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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소녀 Aug 30. 2024

전교 1등 이세벨과 재벌집 아이들

2241121일 수요일

             

 “자! 창세기 역사 수업이 종료됩니다. 학생들은 자신의 자리에 착석해 주세요.”               


 수업로봇의 안내말에 이세벨은 우아하고 천천히 분수대 앞에 있는 자신의 이동의자인 이자로 걸어가 앉았다. 피유다와 강가인도 이세벨 양쪽에 앉고 다른 아이들도 다 착석하자, 수업로봇은 학생들의 수를 파악하더니 교실배경이었던 가상현실 공간에서 순식간에 흰 배경의 보통 교실로 돌아오도록 시스템을 제어하였다. 이자들은 자동으로 총 가로 네 줄씩 세로 다섯 줄으로 배치되자마자 교실바닥에서 올라온 원형의 기둥과 이자 아래 원자 부분이 접합하여 학생들의 시스템이 수업시스템에 바로 연동되었다.  

 이세벨은 맨 앞쪽 줄, 맨 첫 번째 자리에 앉았는데, 자신이 정한 자리가 아니라 등수대로 매긴 자리였다. 피유다와 강가인은 역시나 이세벨의 오른쪽에 위치했다.

 지름 50센티미터의 원형에 세로길이 100센티의 수업로봇이 학생들의 의자들을 감지하여 출석체크를 막 끝내자, 곧바로 평소처럼 길이 40센티 되는 전자막대기들이 교실 바닥에서 올라와 학생들 눈높이 앞에서 양쪽으로 가로 40센티쯤 펼쳐져 홀로그램 화면을 밝혔다. 이 화면은 일명 ‘수업판’이라 불린다.

               

 “자! 이번에는 수학시간입니다. 수학을 하는 이유는 실생활에 쓰일 게 없다고 생각해도 뇌구조를 논리적으로 만들어주는 교과라 ‘사람’, 특히 성장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꼭 필요한 학문입니다. 항상 교과를 시작할 때 교과의 동기를 생각하세요.”  


 수업판에는 가나안 학교나 창세기 학교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은 수학 문제들이 나열돼 있었다.               


 “20분의 시간을 주겠습니다!”     

 “교과의 동기를 생각하라면서 왜 이렇게 어려운 문제들을 주는 거야? 우리도 이엘리네 따라갈 것 그랬다.”   

 “조용! 조용! 떠들면 감점입니다!”  

  

 맨 뒤 학생이 조용히 말했음에도 맨 앞에 있던 수업로봇이 듣고 바로 지적했다. 귀도 밝다.

이세벨은 전교 1등 답게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문제를 하나씩 훑어보았다. 총 10문제였다. 평소처럼 아무 감흥 없이 수업판에 검지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풀기 시작하였다. 옆에 앉은 강가인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수업로봇을 째려보다가 머리를 쥐어짜기까지 하면서 문제를 풀었고, 피유다는 헬퍼를 쓴 채 문제들을 뚫어지게 보다가 눈치를 살피며 헬퍼를 몇 번 터치하더니 바로 풀기 시작했다. 이 세 명 외에 다른 14명의 학생들은 문제를 띄엄띄엄 풀거나, 풀다가 말거나, 못 풀어서 머리만 긁적이고 있었다.

               

 “시간이 다 되면 채점에 바로 들어갑니다.”               


 '시험 끝'

 주어진 시간이 끝났다. 전교 1, 2, 3등인 이세벨과 피유다, 강가인은 손을 내려놨지만, 더 쓰려고 했던 학생들은 더 이상 써지지 않는 수업판에 그만 한숨을 내쉬며 손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이세벨 20점 만점. 피유다 19점. 강가인 18점. 김준경 10점, 강소라 9점, 손경표 8점….”

               

 수업로봇은 바로 점수를 읊었다. 오직 소돔 학교에만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모두들 지금 화면에 뜬 틀린 문제들은 다시 푼 후, 오늘 저녁까지 제출하세요. 다음 시간에는 2차 시험이 있습니다. 모든 수업은 여러분들의 직업이나 삶의 방식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이세벨, 피유다, 강가인 이 셋은 다음 수업 후에 상담이 있으니 잠시 남도록 하십시오!”

               

 수업로봇이 전달사항을 전하고 나니 바로 그 자리에서 전원이 꺼졌다. 마침 쉬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아~"

 "난 죽었다."


