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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의 아픔

반 세기 친구의 아내

by 이상수

아내가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

"아무래도 이상하다"라는 혼자 말을 한다.

"누가 이상하다는 말이오?" 내가 물었다.

"기린 엄마하고 통화를 했어요. 그런데 말의 느낌이 예전의 상냥함이 사라지고 허전하고 쓸쓸한 감정이 든다는 말이야"


그런 느낌은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45년 전부터 알고 지내는 현지 씨에게서도 들었다. 아내와 비슷한 감정의 흐름이었다는 말로써 표현했다. 비록 전화로 주고받는 대화일지라도 미소가 흐르는 얼굴이 사라진 긴장된 모습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무엇에 쫓기듯 불안한 정서를 가슴으로 전해진단다.

또 다른 이야기도 들었다. 평소에 전화 연락이 없었는데 갑자기 전화를 하여 맘에 없는 얘기를 하여 깜짝 놀라게 됐다는 내용이다.


아내도 답답하기만 한가 보다. 기린 아빠에게 물어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내는 기린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기린 엄마에 대한 얘기는 일절 하지 않고 평소에 하던 다른 대화로 시간을 지연시키려고 노력을 하는 안쓰러운 모습이다. 내용은 다양하다. 첫돌을 지난 손자가 얼마나 귀엽게 웃음과 행복을 가져다주느냐?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가까이하는가? 핵심은 피하고 그냥 일상적인 대화만 하다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괜히 허전함이 따라온다.


뜨거운 여름이 다가왔다.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 방문해도 좋으냐고 질문을 했다. 괜찮다는 대답이다. 나는 곧 시외버스를 타고 약속한 정류장에서 내렸다. 친구는 승용차를 운전하고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정년퇴직 할 때 운전하던 자동차를 목회하는 딸에게 주었다. 활동 영역이 줄어든 이유가 하나 있다. 주차장에 세워두는 시간이 더 많았기에 배터리 방전이 많아져 신경이 쓰이는 문제가 생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겨울 철 살얼음판 도로를 걷다가 미끄러지면서 고관절 골절상을 입어 수술하고 난 다음 운전하기가 부담이 됐다. 할 수도 있으나 나로 인해 다른 이들에게 피해가 될 여지가 있다면 문제가 될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 있었기에 운전을 접었다. 불편한 때도 있으나 요즘 교통 체계가 워낙 발전되었으므로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 지구 온난화에 한 사람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꼭 필요할 때는 택시를 이용하면 되겠다는 편안한 마음을 갖기로 했다.


친구에게 점심 식사를 하자고 했고 밥값은 내가 부담하기로 약속하다. 혼자였다.

"부인은 어떻게 된 거요?" 내가 질문했다.

"미국에 있는 친정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습니다."

뜨거운 설렁탕을 깍두기와 함께 맛있게 먹었다. 도시의 변두리라서 아주 조용한 거리다. 식사 후 가까운 거리에 카페 간판을 찾는다. 요즘 젊은 이들이 행사처럼 들리는 곳이다. 이에 뒤질세라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아주머니 들도 밥값보다 더하는 음료수를 마시면서 웃음꽃을 피운다. 익숙하지 못한 아내는 그렇게 하는 모임에서 이단아처럼.....


"배 부른데 뭣하려고 카페를 찾고 있습니까"라고 말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이의를 제기하지 말고 리더가 이끄는 대로만 가라고."


카푸치노와 커피 라테를 주문했다. 나는 부드러운 라테를 뜨겁게 해서 천천히 마신다. 카푸치노의 향이 전해오기도 한다. 나는 조심스럽게 부인 얘기를 꺼냈다.


"요즘 기린 엄마의 건강이 어떻습니까?"

"편하지 못합니다. 안타깝게도 치매 현상이 찾아온 느낌이 듭니다. 파킨슨과 겹친 것 같습니다. 잘 넘어지는 모습이기에 보호자가 곁에 함께 있어줘야 합니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넘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먹는 양이 많아졌다. 말이 많아졌음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아내는 얘기만 들으며 얼굴만 생각하면서도 눈물샘을 터뜨려 손수건을 찾는다.


주변 사람들의 아파하는 맘도 그러한데 가족들의 심정은 얼마나 더하랴. 그중에도 친구인 남편의 아픔이 제일 깊으리라 생각하니 무슨 말로 위로할 것인지 쉽게 답을 찾을 수가 없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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