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고 싶다'
저는 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요. 아직도 종종 자기 비하와 피해의식에 빠지곤 하지만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는 옛날에 비해 상당 부분 극복했기 때문이에요. 저의 낮은 자존감의 원인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었지만 외모가 큰 역할을 했어요. 철 없이 친구들과 지내다 외모를 신경 쓰게 된 건 사춘기가 시작되는 15살 무렵이었어요.
저는 게임만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하루에 많으면 10시간씩 심지어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게임했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pc방을 밥먹듯이 다녔죠. 반에 한 명씩은 있는, 집에서 밤새 게임만 하고 학교 와서는 엎드려 있는 학생. 그게 바로 저였어요. 온라인에서는 레벨업을 누구보다 빨리하고, 여러 유명한 길드에서도 데려가고 싶어 하는 인기남이었어요. 하지만 현실에서는 키 작고, 머리카락에서 비듬 떨어지고, 패션 센스 꽝이고 잘하는 것 하나 없는 약점 투성이었어요.
대갈장군
친구들은 이런 제 약점을 가만히 두지 않았어요. 저의 순대 같은 뱃살과 어깨에 비해 큰 머리를 놀리며 별명을 만들었어요. 또한 누군가 제 이름으로 불리면 괜히 질색하면서 화를 냈어요. "아, 죽을래?! 너 방금 한 말 사과해라" 저는 가만히 있는데 자기들끼리 서로 욕하고 싸웠어요. 친구들은 제 반응이 재밌는지 일부로 이름을 잘 못 불렀고, 그럴 때마다 제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반에서는 일종의 밈(meme)이 되어 제 이름으로 불리는 게 욕이 됐어요. '내가 뭐 어때서..' 저는 제 이름이 문제인 건지. 왜 이렇게 태어난 건지. 때론 자신이 원망스럽고 우울해지기도 했어요. 반에 있기 싫어서 꾀병 부리고 조퇴하거나, 졸리지 않는데 수업 시간에 자는 척을 하며 하루하루 버텼어요.
어린 마음에 상처받고 힘든 시기가 많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떳떳한 학교 선생님이 됐습니다. 그런데 발령받고 보니, 교실 속에는 과거 저의 모습을 쏙 빼닮은 학생이 있었어요. 컴퓨터 게임에 빠져 살고, 편식이 아주 심하며, 친구들에게 관심받고 싶어 무리한 장난치고, 외모 컴플랙스가 마음속 깊은 곳까지 있고, 심지어 수업에 집중 안 하는 태도까지 모두 닮았어요. 정말 아들이 태어나 저를 닮았다면, 이 아이 같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학생들 모두에게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 학생에게 조금 더 정이 가고 눈길이 갔어요.
지금은 많이 괜찮아졌지만 저는 여기까지 오는 길이 너무 힘들고 돌아왔어요. 그래서 그 학생은 편안히 지름길로 갈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어요. 12살의 시선에서 부담스럽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신경 써서 조심스럽게, 차근차근 말했어요. 최선을 다해 말해주었고, 흔한 선생님과 제자가 아니라 공감대가 많고 속마음을 터 놓고 말할 수 있는 사이였기에 제 말에 귀 기울여줬어요.
조금씩이지만 친구 관계의 배려, 어른 앞에서 예의, 기초체력, 자기 절제 등 다양한 방면에서 변해가는 학생의 모습에 정말 뿌듯했어요. 다 큰 성인도 변하기 힘든데, 12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했고, 앞으로 나아갈 그 아이의 미래도 궁금합니다.
이 세상에는 저와 그 학생 외에도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은 나이, 성별에 상관없이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다들 하나쯤은 컴플랙스를 가지고 살고, 아무래도 타인과의 비교가 만연한 사회이니까요. 저는 과거 15살 우울증에 빠진 저와 현재 25살 선생님이 된 제가 상담하는 이야기를 써보고자 합니다. 책을 쓰면서 과거 기억 속 어린 저를 치유하고,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세상이 요구하는 미의 기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매력을 찾으라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면 우선 나부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라고.
저는 놀림받고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기억상자에 넣어 잠갔어요. 누가 제 학창 시절을 물어보면, 정말 깊은 사이가 아니면 대충 대답하고 화제를 돌리기 바빠요. 떠올리기 싫은 거죠. 저는 예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고 싶어요. 여러 책을 읽어보니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사랑하라고 하더군요.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는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도 포함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제는 잠가놨던 상자를 열어서 마주하고 치료하고 싶어요. 저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힘들다면, 과거 저와의 이야기가 도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