학생들은 수업판을 보며 한숨을 내쉬는 빈도수가 점점 많아졌다. 이들의 수업판에는 왜 틀렸는지 이유가 적혀 있었고, 이 내용은 그대로 각 학생의 집에 전달되었다. 보통 수학뿐만 아니라 다른 수업에서의 성취도도 즉각 집으로 전달되어 부모님이 자기 아이의 학습상태를 바로 알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띠리링~ 김준경! 20문제 중에 10점? 그렇게 과외를 시켰는데, 왜 그 정도밖에 안 돼? 우리 집이 어떤 집인 줄 알아? 고급과학개발자만 내리 맡은 집안이야. 너희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형도 다 똑똑한데 왜 너만 그러니! 집에 들어오면 알아서 해!”

 “띠리링~ 강소라!!!!!!! 소돔 학교에 어떻게 보냈는데, 이 점수가 뭐야? 당분간 용돈 없어!”

               

 쉬는 시간이 되고 나서 여지없이 학생들의 헬퍼에는 불이 났다. 수학 점수를 본 엄마들의 성화였다. 전 세계에서 공부 잘하기로 소문난 학교고, 인기 직업인 과학기술개발자로 바로 스카우트되어 갈 수 있는 학교라 소돔 엄마들의 극성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들의 전화를 받은 아이들은 핏기가 없는 표정으로 이자 뒤에 눕듯이 기대기도 하고, 잠시 기분전환을 하러 교실 한쪽 구석 운동영역으로 지정된 자리에서 제자리 달리기도 하였다.      

 이 운동영역은 교실 바닥에 있는 네모난 칸이다. 딱히 기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네모난 경계가 설정되어 있고 높이가 1센티 높다는 점이 다른 교실바닥과의 차이점인데, 공통점이라 하면 바닥 색깔이 다 같다는 점이다. 이름은 '러닝무빙'이라고 불린다. 이 러닝무빙바닥에서 뛰면, 지구종말 전의 러닝머신처럼 바닥이 움직이면서 앞에 보이는 하얀 벽에 '속도와 지방이 얼마나 태워지고 있는지', '숨은 얼마나 들이시고 내쉬고 있는지' 그 기본적인 측정값이 나온다. 그리고 선택하는 모듈에 따라 러닝무빙의 속도가 달라지기도 하고 바닥의 질감도 달라지기도 한다. 또한 '단순히 기분 전환 할 정도, 근육을 만들 정도, 지방만 태우고 싶을 정도, 심장을 건강하게 할 정도’ 등등 여러 모듈이 있다.


 “자! 마지막 수업인 인성 교육입니다.”

      

 다시 수업시간이 되자, 전원이 켜진 수업로봇은 하늘색 빛을 내며 학생들의 이자들을 동그랗게 배치시켰다. 그와 동시에 학생들 앞에 교실바닥에서 올라온 각 테이블이 솟아 나와 자리를 잡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는 누르면 자신의 이름이 울려 퍼지는 부저가 놓여있었다. 다들 자리에 착석하자 수업로봇이 수업진행을 시작하였다.  


 “자! 식당 사례입니다. ‘밥을 먹고 후 결제하기 위해 결제로봇이 먹은 사람을 스캔했지만 금액이 부족해서 결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장님이 왔다.’ 어떻게 할 것인가?”     

 “피유다 학생!”     

 “답은 뭐죠?”     

 “우리는 돈이 많은데, 너희 시스템 결제 오류라고 너희 잘못이라 합니다.”     

 “땡~”

 “강가인 학생!”     

 “사장에게 우리 부모님이 어떤 사람들인지 대해서 설명합니다.”     

 “땡”   

 “아악~ 진짜 뭐야! 어렵잖아! 부모님이 해결해 주면 다 되는 건데 정답이 아니라니! 로봇이 이상한 거 아니야?”

               

 강가인은 참다가 폭발해서 드는 생각을 마구 뱉었다. 그러자 수업로봇이 감점을 외치려고 빨간빛으로 변하려다가 이세벨이 순간 부저를 누르자 빨간빛이 사라졌다.

              

 “이세벨 학생!”     

 “사장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린 뒤, 담보물인 인적사항이 담긴 전자명함을 드리고 내일 와서 결제하겠다고 합니다.”     

 “딩동댕~ 이세벨 1점 추가!”               


 이세벨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며 머리가 헝클어진 것 같아 하얀 머리띠를 빼서 정리한 뒤 다시 꼈다.               

 “자! 다음 사례! ‘어떤 사람이 이자를 타다가 헬퍼를 떨어뜨리고는 인식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떠났다. 이 헬퍼에는 천만 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저금되어 있었다.’ 어떻게 할 건가?”     

 “피유다 학생!”     

 “보상금을 받아야 하니까 한 이백쯤 쓰고 돌려주면 되겠네요~”     

 “땡~ 답은 틀렸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돌려줘야 합니까?”     

