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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소녀 Aug 31. 2024

비밀의 첫걸음을 내딘 이엘리

 “여기는 오면 안 될 것 같아… 저번에는 아얘 출입도 못하게 막는 로봇이 있었는데, 오늘은 왜 없지? 금방 올지도 모르니까 우리 빨리 집으로 가자~”     

 “무슨 소리! 이럴 때가 도전할 때!”

               

 가나안 마을 끝에는 사막 같은 황무지가 펼쳐져 있다. 아직 개발이 안 된 곳이라 가나안 외곽까지만 이동레일이 깔려 있고, 이곳부터는 다른 세상이 시작되는 것처럼 모래들이 휘휘 날리는 땅이었다.     

 사고뭉치 삼인방은 이동레일이 끝나는 곳에 이동의자인 이자들을 주차해 놓았다. 먼저 도착한 요나는 무조건 직진만 하며 걷고 있었고, 엘리는 모래를 밟으며 발아래 걸리는 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래를 쓸면서 걸고 있었다. 나훔은 이자 옆에 세워진 금지 표지판을 보며 걷기를 주저하다가, 혼자 있기가 무서워 억지로 엘리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엘리야~ 대체 뭘 찾는 거야?”

 “여기가 왜 금지구역이겠어. 뭔가 있으니까 금지구역이지. 눈으로 보기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 분명히 땅바닥에 있을 거야~ 경계 서는 로봇이 없는 게 웬 횡재냐~”

 “눈에 안 보이면 보이는 것만 보고 살면 되지. 왜 굳이 찾아~~”

 “이곳을 처음 봤을 때, 낯설지가 않았어. 분명히 뭔가 있다고~ 내 촉은 틀린 적 없는 거 알지?”

 “에휴~ 알지~ 알지~ 어렸을 때 슈퍼 갔다가 도둑으로 몰릴 뻔했었는데, 네가 그 슈퍼 주인의 아들이 숨긴 걸 어떻게 알았는지 범인을 잡았잖아.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놀라워.”

 “바보야~ 그건 걔가 너무 티 나게 떨고 있어서 알 수 있었던 거였지. 그리고 또 있잖아. 이건 촉이 아니라 예언이지만! 크크~ 나훔 네가 커서도 이렇게 많이 먹을 거라는 거 예언했었지! 캬캬캬~”

 “야!!!!! 이엘리!!!!”          

 

 나훔은 자신을 놀리는 엘리를 잡으려고 하자, 엘리는 나훔에게 장난스럽게 혀를 내밀며 '메롱'을 하고는 막 뛰어갔다.  


 “악!!!!!!!!!!”

 “요나!!!!!!”

 “요나야!!!”  


 앞서서 빠른 걸음으로 질주하던 요나가 갑자기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엘리와 나훔은 깜짝 놀라 요나가 없어진 곳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도착해 보니 요나가 딛고 있었던 땅이 움푹 꺼져 있었다. 엘리는 구멍 난 땅에 배를 대고 납작 엎드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도 요나가 엉덩이를 만지며 요나답게 투덜거리고 있었다.

 

 “햐아~~ 아파…아! 땅을 물로 만들었나. 왜 떨어지게 만들고 난리야. 머리부터 떨어졌으면 어떻게 할 뻔했어! 엉덩이로 떨어졌기 망정이지! 여기 책임자 없어?”     

 “우와~~~~~~~ 요나!!!!!!!! 내가 갈게!”     

 “요나야~ 괜찮아? 엘리!!!!!!!!! 나… 나는 여기 있을게….”

    

 엘리는 요나 주위를 둘러보더니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곧바로 땅 아래로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그곳은 또 하나의 마을 같았다. 요나가 떨어진 곳은 다행히도 동산의 꼭대기 같았다. 동산을 기준으로, 주위를 둘러보니 오른쪽에는 주거용 집들이 있고, 왼쪽에는 상업지역으로 여러 모양의 건물들이 있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건물 하나가 있었다. ‘에덴 STD’

               

 “저기 가보자! 얼른!”

 “에덴? 왜 여기에 에덴이 있지? 엘리! 왜 먼저 가고 그래!”               


