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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소녀 Aug 28. 2024

2241년 12월 1일 - 사고뭉치 삼인방(1)

 “자! 이렇게 2220년에 지구 종말이 오고, 2222년, 단 2년 만에 놀랍게도 땅이 안정됩니다. 지하벙커에서 개발자들과 사람들은 지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삶이 시작되죠. 놀라운 일입니다. 아무도 설명할 수 없는 자연의 신비는요.     

 퇴폐한 자리싸움과 함께 사라진 옛 땅에 새 땅이 들어서면서, 신예 개발자들이 날개를 단 듯 과학기술이 대폭 발전하지요. 그래서 인간의 삶이 정상화된 지 20년 만에 엄청난 진보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이엘리 학생! 감점!”     

 “아! 왜!!!”     

 “내년에 다시 고3 하고 싶습니까!”     

 “아! 알았다고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빨간 머리의 소녀는 수업로봇의 말에 아주 여유롭게 게임을 하고 있었던 폰을 닫았다. 화면의 길이가 가로세로 각각 30센티인 폰을 양쪽으로 살짝 누르자마자 착착착 접혀 1초 만에 3센티로 작아졌다. 마치 종말 전 '영화 트랜스포머'에서 나오는 로봇처럼.

               

 “엘리~ 수업 째고 놀러나 갈까?”     

 “그걸 말이라고 해. 게임하러 가자.”     

 “그럼 바로 첫 번째 장소로 고고~”     

 “평소처럼 오케이~”               


 엘리와 엘리의 친구들인 권요나와 김나훔은 아직 창세기 역사 가상현실 수업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공원의 벤치처럼 보이는 의자에 일렬로 앉아 계획을 세웠다.     

 수업로봇 옆에서 창세기 공원이 지어지는 모습을 보며 공부하고 있던 반장 이세벨은 이를 눈치채고 엘리에게 와서 착하고 조용하게 말했다.               


 “엘리~ 수업에 집중해.”  

 “언니! 전교 1등 우리 언니는 열심히 공부해! 나는 내 갈길을 알아서 개척하겠다고~ 얘들아~ 준비됐지?”    

 “언제나! 슝!”     

 “슝!!”

           

 엘리는 앉아있는 의자 손잡이에 있는 빨간 버튼을 눌러 가상현실 수업공간을 시원하게 나가버렸다. 순식간에 복도를 지나 학교 교문 앞으로 이동되었다.

               

 “이엘리, 권요나, 김나훔 감점! 이유 없는 조퇴는 감점입니다!”     

 “빨간 버튼을 없애야 돼요. 위급사항을 위해 있는 빨간 버튼인데, 저 노는 애들은 남용한단 말이지….”

 “야~ 말 조심해. 그래도 이세벨 쌍둥이 동생이잖아~”

 “아차차~ 이세벨 미안~”  

         

 전교에서 공부로는 엘리트인 피유다와 강가인은 자동적으로 공부 서열 1위인 이세벨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언제부턴가 이 둘은 이세벨을 따라다니며 거의 신봉 수준으로 받들기 시작했었다.

               

 “아니야~ 내 동생이지만 나도 어쩔 수 없네~ 하아~”               


 눈처럼 새하얀 얼굴에 눈 밑에 점을 가진 이세벨은 안타깝다는 듯, 그 큰 두 눈망울로 엘리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며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


               

 “나훔훔훔! 도착!”     

 “이런~ 2등 요나 도착~ 에잇~”               


 나훔의 이자가 먼저 도착했다.      

 ‘이자’는 ‘이동의자’의 줄임말이다. 전 국민 모두가 이자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는 모든 사람의 이동수단이다. 지구종말 전에는 버스, 지하철, 택시, 승용차 등등이 있었지만, 이런 대중교통이 없어지면서 기름이 필요 없는 개인이동수단인 '이자'가 만들어졌다. 가만히 서 있을 때나 천천히 걷는 속도로 이동할 때는 유리덮개를 열 수 있으나 달릴 때는 자동적으로 유리 덮개가 닫힌다.

               

 “아직 도착이라고 할 수 없지! 소돔 V.R.A.R.one에 가려면 여기서부터는 다시 시작해야 하니까! 내가 먼저 간다아아~”   

  

 엘리와 나훔, 요나는 자신들의 이동수단인 이자로 깔린 이동레일길을 따라 학교 앞 소돔 사거리에 도착했다. 다리가 없는 이자는 앉는 안장과 등받침대와 유리덮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동하는 레일길에는 부력전자가 깔려 있어 이동이 편하고 쉬웠다. 출근이나 등교 시간에만 밀리지 그 외의 시간에는 시원시원하게 뚫렸다.  


