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엄마

-미안해, 아들

by 행복반 홍교사

오늘은 오전부터 학부모 연수가 줌으로 있었다.

오전 내내 듣는 강의였기에 아이들과 특별한 이벤트 없이 오전시간을 보냈다. 엄마가 강의를 들어야 하니 너희들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일러두었더니, 이런저런 모양으로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었다.


그렇지만 집에만 있기에는 남자아이들이 얼마나 근질근질했을까. 오후에는 첫째의 태권도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태권도에 가서 열심히 운동하고 오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렇게 첫째를 등원 차량 탑승 시간에 맞춰 보내놓고는, 둘째랑 보드게임을 시작했다. 근데 태권도 도착할 시간이 지났는데 평소에 오던 도착 알림이 오지 않는 것이다.



무슨 일이지?


전에 보니 조금 늦게 차가 오거나 아니면 차량 선생님이 아이를 보지 못해 그냥 지나 가시는 경우도 가끔 있었기에 혹시 그런 일이 생겼나 싶었다. 아이는 핸드폰이 없기에 연락을 할 수는 없고, 차량 운행을 하신 관장님께 문자를 드렸는데 확인을 못하시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아이가 기다리는 곳으로 가볼까 했더니 둘째는 자기는 나가기 싫단다. 그럼 잠깐만 기다리라고 형아가 혹시 아직 기다리는지 보고 오겠다고 그랬더니 그것도 싫단다.


그러면 어떡하지? 태권도 장으로 급히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지 않아 다시 걸면서 신호음을 듣고 있는데, 밖에서 다다다다 발소리와 집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태권도 차량 타는 데 무슨 일이 생겼나 보구나.'

그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가 오래 기다린 거구나.. 무슨 일이었을까' 싶었다.

문이 열리고 이내 들어온 아이의 한 마디.


"엄마, 태권도 방학이잖아."

눈물을 그렁거리며 말하는 아이의 말을 듣고는 예상치도 못한 말에 "아!" 그랬다.


방학이라고 지난주에 공지해 주셨는데 주말 지나면서 새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당연하게 아이를 태권도 학원에 보낸 나란 사람이라니... 더운데 밖에서 차가 언제 오나 기다렸을 아이를 생각하니 너무나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너무나 미안했다.


먼저, 진짜 미안하다고 아이에게 사과했다.

엄마가 안아주는 게 싫으면 화가 풀릴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우리 첫째는 엄마의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아주었다. 그리고는 "엄마, 방학인 거 몰랐어?" 한다.


"응, 완전히 까먹었어.ㅠㅠ 진짜 미안해..." 했다.



아이의 말은 이랬다.


기다리고 기다리는 데 태권도 차가 안 오더란다. 시간을 모르니 그냥 오겠거니 하고 기다리는데, 어떤 아줌마가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뭐 하냐고 물어본 모양이다. 태권도 차를 기다린다고 했는데, 21분에 나왔고 25분에 차가 온다고 했더니 지금 50분이라고 알려주셨단다. 엄마 핸드폰 번호는 모른다고 하니, 태권도 가방의 태권도 학원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해 주셨고, 오늘 태권도 학원 방학인 걸 알고는 바로 뛰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아이의 말만 듣고는 그 '아줌마'가 누구신지 잘 모르겠지만, 정말이지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그 더운데 밖에서 오매불망 태권도 차량을 기다렸을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고, 학원 방학 하나 챙기고 기억하지 못한 내가 너무 바보 같았다.


하지만 이번 일을 통해 아이와 조금 더 비상 상황(?) 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이야기를 나누는 계기도 되었다.


첫째, 엄마 핸드폰 번호는 꼭 외우고 있자.

열심히 두, 세 번 반복하면서 첫째, 둘째와 같이 소리 높여 외워 보았다. 위급한 상황시 엄마 핸드폰을 기억하고 있다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말이다.


둘째, 아직 핸드폰이 없는 우리 아이들, 특히 가까운 거리는 혼자 다니는 일이 많은 첫째에게는 시계를 꼭 차고 나가자고 얘기 나눴다.

차량이든 약속 시간이 예상보다 5-10분 이상 늦어지면 더 기다리지 말고 바로 지체 없이 집으로 오라고 말이다. 집에 와서 무슨 문제가 있는지 엄마랑 같이 알아보고 다른 대안을 모색해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예전에 중학생 때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왔는데 아무리 벨을 눌러도 엄마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다. 그때는 지금처럼 현관문이 비밀번호로 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열쇠로 문을 열었던 시대였고 가정 주부셨던 엄마가 외출을 하시면 미리 열쇠를 우리에게 주시고 가시거나 어디에 있다고 말씀해 주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날은 특별한 얘기가 없었기에 당연히 엄마가 문을 열어 주실 거라고 생각하고 벨을 눌렀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


학생이라 돈도 없으니 어디 앉아 있을 만한 곳에 가 있을 수도 없고 그저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학교 갔다가 몸도 힘들고 빨리 편히 쉬고도 싶었는데, 마음 불편하지만 연락을 할 수도 없어 계속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엄마가 왔고 두 손 가득 장 본 물건들을 들고 오는 엄마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때 난 엄마에게 화를 냈던가?'

엄마도 나름 놀다가(?) 들어오신 게 아니고 땀 흘리며 장을 봐 온 거고, 깜박 잊으셨던 거 같이 많이 당황하신 것 같은데.. 이 상황에서 화를 낼까, 말까 고민을 했던 것 같다.

근데, 화가 중요한 게 아닌 거 같다.

그냥 진심을 다해 "미안해." 한 마디가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여러 많은 이유들이 있었지만, 어쨌든 기다리게 했고, 힘들게 해서 "너무나 미안했다"라고 그 한 마디가 듣고 싶었던 것 같다.


그때 엄마는 뭐라고 하셨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마음 한 구석에 엄마의 미안하다는 말이 듣고 싶다는 생각이 지금도 있는 것 보면 그 말은 안 하셨던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우리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엄마가 태권도 학원 방학을 잊어버려서 널 고생시켜 정말 미안했다고 눈을 보고 안아주며 말해줄 것이다. 진심으로 사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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