 엘리와 요나는 동산에서 뛰어 내려갔다. 길가에는 먼지가 한 톨도 없었다. 깨끗하게 정비된 마을 같았다. 사람들만 들어오면 될 것 같은 준비된 마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했다. 한 10분쯤 뛰었을까 층층이 삐쭉빼쭉한 4층 건물인 에덴 STD에 도착했다. 둘은 안으로 무작정 들어갔다.  

 층마다 안내그림이 있었는데, 1층에는 데이터실, 2층에는 기술개발실, 3층에는 시뮬레이션실, 4층에는 주관리자실이었다.


 “요나! 나는 2층 간다. 넌?”

 “난 당연히 데이터지~ 이따 봐!”    


 엘리는 기술개발실로 올라갔다. 문은 열려 있었다. 그녀는 평소 기계의 성능 업그레이드와 기술개발에 관심이 많은 탓에 호기심 어린 눈빛과 기대하는 마음이 저절로 솟아올라 당차게 성큼성큼 들어갔다.

               

 “오오오~ 무엇을 얻을 수 있으려나~~”               


 엘리는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일했던 과학자들은 정말 여러 분야에 대해 제약 없이 다채롭게 연구했던 것 같이 느껴졌다. 새하얗고 드넓은 공간에 여러 가지 눈에 익은 기계들이 보였다. 이자, 이동레일, 학교에 있는 수업로봇, 그 외의 로봇들, 전자길, 두꺼운 고무전선, 마네킹에 씌워져 있는 옷 등등.     

엘리는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쩍 벌어졌다. 지금의 창세기 도시에서 사람이 걸어 다닐 수 있는 모든 길은 고정된 길이 아니라 천천히 움직이는 길이다. 그런데 이곳에 있는 전자길이 창세기 도시 전자길과 같았다.               

“우와~~ 여기서 다 개발한 거구나! 아! 여기가 그 지하벙커? 대박!!!”   


 엘리는 너무나 감격스러워 트랜스포머 폰을 꺼내 주위의 기기들을 영상으로 찍기 시작했다. 참고로 엘리는 헬퍼를 갖지 못해 인류의 마지막 스마트폰형태인 트랜스포머폰을 쓰고 있다. 하나하나 모두 담으려고 눈을 떼지 않고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될 수 있는 대로 다 찍고 있었다. 그때 발에 무언가 밟히며 어떤 홀로그램이 영화같이 켜졌다.


 “엇! 뭘 밟았지? 이건 무슨 장면? 어디서 봤는데! 이상하다~”                         


----

 '이 데이터를 보십시오. 2년 뒤 지구는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십자가 은반지를 낀 까만 머리색의 개발자는 방 중간에 뜨는 홀로그램들을 가리키며 주위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 범상치 않은 이들은 장관들과 대통령과 부통령, 대한민국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과 여러 대기업에서 나온 기술개발 투자를 담당하는 팀장들이었다.     

 홀로그램에서는 전 세계의 화산들이 일제히 한 날 한 시에 폭발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아무 증후 없이 들끓던 용암이 갑자기 솟구쳐 반경 1000미터까지 덮는 모습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히 엄청난 경악을 이끌어냈다.

'이공중 개발자! 이게 말이나 됩니까?'     

부통령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큰소리를 쳤다. 다른 장관들이나 기술개발 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부통령님 말씀이 맞습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전 세계에서 일제히 화산이 폭발한다고 지구에 종말이라니요! 당신은 과학자가 맞습니까? 국민의 세금으로 뭐 하는 거요?'     

행정안전부 장관이 회의상을 쾅쾅 내리쳤다.     

'화산이 폭발할 뿐만 아니라 이 반동에 연이어 약한 지반도 터져, 지구 핵 속에 있던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올 것입니다.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환경이 되겠죠.'     

이공중 개발자 옆에 있는 눈 밑에 점이 있고 흰 피부에 얄상하게 생긴 한 은색 머리색을 가진 개발자가 말했다.     

----


“엇! 엇! 이건!!!!!”               

