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세 번째 핵심 요소: 대학 네트워크에서 질 높은 교육 제공 -1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가 성공한 교육 정책으로 자리 잡으려면 단순히 재정을 많이 투자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투입된 재정이 실질적으로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네트워크 대학들 간에 교육 자원 공유가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공동입학을 실시하는 네트워크 대학들은 이 학생이 어느 학교 소속인가 하는 칸막이가 더 이상 무의미하다. 학생들은 자유롭게 네트워크 대학들의 수업을 교차하여 들을 수 있고 다른 대학의 시설들을 이용할 수 있다.
교육 자원 공유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다른 대학 교수의 수업을 듣는 인적 자원 공유와 다른 대학 시설을 이용하는 시설 자원 공유로 나눌 수 있는데,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교수의 인건비와 대학 운영비를 대학 네트워크 운영 본부에서 함께 관리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교육 자원 공유가 이루어질 수 있다.
유럽 대학의 ‘볼로냐 프로세스’는 교육 자원 공유의 대표적 사례이다. 볼로냐 프로세스는 “유럽 각국의 서로 다른 대학 학제를 유럽 공통의 학제로 변화시키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유럽 고등교육 변혁운동”(각주1)이다. 다시 말해, 유럽 각 나라 대학 교육의 내용과 형식을 통일시켜서 유럽 어느 나라의 대학을 가든지 양질의 교육을 제공받을 수 있고 각 나라 간 대학 교육의 자원을 서로 공유하면서 유럽 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정책이 볼로냐 프로세스인 것이다. 볼로냐 프로세스는 “1999년 이탈리아의 볼로냐에서 29명의 유럽 고등교육담당 장관들이 볼로냐 선언을 발표한 데에서 비롯”(각주2)되었는데, 이때 결정된 볼로냐 프로세스의 주요 원칙은 <표8-1>(각주3)과 같다.
표8-1 볼로냐 프로세스의 주요 합의 사항
자료: 오정은(2008). EU집행위원회의 볼로냐 프로세스 참여.
볼로냐 프로세스가 추진된 현실적인 이유는 당시 유럽 대학의 교육의 질이 떨어져서 북미 지역으로 학생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고 볼 수 있는데, 이 개혁 정책이 성공하면서 유럽 각국의 대학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학생들의 만족도도 높아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볼로냐 프로세스는 유럽 내 어느 대학을 가더라도 균질한 수준의 교육 여건을 제공하고 또 서로 활발하게 교육 자원을 공유하기 때문에 여러 대학에 개설된 자신에게 필요한 교과목을 수강하는 것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A대학에서 4개의 전공 수업을 듣고, B대학에서 나머지 5개의 전공 수업을 듣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학점 교류를 교과목 모듈화라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앞서 6장에서도 살펴본 바가 있다. 모듈화된 교과목을 듣는 대학 네트워크 체제에서 ‘남미 지역 통상’을 전공하는 학생의 경우 <표8-2>(각주4, 표6-6과 동일)와 같이 두 대학에서 필요한 수업을 나누어 수강할 수 있다. 한 대학이 개설할 수 있는 전공 교과목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교과목 모듈화로 수업을 듣게 되면 교육 자원의 공유 효과는 크게 높아진다.
표8-2 교과목 모듈화의 예
자료: 임재홍(2020). 대학통합네트워크 입시의 의미와 방안.
교과목 모듈화는 각 대학의 개설된 교과목의 상황과 학생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구성될 수 있다. 학생들은 이와 같이 모듈화된 수업을 통해 졸업 학점과 자격 기준을 채워서 대학 네트워크 인증 학위를 받게 되고, 대학 네트워크 인증 학위를 받게 되면 원소속 대학의 학위도 함께 받는다. 즉 대학 네트워크 소속 학생들은 졸업 시 두 개의 학위를 받게 되는데, 양질의 교육 수준과 자격 기준을 충족하도록 관리되는 대학 네트워크 인증 학위가 실질적으로 학생의 실력을 보증하는 증표가 될 것이다.
볼로냐 프로세스가 주로 학부와 관련된 정책이라면 석박사 프로그램과 관련된 정책으로 ‘에라스무스 문두스 프로그램’이 있다. 에라스무스 문두스 프로그램은 “유럽 연합의 경제적 경쟁력 확보와 더불어 비유럽국가들과의 학문적 및 외교적 협력을 통해 다양한 문화 간의 이해와 소통 체계를 강화”하고자 하는 고등교육 개혁 정책으로 주요 내용은 <표8-3>(각주5)과 같다.
