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주말]2025-03-08/사랑과 독립으로 채운 '판생' 여정
2016년 유난히 따스했던 봄, 암컷 판다 ‘아이바오(愛寶)’는 지금의 바오 가족이 살고 있는 판다월드에 사랑스러운 봄의 향기를 가득 머금고 우리에게 왔다. 당시 3.5세였던 아이바오는 함께 온 한 살 많고 장난기 많은 수컷 판다와는 다르게 수줍음이 많았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막 어른이 되고자 하는 소녀와 같은 시기에 새롭게 마주한 환경을 특히 낯설어했다. 주키퍼들은 그런 아이바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충분히 기다려 주면서 조금씩 천천히 진솔하고 순수한 자세로 편안하게 해주려 노력했다. 그것이 많은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겠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때 아이바오의 예민하고 차가웠던 눈빛이 지금의 편안하고 따스한 눈빛이 되는 데까지는 꽤 오랜 시간과 꽤 많은 경험이 필요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제 막 독립적인 생활을 시작하고 성장하는 암컷 판다로써 새로운 환경 적응과 더불어 자신에게 찾아오는 크고 작은 변화들 또한 몸으로 계속 익히고 쌓아야 하는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사랑스러운 봄을 스스로 맞이하기 위해 나머지 계절들을 치열하게 감당해야 하는, 오로지 야생동물 암컷 판다의 몫이었을 거라고 지금에서야 나는 생각한다.
계절성 단발정 동물인 판다에게 봄은 특별하다. 설명하면, 특정한 계절의 단 며칠 만 이성을 만날 수 있는 특성을 가진 동물이라는 뜻이다. 판다들의 이 설레고 기쁜 만남은 봄이라는 계절에 이루어지면서 이들의 큰 생존 목표인 번식 성공이라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시동이 된다. 이때의 아이바오는 잠시 사랑스러운 봄의 향기를 잃은 것만 같아 보이기도 한다. 그동안의 얌전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야생동물의 본능에 지배를 받는 맹수가 된다. 특히 발정 증세와 이성을 처음 경험하던 때를 돌이켜 보면 적잖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평소 신뢰를 바탕으로 교감을 나누던 주키퍼의 간섭도 어렵게 된다. 그 시기에만 들려주는 울음소리를 내고, 물에 몸을 담그는 행동을 반복하며, 먹지 않고 방대한 활동을 하면서 지형지물에 자신만의 특별한 표식을 남기는 마킹 행동이 점점 증가한다. 이 모든 것이 짧은 발정 기간에 이성과 소통하고 만나면서 동기화에 집중하기 위한 작업인데, 이를 위해 판다들은 이전 겨울부터 신체와 행동의 변화를 겪는다.
어느덧 아이바오는 한국에서 이런 사랑의 봄을 4번, 육아의 봄을 4번 포함하여 총 10번째 봄을 맞으며 벌써 11.5세의 ‘판생(판다의 삶)’ 한 가운데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아이바오는 국내 최초 아기 판다를 훌륭히 키워내 자신처럼 독립을 시켰고, 지금은 다시 1.5세 쌍둥이 판다의 엄마로 살고 있다. 어쩌면 아이바오는 암컷 판다로써 이곳에 정착하는 삶을 이루기까지 오랜 시간 동안 몇 번이고 기쁨의 봄이자 사랑의 봄이며 행복의 봄이 되고 나서야 진정한 독립과 안정을 이룬 것은 아닐까. 아이바오는 그 축적된 경험으로 이제 노련하고 성숙한 판생을, 판생 전체에서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봄을 살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런데도 아이바오는 앞으로 계속해서 다른 계절들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게 어떤 것이 되었든 아이바오는 늘 따스한 봄을 향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이유는 이제 없어 보인다. 그동안의 당당하게 체득한 계절의 기억들이 있어 가능할 것이고, 자신의 판생이 늘 봄이 되도록 사랑으로 따스하게 가꾸어 가고 있으니 아낌없는 응원이면 그만이다. 매우 혹독했던 지난 한파 속에서도 쌍둥이 판다를 건강하게 돌봤던 아이바오처럼 바오 가족이란 고리로 연결된 우리도 시린 겨울을 당당히 견뎌 냈으니 가장 따스한 올봄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따스한 봄이 오면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되겠지. 그토록 지난했던 겨울은 이토록 사랑스러운 봄을 맞이하기 위해 우리가 기꺼이 걸어야 했던 행복의 여정이었다는 것을.
송영관 에버랜드 주키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