 가져가는 거고 잘 안될 때는 내가 적게 가져가는 거니까. 그녀는 상연에게 실망한 이유는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라고 나에게 말했다. 첫 데이트에서 그녀는 상연의 수입을 물었고, 상연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허세를 부렸다. 


 상연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 가게를 장식하고 있던 그림들도 하나 둘 사라졌다. 상연은 그녀에게 푹 빠져 있었다. 좋은 사람을 만났고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고 그녀에게 고맙다는 표현을 나에게 자주 했다. 그녀도 나에게 상연의 이야기를 했다. 상연이 나이에 비해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알려줘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했다. 남자친구가 아니라 아들을 키우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나도 그녀를 통해서 진짜 상연의 이야기를 알 게 됐다.


 상연은 5년 전, 지금의 카페를 누나와 매형으로부터 인수했다. 권리금 3,000만 원에 임대조건까지 그대로 인수하고 권리금과 보증금은 무이자로 돈이 생길 때마다 갚아나가기로 계약을 했다. 하지만 5년 사이, 카페의 수가 2배로 늘어났다. 같은 라인에만 카페가 3곳이 더 있었고 당연히 손님은 줄었다. 코로나 이후 금리상승으로 경기까지 좋지 않아 권리금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상연은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그녀는 상연 씨가 가족들에게 노예처럼 이용당했다고 생각했다. 한 달 매출이 천만 원도 안 나오는 가게를 권리금 3,000만 원에 떠넘긴 것부터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연에게 사기를 친 것이라고 했다. 게다가 권리금을 갚게 하기 위해 365일 쉬는 날도 없이 새벽부터 밤까지 혹사시켰고 그렇게 5년 동안 노예처럼 일만 하고 살았다는 것이었다. 특히 문제는 상연도 가족들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누나가 결혼해서 분가하면서 상연은 혼자 가게일을 하면서 어머니를 돌봐야 했다. 어려서부터 문제가 생길 때마다 어머니는 누나 편을 들었고, 이번 일에 대해서도 '네가 다 알아보고 인수한 거 아니냐, 가족 간에 분란을 일으키지 마라'는 말로 누나 편을 들어서 서운한 마음이 컸다고 했다. 그리고 누나는 가게를 넘기고 나서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운영에 일일이 간섭하고 CCTV를 체크하는 등 상연 씨의 불만과 스트레스는 극에 달해 있었다. 결정적으로 가족들이 두 사람의 동거를 반대하면서 사이가 완전히 틀어져버렸다.


 그녀는 상연이 가스라이팅을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가족의 탈을 쓰고 사람을 노예처럼 부려먹을 수가 있냐고. 상연이 너무 불쌍하다고 했다. 상연은 자신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그녀에게 점점 마음을 의지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꼈다. 억눌려 있었던 가족들에 대한 울분을 그녀에게 쏟아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결속은 더욱 단단해졌고, 이로써 상연은 가족들로부터 완전히 독립할 수 있는 명분을 마련했다. 동거는 어머니로부터 멀어지기 위한 명분이었고, 그녀는 누나의 간섭을 막아주는 보호막이었다. 


 상연의 누나는 은혜 씨에게 동생을 빼앗겼다고 생각했다. 고분고분 착하던 동생이 갑자기 변한 이유는 은혜 씨가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상연이 커피 가격을 올리고 CCTV 비밀번호를 바꿔버리자 상연의 누나는 결국 카페로 찾아왔다. 상연의 누나는 자신에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커피 가격을 올린 일을 가지고 상연을 나무랐다. 상연은 누나에게 더 이상 가게 일에 간섭하지 말라고 되받아쳤다. 누나는 상연에게 '여자, 그것도 이혼녀에 빠져서 가족들을 이렇게 대하냐'라고 쏘아붙이고는 분에 못 이겨 가게를 나갔다. 상연의 누나는 문을 열고 나가다가 은혜 씨와 마주쳤다. 은혜 씨는 입구밖에서 안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하지만 의아하게도 두 사람이 맞붙는 일은 없었다. 상연의 누나와 은혜 씨는 서로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이 일을 계기로 은혜 씨는 상연과의 관계에서 더욱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왜 너 때문에 너희 가족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해?' 이 한마디에 상연은 죄인이 됐고 가족들에 대한 원망이 더욱 커졌다. 상연은 누나에게 더 이상 가게 일에 참견하지 말고 가게에 얼씬도 하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 그 사건 이후 가족들로부터 멀어진 상연 씨가 어떤 마음일까 걱정이 돼, 가게에 찾아갔다. 오후 늦은 시각 텅 빈 가게에서 그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상연의 표정에서 상실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상연은 은혜 씨의 이혼에 대해 나에게 살짝 귀띔해 준 적이 있다. 그녀는 대기업을 다니는 전남편의 바람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됐고 변호사비용 때문에 빚을 갚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녀의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쑨데도 믿을 상연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지만 나는 의문이 생겼다. 대기업 다니는 남편의 바람으로 이혼을 했다면 재산분할과 위자료를 충분히 챙겼을 텐데 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빚이 생겼다는 점이 이상했다. 하지만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처럼 서로를 필요로 하는 두 사람을 보니 이런 내 의문이 선을 넘는 행동처럼 느껴져서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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