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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소녀 Aug 29. 2024

2241년 12월 1일 - 사고뭉치 삼인방(2)

 엘리, 요나, 나훔보다 덩치가 세 배만한 대머리 성인남자 세 명은 콧김을 훅훅 내쉬며 뚫어질 듯한 눈빛으로 이들을 쏘아보고 있었다.

            

 “이 자식들! 또또! 오늘은 정신머리를 고쳐줘야겠다!”     

 “헉!”               


 대머리 남자 세 명은 이 사고뭉치 삼인방을 오도가도 못하게 목덜미를 세게 잡고 있었다. 엘리를 든 대머리 사장은 안경처럼 생긴 ‘헬퍼’를 만지작거리며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


 여기서 ‘헬퍼’는 과거 핸드폰의 성능을 그대로 탑재한 안경으로, 안경알을 통해 영상이나 지도 등등을 볼 수 있고, 안경다리를 터치하면 홀로그램이 앞으로 튀어나와 전화도 걸 수 있으며 결제도 할 수 있다. 참고로 엘리와 고아원 식구들은 가난해서 모두 헬퍼 이전 세대 스마트폰인 트랜스포머폰을 가지고 있다.

               

 “여기 V.R.A.R 게임방인데요. 여기 도둑들이 있다고요. 여자 하나에 남자 둘! 한두 번이 아니예요. 제가 여기 사장입니다!!! 오늘 드디어 잡았네요. 빨리요! 여기가 V.R.A.R. 몇이냐고요? 여기는….”  


 엘리는 대머리 사장의 전화통화에 팔이 느슨해진 상태를 틈타, 비상용으로 저장해놨던 초록콩 같이 동그란 알들을 팔주머니에서 몰래 꺼냈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요나에게 눈치를 주자, 요나가 씨익 웃으며 나훔의 옆구리를 찌르며 눈짓했다. 나훔은 여전히 움찔했지만, 준비가 다 됐다는 표시로 서로 눈빛을 주고 받았다. 셋 다 아주 능숙했다.      

 엘리는 대머리 사장이 전화를 끊기전에 재빨리 나훔과 요나를 잡고 있는 대머리들의 얼굴에 초록콩을 조준해서 던졌다. 


 “아악~ 눈이야~~”     

 “윽~~~”               


 초록콩이 두 대머리 얼굴에서 터지면서 나온 후추가루들이 그들의 눈과 코로 들어갔다. 기침을 해대며 뒤로 나동그라진 그들은 잡고있던 나훔과 요나를 자연스럽게 놓쳐버렸다. 엘리는 남은 초록콩 하나를 깜짝 놀라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대머리 사장에게 던지고는, 재빨리 보관함으로 뛰어가 이자를 꺼내들고 달렸다. 일찍이 이자를 1초만에 펴지도록 개조해놓은 덕분에 도망가기가 아주 수월했다. 원래 창세기 도시의 이자개폐 표준 시간은 10초쯤 걸리는 것이 통상이다. 


 “아저씨!!!! 일단 죄송해요! 다음에 돈 벌면 갚을 게요!!!”

               

 대머리 사장은 충혈된 눈을 부비며 도망간 삼인방 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하늘로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는 로봇이나 남의 이자들을 잡고 날리는데, 무게가 분명히 무거울텐데도 불구하고 날리는 족족 물건들이 모두 다 정말 하늘을 뚫고 날아가는 것 같았다.

               

 “헉...대단해. 아..아니지. 얼른 도망...오~ 우와~~대단~~~ 아냐. 도망가야지.”     

 “야! 나훔! 얼른!!!!”               


 잠시 멈춰서 구경하고 있던 나훔을 엘리가 채근해서 데리고 갔다.     

대머리 사장은 저 멀리서 오고 있는 로봇 경찰을 향해 다급한 듯 방방 뛰며 부르다가 손가락으로 삼인방이 도망간 방향을 가르켰다. 이 로봇경찰은 아무래도 아까부터 엘리와 요나, 나훔을 뒤따라오던 로봇경찰인 듯 했다.


 “악~~ 이놈들아아아~~~ 경찰! 경찰!!!!!!!”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삼인방. 엘리는 가늘게 뜬 눈으로 통쾌하다는 듯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나훔은 뒤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손잡이를 꾸욱 잡고 있었고, 요나는 이자가 덜컹거리는 것 같다고 금세 투덜거리고 있었다.

               

 “애들아… 우리 이제 이렇게 하지말자… 한두 번도 아니고 찔려….”     