표8-3 에라스무스 문두스 프로그램의 주요 내용
자료: 김륜옥(2009). 해외 고등교육-에라스무스 문두스 프로그램. 논문 내용을 표로 재구성.
<표8-3>의 내용을 보면 에라스무스 문두스 프로그램은 석박사 과정에 공동 학위 과정을 개설하되, 최소 3개의 유럽연합 대학과 그 밖의 비유럽국가 대학이 함께 참여하여 과정을 개설하게 되어 있고 참여하는 석박사 학생에게는 연간 10,000~129,900유로의 장학금이 지원된다. 학생들로서는 여러 대학의 수업과 시설을 이용할 수 있으며 경제적 부담 걱정 없이 학업에 집중할 수 있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나라 간 협력이 이루어지는 수준은 아니지만 우리나라 내에서 여러 대학이 공동으로 학생을 선발하고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형태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될 때 학생들이 누릴 수 있는 교육 자원의 범위는 크게 넓어진다. <표8-4>(각주6)와 <표8-5>(각주7)는 김종영이 ‘서울대 10개 만들기’에서 정리한 우리나라 거점국립대와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들의 학과별 교원 수이다.
표8-4 거점국립대학 4개 학과 교수 인원
자료: 김종영(2021). 서울대 10개 만들기.
표8-5 University of California System 4개 학과 교수 인원
자료: 김종영(2021). 서울대 10개 만들기.
<표8-4>와 <표8-5>에서 보듯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과 우리나라의 대학은 이미 교수진의 숫자에서 비교가 안 되는 규모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계 유수의 대학 수준으로 교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대학 간 연합과 교육 자원의 공유가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나라 대학들이 나라 안에서의 경쟁에 갇혀 있고 세계적 추세와는 무관하게 자국 내에서의 대학서열에 머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두 가지 면에서 현재 우리나라 대학이 처한 규모의 한계를 극복할 방책을 가지고 있다. 우선 전폭적인 재정 지원으로 OECD 평균 수준의 교수 1인당 학생수를 확보하여 <표8-4>에서 보여주는 현재의 수치보다 훨씬 상황을 호전시킬 것이다. 거기에 더해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대학 간 교육 자원 공유를 활발하게 진행하여 모듈화된 수업 수강이 이루어지고 여러 대학의 수업을 수강을 통한 공동 인증 학위가 수여된다.
대학 공동입학 네트워크는 학력을 하향 평준화하는 정책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 일부 최상위권 대학에 교육 자원을 몰아주고 있는 상황을 벗어나 모든 대학의 교육 여건을 골고루 향상하고 그 자원을 서로 공유함으로써 학력의 상향평준화를 이룰 수 있는 근본적인 대학교육 개혁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각주
1) 오정은(2008). EU집행위원회의 볼로냐 프로세스 참여. 유럽연구 제26권 2호. p.318.
2) 오정은(2008). 위의 자료. p.319.
3) 오정은(2008). 위의 자료. p.322.
4) 임재홍(2020). 대학통합네트워크 입시의 의미와 방안.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학서열해소 열린 포럼’ 자료집. p.161.
5) 김륜옥(2009). 해외 고등교육-에라스무스 문두스 프로그램. 대학교육 160권. <표8-3>은 이 논문의 내용을 표로 재구성한 것임.
6) 김종영(2021). 서울대 10개 만들기. p.242에 나온 표를 일부 수정한 것임. 김종영은 이 표가 2021년 10월 기준의 각 학과의 웹사이트를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실제 상황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밝히며, 서울대 사학과 교수진 수는 국사학과, 동양사학과, 서양사학과의 교수진의 수를 합한 것이고, 서울대는 물리학과의 경우 물리천문학부로 분류되어 있는 학부에 포함된 모든 교수들의 수를 합한 것이라고 밝힘.
7) <표8-4>와 마찬가지로 김종영(2021). 서울대 10개 만들기. p.242에 나온 표를 일부 수정한 것임. 김종영은 UCLA, UC San Francisco, UC Irvine, UC Davis, 그리고 UC Riverside는 물리학과와 천문학과(Department of Physics and Astronomy)의 교수진을 합한 것이고, UC Merced는 응용수학과(Department of Applied Mathematics)의 교수진의 숫자라고 밝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