 셋 중에 꼴찌로 도착한 엘리는 별로 괴념치 않았는데, 그저 한쪽 입꼬리를 올릴 뿐이었다.     

그러더니 다른 학생들의 이자에 없는 반짝이 버튼을 누르자마자 유리덮개가 이자의 등받침대 속으로 들어가면서 양쪽 손잡이가 앞으로 배치되었고, 또 바로 안장 양 옆에서 비행기 날개처럼 날개가 돋아 나왔다.               

 “엘리! 반칙이야! 같이 가~~ 왜 너만 초고속이냐고!”     

 “내가 똑같이 달아줬는데 무슨 소리야~~ 꺄~~~ 신나 신나!!!”     

 “좋다아아아~”               


 셋은 도로를 종횡무진 달렸다. 이미 도로에 이동하고 있는 이자들이 중간중간 있어서 멈춰야 하는 데도, 날개 아래에 접착된 자석 덕분에 기존 이자들의 위를 넘어 쌩쌩 달릴 수 있었다. 하지만 너무 위로 날면 전류가 흐르는 두꺼운 케이블에 닿기에 조심해야 했다. 이 케이블은 집에서 집으로, 건물로 이 창세기 마을을 전부 연결하는 하나의 기다란 전류케이블이었다.      

 하지만 이자를 잠시 공중에 떠 있을 수 있게 하는 자석은 기존의 자석보다 부력전자를 자동으로 밀어내는 강한 힘이 있는 물체로, 엘리가 연구 끝에 직접 시도해 본 개발품이었다.

               

 “으악! 저저저 교복 소돔 학생들 아냐? 저번에 심부름 가다가 쟤네들 때문에 사고가 나서 죽을 뻔했잖아!”   

 “저 빨강 머리!!! 저번에도 봤어! 경찰로봇! 경찰로봇!!”               


 소돔 교복은 누구나 멀리서 알아보기 쉬운 은색 재킷에 은색 바지였다. 창세기 도시에서 제일 엘리트만 간다는 소돔 학교의 교복이었다. 학비는 정부에서 다 부담했고 빈부격차가 나지 않도록 교복을 입게끔 학생들을 배려했다. 하지만 소돔학교의 교복은 무색하게도 제일 고가여서 배려가 아니라 신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그래도 비싼 만큼의 기능을 하는데, 지금은 겨울이라 그렇지만 여름에는 옷이 짧아지고 얇게 맞춤으로 변화하고, 계절에 따라 길이와 모양, 재질이 변하는 교복이었다. 또한 은색은 소돔 학교의 대표 색이며, 귀족스러움을 나타내는 색이다. 즉, 엘리트 학교스러움을 나타내는 자랑스러운 색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엘리트스럽지 않은 삼인방은 소돔 사거리를 직진하는 중이었다. 이 거리만 지나면 소돔 V.R.A.R.one에 도착한다.      

 막 진입한 거리는 음식의 거리였다. 각 식당 입구 앞에는 테이블이 놓여 있는데, 식당에서 판매하는 음식들을 홀로그램 형태로 진열해 놓았다. 게다가 홀로그램인 직원도 배치해 놓아 음식에 대한 맛을 알려주고 식당 안으로 손님들을 인도하는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간판의 글씨는 살아있는 것처럼 5센티 앞으로 튀어나와 구물구물 글자모양으로 기면서 ‘12월 특가할인’을 강조하며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경찰로봇이 따라온다! 좋았어! 달려달려! 캬~ 스트레스 풀린다~”     

 “얘들아~ 우리 언제까지 이래야 돼? 양심에 찔려~ 엘리~ 지나다니는 로봇이나 사람 조심하고~ 전류 케이블에 닿지 않게 조심하고!”     

 “나훔~~ 요나를 봐! 얼마나 자유로워 보여! 강제장수시대에 그만 좀 조심해라~”

               

 일상을 투덜거리는 요나는 바람을 느끼며 달리는 순간을 제일 좋아해서 이럴 땐 절대 투덜거리지 않는다.               

 “아니~ 재미있긴 한데, 수업 중간에 나오는 것도, 이렇게 사람들 위를 뛰어넘는 것도 무섭단 말이야.”     

 “엇! 나훔! 얼른 따라와! 경찰로봇이 너 뒤에 있어!”     

 “뭐? 정말? 으아악~”               


 나훔은 엘리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속도를 올리는 버튼을 마구 눌렀다. 반짝이 버튼이나 속도를 올리는 버튼은 다 엘리의 작품이었다. 나훔의 반응에 앞서 가고 있던 엘리와 나훔은 서로 키득키득 웃었다.     