 “나훔! 우리는 게임을 하고 싶지만 돈이 없어서 잠시 선불한 것일 뿐이야. 나중에 돈 벌면 꼭 갚을 거라고! 아까 사과도 했잖아~ 그나저나 내가 발명한 자석이 그렇게 쓰일 줄 누가 알았겠어! 성공!”     

 “달려달려~~~~”               

 

 나훔은 마음이 착잡해보였지만 빠른 스피드를 즐기는 요나와 엘리는 신난 표정이었다.

               

 “크~ 이제 우리의 아지트로 가자! 그곳이라면 따라오지 못해.” 

           

 사고뭉치 삼인방은 아까 지났던 그 음식거리를 통과해 다시 학교 앞을 지났다.

               

 “저런 레스토랑들은 자석으로 안 돼?”     

 “요나씨~ 그런 곳은 고급이라 자석 따윈 소용도 없고요. 목소리로 결제하는 방식도 아니라서 변조해도 불가능하다고요. 보안이 철저해서 안경 결제와 함께 몸 전체를 스캔한다고~ 그러니 방법이 있겠냐? 너는 그냥 사먹을 수 있잖아!”     

 “쳇!” 

 “요리? 내가 할게! 고아원 물려받아서 아이들에게 요리해주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나훔~ 너는 힘들게 소돔 학교 들어가 놓고 꿈이 없어 꿈이~ 쯧쯧! 머리 뒀다가 뭐할래? 아니다. 이 누나가 개발로 성공하면 한 자리 줄게.”  


 다들 이자를 타고 신나게 달리면서 이자에 부착된 음성기로 소통을 했다. 

        

 “자~ 이제 가나안 마을에 다다릅니다~ 우리의 고향~”     

 “이번엔 내가 1등 할래!”     

 “이 느림보가 무슨 1등이야~”               


 나훔은 매일 그래왔다는 듯, 이자를 창세기 도시 외곽에서 멈추고, 두 발로 가나안 마을 속으로 편안하게 뛰어갔다. 통통한 배가 좀 많이 출렁거리렸다. 요나는 평소와 같이 투덜거리면서 나훔 뒤를 쫓아 뛰어갔고, 엘리도 질세라 막 뛰었다. 요나가 아무리 빨리 뛰어도 느려지는 속도에 엘리가 금방 따라 잡았고 나훔은 헥헥 거리는 요나의 팔을 잡고 함께 뛰었다. 

 밝은 햇볕이 엘리의 빨강 머리칼을 흐트러 뜨리는 듯 했다. 한 십 분을 뛰었을까 사막 같이 모래가 날리는 곳에 다다랗다. 사람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건물도 몇 채밖에 없었는데, 이 셋은 언제나 익숙하다는 듯 어느 낡아빠진 건물앞에 도착했다.      


 이 건물은 1층과 지하만 있을 뿐이었다. 건물 앞에 붙은 ‘크로스 오락실’이라고 적힌 너덜너덜한 무지개 간판만이 이들을 반겨주었다. 셋은 언제나처럼 지하에 내려갔다. 굳게 닫혀있는 오락실의 철제문에는 십자가 그림이 그러져 있었는데, 삼인방은 도착한 순서대로 그 십자가 문양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야! 오락실 문! 너 사람 가리냐! 저번에는 내가 먼저 대니까 열리지도 않더니, 꼭 엘리가 손을 대야 열리더라?”     

 “요나씨~ 그만 투덜거리시고요. 날 좋아하는 걸 어떻게 하라고요~”     

 “얘들아~ 그만하고 들어가자~~”               


 문이 스르륵 열리며 전깃불과 오락실의 기계들의 전원이 켜졌다. 셋은 각자 자리를 잡았다. 여기 오락기는 다 무료다.               

 “‘청기 올려, 백기 올려’ 할래.”     

 “풉~ 나훔! 그게 뭐냐~ '비행기' 정도는 해야지.”

 “참나~ 친구들님 정신 차리세요. '스트리트 파이터'가 대박이거든요.”  

  

 나훔은 그 순수한 눈망울로 청기가 올라가는지, 백기가 올라가는지 뚫어지게 집중하고 있었고, 요나는 비행기로 날아오는 미사일을 피하고 있었다. 그리고 엘리는 최고로 좋아하는 게임인 ‘스트리트 파이터’ 앞에 앉아 지정한 싸움꾼으로 장풍을 신나게 쏘고 있었다. 

       

 “아띠~ 또 죽었어! 이 기계 맛 간 거 아냐? 왜 초장에 비행기가 미사일에 맞냐고~ 맨날 이래. 아오~”     

 “요나~ 그만 좀 투덜거려라. 너가 못하는 거지. 기계가 맛이 가겠냐?”     