엘리는 자기도 모르게 이 홀로그램도 영상에 담았다.               

“이상하다~ 분명히 마도시 였는데…이공중? 이공중이라면….”     

“범인! 범인이다!!!!!!!!!”  


 갑자기 1층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엘리는 깜짝 놀라 폰의 영상을 저장하고 얼른 뛰쳐나왔다. 요나가 나훔덩치의 4배만 한 경찰로봇의 갈고리 손에 잡혀있었다. 이 경찰로봇은 다른 쪽의 갈고리 손을 뻗어 엘리도 낚아챘다.

             

 “아아악~ 내려줘! 내려달라고!!!!!”     

 “살려줘어어어어~~”               


 경찰로봇이 이 둘을 잡은 채, 지상으로 통하는 입구로 순식간에 올라갔다. 그곳에는 나훔도 이미 다른 경찰로봇에게 잡혀 있었다. 이들이 나오고 1초 만에 그 구멍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경찰로봇들로 인해 메워졌다.


 “얘… 얘들아~ 나는 입도 뻥끗 안 했는데, 뭘 감지했는지 저 아래로 곧장 내려가더라고~”               


 경찰로봇들은 삼인방을 이자에 태워 곧장 가나안 경찰서로 끌고 갔다. 가는 길에 셋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각자의 눈빛은 서로 달랐다. 나훔은 착잡했고, 요나는 기대하는 눈빛에, 엘리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눈빛이었다.

 경찰서 안에 들어가니 절반의 공간은 감옥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진실의 공간이었다. 진실에 공간에는 범죄증거들을 틀어주는 영상매체와 그 자리에서 범인의 진실이나 거짓을 듣고 판단하여 형을 내리는 로봇판사가 있었다. 로봇판사의 머리에는 진실과 거짓을 감별하는 센서가 있는데 손바닥을 올려놓으면 손을 댄 사람의 뇌파 속도와 생체리듬, 그리고 그 지문을 토대로 다녔던 장소들을 바로 알 수가 있다.

 삼인방은 가나안 경찰서에 도착하자마자 경찰로봇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너희는 19세이므로 바로 집으로 훈방조치 할 수도 있었지만 저번에도 중간지대에 간 흔적이 있고 사고 친 신고들이 있어서 경찰서로 잡혀 온 거다. 곧 보호자가 올 거다.”     

 “아악~ 안 돼! 부모님이 알면 충격받으실 텐데….”     

 “그냥 우리가 잘못했으니까 보내주세요.”


 경찰로봇의 말에 정신을 차린 엘리와 걱정이 가득한 나훔은 경찰로봇에게 애원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네네네~ 요나? 권요나는 귀가하도록!”     

 “아 짜증 나~ 이럴 줄 알았어! 관심이 없어 관심이!”

         

 하지만 경찰로봇은 잠시 호출을 받더니 권요나만 귀가조치 시켰다. 아무래도 요나의 아버지께서 손을 쓰신 모양이었다. 엘리와 나훔은 요나가 왜 투덜거리는지, 왜 불평하는지 이유를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둘은 요나에게 괜찮다고 먼저 가라고 애써 경찰서 밖을 떠밀 듯이 보냈다. 그리고는 5분도 안 되어 어떤 한 부부가 급히 이자에서 헐레벌떡 뛰어내리더니 경찰서에 단숨에 들어왔다.

               

 “저희 아이들은… 얘들아!!!”               


 50대 여자가 눈물을 흘리며 엘리와 나훔 앞에서 울었다. 그 옆 남자는 경찰로봇에게 가서 연신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엄마, 아빠다! 이런… 이래서 그냥 보내달라는 거였는데….”               


 엘리는 눈을 내리깔며 두 입술을 질끈 씹으면서 죄송한 표정을 지었다.

               

 “금지구역에 간 일은 죄가 됩니다. 하지만 아직 20세가 되지 않았고 보호자들의 간청이 있었으므로 훈방조치 합니다. 다시는 가지 않도록 훈계하십시오.”  

 “아~ 네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녀석들!!! 얼른 가!”     

 “엄마, 아빠 미안….”     