 경찰로봇은 이들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과학기술이 많이 발전했지만 정말 큰 소동이 아닌 이상 일상 속 경찰로봇의 속도가 제한되어 있었다. 작년에 경찰로봇과 심부름을 다니던 사람과의 충돌로 법이 신설되었기 때문이었다.


 창세기 도시에는 물건 운반이나 심부름을 할 시, 땅에서 활동하는 운반로봇과 하늘에서 날아다니는 날개로봇, 사람이 직접 운송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지구종말 전에도 운반로봇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차도나 인도를 구분하지 않고 마구 달려 충돌을 일으키는 문제로봇이라 취급받았다. 그래서 건물 내 이동만 허락할 뿐, 길에서 다니는 걸 허용하지 않았다.     

 지구종말 후에야 운반로봇의 업그레이드와 함께 날개로봇의 개발을 함으로써 많이 사용되고 있지만, 여전히 운반로봇의 충돌문제와 날개로봇이 전류케이블에 꼬이는 사태가 발생해 가나안 주민들의 대부분이 물건 운반이나 심부름의 일을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도착!!!!!!!!!! 내가 1등! 진정한 승자는 바로 나! 나! 나!”     

 “이런~ 0.1만 빨랐으면 내가 1등인데… 아오~”   

 “너희들 진짜! 나 놀릴 거야!!!”

 “요나야 다음엔 네가 1등 해. 들어가자~”     

 “나훔 놀리는 건 하나도 귀찮지가 않아~ 크크~”               


 엘리와 요나는 나훔의 반응을 뒤로한 채 이자의 전원버튼을 누르니 반으로 접혔다. 소돔 V.R.A.R.one 입구 보관함에 넣어 놓고 안으로 들어가니 학생들은 없고 게임을 취미활동으로 하는 어른들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두룩했다. 남자어른들은 대부분 ‘우주전쟁’을 하고 있었고, 여자들은 어른이나 아이나 ‘드라마 속 주인공 되기’라는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엘리와 나훔, 요나는 우주전쟁을 하기 위해 우선 자리를 잡았다. 우주전쟁 섹션 안에 들어가 서 있으면 바닥에 동그라미 모양이 그려지고 동시에 천장 위에서 귀가 큰 원숭이 모양의 로봇이 내려온다.

     

 “게임 당 만원입니다. 결제하시겠습니까?”   

            

 원숭이 로봇이 말에 엘리는 주위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팔 주머니에 있던 작은 통을 꺼냈다. 그 안에는 손톱만큼 작은 자석과 이 손톱자석을 둘러싸고 있는 접착젤리가 있었다. 엘리는 접착젤리 안에 손톱자석이 들어가게끔 작게 세 뭉치를 만들어 나훔과 요나, 자신의 원숭이 로봇에 붙였다. 그러자마자 원숭이 로봇은 결제가 되지 않았는데도 천장의 자기 자리로 올라가더니, 바로 아주 얇은 초경량 브이알 헬멧을 내려 주었다.

 나훔이 약간 움찔하긴 했으나 언제 그랬냐는 듯 셋 모두 익숙한 듯 착용했다. 착용하자마자 눈앞에 바로 우주가 펼쳐져 공중에 둥둥 뜨기 시작했는데, 손에는 레이저총이 들려 있었다.

              

 “푱푱~ 맞아라! 맞아라!”     

 “외계인 무서워! 으아악~”     

 “아~ 진짜! 왜 녹색피냐고! 그렇게 실감이 안 나잖아! 피는 빨간색! 오케이?”               

 

 해왕성을 침략한 빨간 외계인을 무찌르는 영웅이 되면, 천왕성으로 가서 주황 외계인을 무찔러야 한다. 그래서 천왕성 영웅이 되면 이번에는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을 무찌를 수 있다. 이렇게 해왕성, 천왕성, 토성, 목성, 지구, 금성, 수성 순서로 흘러가는데, 엘리는 항상 지구에서 죽는다.


 “난 왜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야!!!! 오잉? 누구얏!! 누가 나를!!”               


 지구를 침략한 외계인을 죽이려 남산 팔각정에 서서 둘러보다가, 뒤에서 다가오는 외계인의 공격을 느끼지 못한 채 한방 맞았을 때였다.      

 현실에서 누군가가 바다에서 물고기를 낚아 올리듯 엘리의 목덜미를 잡고 공중으로 올렸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방해받은 엘리는 화가 두배로 났다. 외계인에게도 한방 맞았는데, 누군가가 자신의 플레이를 막다니!

 엘리는 아주 당당하게 브이알 헬멧을 벗으며 큰 소리를 치는 순간, 눈앞에 나훔, 요나도 함께 공중으로 들린 쌍둥이 같은 광경을 아주 자연스럽게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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