 “엘리 말에 공감하지만 요나의 말에도 공감! 나도 계속 청기백기 죽는다…윽!”     

 “대체 여기 사장은 누구야?” 

        

 엘리는 본인 캐릭터는 죽지 않았는지 열심히 게임을 하며 수다를 떨었다. 멀티가 되는 엘리였다.

               

 “여기에 종이가 붙어있네. 창세기 도시가 지어질 때 같이 지어졌나봐~ 이 오락실은 정말 재미있는데 왜 인기가 없을까?”     

 “나훔훔훔훔~ 생각을 해봐라~ 스마트폰으로 하는 게임, 집에서 하는 가상현실 게임들이 넘치고 넘치는 데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겠어? 게다가 가나안 마을 외곽에?”     

“내말이~ 우리니까 오겠지. 그리고 우리만 들어올 수 있잖아~ 아아앗! 죽어랏!!! 여기만한 아지트가 없어!!! 이얏!!! 다른 대 어딜 가겠냐~~~ 가면 다 돈이고 우리랑 맞지도 않아~ 하아 죽었다~ 악!!!!”  

           

 엘리는 게임이 끝나자, 괜히 오락실 한 바퀴를 둘러보며 걸었다. 솔직히 3년 째 자주 수업을 째고 셋이서 함께 오는 곳이니 익숙하기도 했지만, 돈이 없으니 딱히 갈 곳도 없었다. 하지만 나훔 말대로 왜 아무도 오지 않고 셋만 오는지 궁금해졌다. 오락실 철제문도 엘리가 손을 댈 때만 열리는 것도 신기했다. 

 엘리는 오락실 구석으로 갔다. 그곳에는 어떤 까무잡잡하고 까만 머리색을 가진 과학자가 서있는 화면인 게임기가 있었다. 엘리가 버튼을 눌러봤지만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               


 “여어~ 그거 내가 해보려 했는데 안 돼. 그 기계 고장 났어.”               


 요나가 말했다. 엘리는 괜히 드는 오기에 아얘 자리를 잡고 앉아 이리저리 눌러보았지만 아무것도 되는 것이 없었다. 그저 이런 말만 떠 있을 뿐이었다.               


 ‘나의 이름은?’               


 “이름? 이엘리?”               


 하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애들아~ 이름을 묻는대?”     

 “요나 말이 맞아~ 고장 났어~ 나도 궁금해서 내가 아는 이름 다 불러봤는데 안 되더라~”     

 “에잇~ 우리 그럼 중간지대로 가자.”     

 “헉! 금지구역이잖아! 안 돼 안 돼~”               


 신나하는 엘리의 눈빛에 조심성 많은 나훔이 역시나 적극적으로 말렸다. 제자리에서 일어나 두 팔로 엑스자를 그리며 휘휘 저었지만, 엘리 눈에는 나훔의 앙증맞은 엑스자 대신 마치 중간지대가 보이는 듯 해서 미소가 절로 나왔다.

               

 “그럼 요나! 너가 결정해! 우리는 셋이니까 다수결로 가자고~ 난 널 믿는다!”     

 “왜 내가 정해야해! 이런 건 꼭 날 시키더라. 흠~ 나는…”     

 “요나 제발! 금지구역은 안 돼! 분명히 혼날 거야.”               


 요나는 투덜거리다가 괜히 팔짱을 끼며 엄청 권위 있는 사람처럼 두 눈을 감았다. 나훔은 울 것 같았고, 엘리는 빨리 가고 싶어서 다리를 동동 거렸다.  

 

 “정했어!”     

 “가기로?”     

 “안 갈 거지? 우리 이제 집으로 가자~”     

 “중간지대로 고고~~~”     

 “야호~ 역시 요나는 통한다니까~~~ 요나님 감사합니다!”     

 “악~~ 난 안 갈래….”     

 “무슨 말을 섭하게~”

               

 엘리는 움직이지 않으려는 나훔의 등을 떠 밀었다. 오락실을 나가 나훔을 이자에 손수 태웠다.  그리고는 이자 손잡이 속에서 키보드를 꺼내어 ‘자동 따라가기’를 입력했다. 나훔의 이자가 엘리의 이자를 자동으로 따라오게 하는 명령어였다. 

 

 “엘리~ 너 이런 기능은 또 언제 넣은 거야?”     

 “내가 남는 게 시간 아니겠니~ 그리고 이 천재적인 머리! 꼭 이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과학기술자가 되겠어!”     

 “그만 하고 이제 출발!”               


 요나는 매일 듣던 말인지 무표정하게 엘리의 말을 끊고 먼저 중간지대로 출발했다. 가나안 외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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