 “…”   


 나훔은 울고 있는 엄마를 일으키고 아빠와 함께 가면서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이 부부는 나훔의 부모님이었으며, 엘리를 키워준 고아원 부부이기도 했다.  

          

 “너희들! 엄마 힘들게 하고 싶지 않으면 조용히 좀 있어라!”               


 고아원에 도착해서야 아저씨가 묵직한 한 마디를 날리셨고, 둘은 숙연하게 각자 방으로 조용히 흩어졌다.     

고아원이라고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작아도 각자 방이 생겼다. 펼치면 방이 되는 아주 값싼 구조이긴 했지만, 내부구조는 진흙젤리로 튼튼했다.

 엘리는 전자발판을 타고 7층인 자기 방에 올라가자마자 누워 폰을 켰다. 아까 지하벙커 에덴 STD 기술개발실에서 찍었던 홀로그램 영상이었다. 엘리는 이공중이라는 사람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마도시가 주장했던 지구종말론과 창세기 마을을 만드는 데에 보조한 개발자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본 영상에는 마도시가 창시자가 아니라 보조였고, 오히려 이공중이 창시자로 등장했다.

         

 “이공중? 십자가?”

              

 엘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신의 빨강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가 이공중의 십자가 은반지와 자기 목에 걸려있는 십자가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에이~ 비슷한 십자가가 얼마나 많은데~ 안 그래? 그런데 이 영상은 이상하단 말이야~ 뭐 잘못 만들어서 다시 만들었나 보지!”  


 더 이상의 생각을 허용치 않으려고, 엘리는 트랜스포머폰을 접고 벽에 부착된 방 거울 앞에 섰다.               


 “잠옷!”               


 옷을 갈아입으려고 외치자 거울에서 여러 거미다리 같이 가늘고 긴 막대기들이 나와 엘리가 입고 있는 교복을 환복해 작은 사이즈로 줄여 거울 속에 있는 옷장에 넣었다. 그리고는 작은 사이즈의 잠옷을 정사이즈로 만들어 엘리에게 입혔다.     

 잘 사는 집은 옷장이 따로 없고 옷 한 벌만 있다. 그 옷이 여러 형태로 바뀌기 때문에 꽤나 비싸다. 이 옷을 ‘미래옷’이라고 한다. 다른 디자인의 옷을 입고 싶을 때는 미래옷 안에 있는 칩에 새 옷 디자인을 저장해 두면 된다. 예를 들어 헬퍼나 트랜스포머폰, 텔레비전을 통해 옷을 구매할 때, 자신만의 미래옷 고유번호를 적고 결제를 누르면 자동적으로 미래옷에 있는 칩에 저장이 된다. 즉 입고 싶은 옷을 결정하면, 미래옷 안에 있는 질감이나 두께 등등이 결정되어 그대로 구현되는 원리다.

 이처럼 미래옷 안에는 새 옷감을 개발해내지 않는 이상 모든 종류의 옷감과 색이 다 내장되어 있다. 그래서 부자들은 따로 옷을 살 필요가 없다. 중산층은 돈을 모아서 살 수 있다고 쳐도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은 꿈도 못 꾸는 가격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이 옷은 세탁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세탁기를 쓸 필요가 없기도 했다.

               

 “에휴~ 그래도 내 손으로 옷을 입는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다. 이 거울이라도 있으니 감사하네~”               


 엘리는 소돔 학교에서 반 친구들을 떠올려보았다. 반 친구들도 그렇고 요나의 소매 안쪽에 ‘미래옷’ 메이커가 붙어있었던 걸 봤었다.  


 “됐어~ 됐어! 갑자기 무슨 생각이야~ 그런데 미래옷도 마도시가 만들었나? 아니! 이공중?”               


 하얀색의 천사 잠옷이 입혀진 엘리는 천장을 쏘아보며 상상했다.               


 “이 사고뭉치들! 밥 먹어!”               


 익숙한 엄마라고 부르는 나훔엄마의 소리가 들렸다.               

 

 “아! 네네네네~ 가요 가~ 엄마 목소리가 너무 밝아~ 역시 괜히 쫄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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