 “손경표 학생!”     

 “헬퍼를 주워 인도에 다니는 경찰로봇에게 줍니다.”     

 “땡~”     

 “아니 왜?”     

 “이유를 아는 사람은 1점 추가!”     

 “이세벨 학생!”     

 “인도에 다니는 경찰로봇은 습득물은 맡지 않아~ 경찰로봇을 습격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습득물은 고강도로 만들어진 습득로봇에게 줘야 해.”     

 “이세벨 1점 추가”

  

 다른 학생들은 붕어처럼 입만 벙끗거렸다. 이 벙끗거림은 마치 이 뜻과 같았다.     

‘엘리트 학교에서 인성 교육이 웬 말이야. 그냥 공부나 열심히 하면 되지. 그리고 다들 저렇게 교과서처럼 하지 않는다고. 너무 현실성 떨어지는 교과야. 참나~’  

 

 “이세벨! 전교 1등 답다~ 어떻게 한 치의 오차도 없어?”               


 피유다가 이세벨을 존경한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참나~ 피유다 그렇게 아첨하지 마~ 너무 티 난다~ 우리 착한 세벨이는 아름답고 공부도 잘하고, 인성도 바른 건 사실이지 않냐?”  

           

 눈빛이 항상 번뜩이는 강가인은 실실 웃고 있는 피유다에게 시비를 걸면서 이세벨을 찬양했다. 이세벨은 듣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자신의 곁에 있어주는 친구들이 이 두 명밖에 없었기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다른 친구들과의 관계는 어느샌가 멀어지기 시작했는데, 아무래도 수업 중간에 자주 뛰쳐나가는 동생 이엘리와 포악해 보이는 강가인의 모습에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마지막 시간이었던 인성교육이 끝났다. 집에 돌아갈 학생들은 이자에 앉아 있으니 이자가 자동으로 움직여 학교밖을 빠져나갔고, 이세벨과 피유다, 강가인은 교실에 그대로 남았다. 수업로봇은 이 세 명의 이자를 교실 중앙에 띄엄띄엄 배치해 놓고 앞쪽에 아주 큰 홀로그램 화면을 띄웠다. 화면에는 어떤 사람이 비쳤다.

               

 “이세벨, 강가인, 피유다 학생! 소돔학교 자랑스러운 전교 1등, 2등, 3등이죠! 마도시씨가 개발하고 세운 회사 에덴 STD에서 이번에 큰 프로젝트를 추진한다고 합니다. 저희 소돔학교는 20년 간 이 에덴과학기술개발(Science and Technology Development), 즉 에덴 STD에 인재들을 배출했습니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요. 그래서 이번에도 에덴 STD에서 스카우트가 도착했습니다.”     

 “어떤 프로젝트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피유다는 헬퍼에 걸친 코 중간을 검지손가락으로 들었다 내리며 거만하게 말했다.

               

 “창세기 도시 위에 도시를 지을 예정이라고 합니다.”     

 “도시 위에 도시? 말이 돼?”     

 “공중에 떠 있는 도시인가요?”               


 강가인은 기가 차서 수업로봇을 째려보자 이세벨은 특유의 여리여리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역시 전교 1등입니다. 공중도시 맞습니다.”     

 “공중도시……….”               


 이세벨은 관심을 보이다가 이내 식어버린 커피처럼 눈동자가 멍해졌다.               

 

 “부자들이 넘쳐나겠네. 우리 부모님도 가려나~ 피유다! 너희는 가냐?”     

 “가겠지~ 이세벨 너희는! 아~ 미안…!”     

 “아오~ 진짜! 피유다!”               


 강가인이 일어나 피유다에게 쥐어박으려 했다.               


 “나는 조용히 살고 싶어. 솔직히 에덴 STD에도 관심이 없고, 공중도시에서 사는 것도 관심이 없어. 저는 없던 일로 하죠.”  

     

 이세벨은 기분이 그리 좋지 않은 듯 입을 꾹 다물었다. 부모님 이야기에는 취약한 이세벨이었지만, 왜 세계 제일 회사인 에덴 STD에 관심이 없는지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이세벨은 이자에 도착지인 집을 입력하고 바로 그 자리를 도망치듯 떠나버렸다.

               

 “세벨! 이세벨!”     

 “피유다! 너 잘한다~ 으구!”               


 강가인과 피유다는 이세벨의 태도에 마음이 철렁했다. 항상 이들의 부모님들이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공부 잘하는 애들과 놀아라.’      

그리고 강가인과 피유다에게는 뼛속 깊이 내장돼 있는 모습도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배운, 상사에게 을질하는 부모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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