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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책방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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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진희 Dec 28. 2020

노란 불빛을 기다리며

3주 만에 책방에 들어섰다. 사람이 온기가 없어 썰렁해진 공간이었지만 여전히 예쁜 자태를 뽐내는 것 같았다. 오래 닫혀있던 창을 활짝 열고 묵은 먼지를 싹 털어냈다. 책들이 그동안 뭐하느라 여태 얼굴을 안 보여줬냐는 듯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몇 주간 손상된 책은 없는지 구석구석 살피며 돌아보았더니 다행히도 책들은 아픈데 없이 얌전히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근심이 있어도 발을 들여놓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공간, 책방은 나의 작은 아지트다. 다시 이곳에 온기가 돌고 새로운 책이 들어오고 자신의 짝꿍을 찾듯 나만의 책을 골라갈 손님들이 오면 예전의 활력을 다시 찾을 것이다. 음악이 울리고 따뜻한 불이 켜지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가도 문득 이 코로나 대란 속에서 이 외곽의 작은 책방까지 발걸음 해줄 손님이 아직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식료품이나 생필품은 어떤 상황에서든 필요하겠지만 책을 꼭 사야 한다며 밖을 나설 사람들이 있을까 하는 현실적인 생각이 든 것이다.


식사를 챙기듯 책을 챙기는 시대가 다시 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밥은 굶어도 책을 보겠다며 마음의 양식을 쌓는데 열중했던 사람들이 다시 생겨날지 모르겠다.  어쩌면 모두 힘든 시기를 조용히 홀로 버티며 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책방은 살아있어야 한다. 언제고 삶에 지쳤을 때 문득 찾아와 좋은 위안을 받아갈 수 있게 조용히 문을 열어두고 기다리는 게 책방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일지 모르겠다. 나흘 후면 다시 책방 문을 열게 된다. 고작 한 달 쉬었을 뿐인데 마치 아주 오랜만에 문을 여는 기분이다. 혹여 찾는 손님이 없더라도 언제든 책으로 마음의 위로를 받고 싶은 분을 위해 문을 활짝 열어둔다 생각하고, 또는 찾아주시는 분이 많이 계시면 이 어려운 시기에 밥보다 책을 사랑하는 그 아름다운 마음을 높이 칭찬해드리리라 다짐해본다.


지난 겨울 작은 초가집이 너무 추워서 숨을 내쉬면 얼음꽃이 피고 이불깃에서는 사각사각 소리가 날 지경이었다. 나같이 게으른 사람도 한밤중에 일어나서 급한 대로 [한서] 한 질을 이불 위에 비늘처럼 차곡차곡 덮어서 추위를 조금 누그러뜨렸다. -이덕무, [겨울과 책]


내일부터 비와 눈이 오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리고 또 맹추위가 다가온다고 한다. 밖은 춥고 마음도 얼어붙는 계절이지만 누군가 다정하게 속삭이는 듯한 책을 한 권 권하는 따뜻한 서점으로 많은 사람들 곁에  남고 싶다. 그 날이 곧 다가온다. 처음 책방을 열던 때처럼 살짝 설레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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