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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소녀 Aug 27. 2024

프롤로그. 지구종말 2년 전

 “이 데이터를 보십시오. 2년 뒤 지구는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겁니다.”

            

 눈 밑에 점이 있고 하얀 피부에 얄상하게 생긴 한 과학자는 방 중간에 뜨는 홀로그램들을 가리키며 주위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있었다. 범상치 않은 이들은 장관들과 대통령과 부통령, 대한민국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사람들과 여러 대기업에서 나온 기술개발 투자를 담당하는 팀장들이었다.     

 홀로그램에서는 전 세계의 화산들이 일제히 한 날 한 시에 폭발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아무 증후 없이 들끓던 용암이 갑자기 솟구쳐 반경 1000미터까지 덮는 모습은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히 엄청난 경악을 이끌어냈다.            


 “마도시 개발자!!!!! 이게 말이나 됩니까?”    

           

 부통령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큰소리를 쳤다. 다른 장관들이나 기술개발 팀장들도 마찬가지였다.

       

 “부통령님 말씀이 맞습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전 세계에서 일제히 화산이 폭발한다고 지구에 종말이라니요! 당신은 과학자가 맞습니까? 국민의 세금으로 뭐 하는 거요?”

            

 행정안전부 장관이 회의테이블을 두 주먹으로 쾅쾅 내리쳤다.

          

 “화산이 폭발할 뿐만 아니라 이 반동에 연이어 약한 지반들도 터져, 지구 핵 속에 있던 뜨거운 열기가 뿜어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생명체도 살 수 없는 환경이 되겠죠.”

            

 마도시 개발자 옆에 있는 십자가 은반지를 낀 까만 머리색을 가진 개발자가 말했다. 마도시와 비슷한 나이로 까무잡잡한 피부에 훤칠한 키를 가진 개발자였다. 마치 개발자이기보다는 모델에 가까워 보였다.

          

 “잠깐 한 마디 드려도 되겠습니까?”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대기업 '산성'의 팀장이었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홀로그램 집중하며 보던 까만 눈망울에는 진지함이 어려 있었다. 아무래도 까만 뿔테 안경과 질끈 묶은 긴 머리가 차분함을 더해주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네 말씀하십시오.”     

 “방금 2년 뒤 모든 생명체가 죽을 거라고 하셨는데, 그럼 살 방법은 없는 건가요?”     

 “아니~ 뭐 이런 말에 질문을 하는 거요? 자자~ 회의 끝냅시다! 들을 가치도 없어요. 그렇죠 대통령님?”  




 심각한 산성의 팀장과 개발자들, 장관들 사이에서 기나긴 토론이 벌어졌다. 해결책이 쉽사리 나오지 않자 결국은 이 회의의 결론을 확실하게 이끌어 내기 위해 부통령은 대통령의 최종 의견을 물었다.

           

 “흠~ 지구 종말이 없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너무 빈약한 이론과 근거에 설득이 되지 않는군요. 보아하니 처음 보는 개발자들 같은데 말입니다.”     

 “아……네… 대통령님… 이번에 임용된 지 1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개발자들의 총책임자는 살얼음판 같은 회의 속에서 이 신예 개발자들이 발견한 지구종말 이론을 괜히 허락했다는 후회가 들었다. 처음에는 자신도 말이 되지 않는 이론이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에는 말할 수 없는 현상들이 많기에 허락했던 것이었다. 또한 이 두 명의 천재 개발자들이 자신의 자리를 걸고 맹세했기에 허락한 이유도 있었다.

         

 “정신 차리세요. 여기는 학교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정부란 말입니다!!! 앞으로 저 사람들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부통령이 대통령을 대신해 이들을 향해 있는 대로 윽박을 질렀다.  

         

 “아닙니다~ 부통령님! 이건 사실입니다. 여기를 보십시오. 증후 없이 터지는 화산들은 지금도 현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휴화산들도 많죠. 저희들은 백 년 전에 터진 대한민국에 있는 화산들을 주시하다가 우연히 이 데이터를 얻게 된 겁니다. 작년부터 전 세계의 화산들의 활동을 계산하고 예측하다가 이런 미래를 발견하게 된 거라고요. 믿어주세요.”  

           

 마도시 개발자는 홀로그램의 다른 예측그림들을 띄우며 부탁하는 마음으로 애처롭게 설명했지만, 개발자들을 제외한 이들은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마도시 옆에 있던 십자가 은반지를 낀 남자는 마도시의 어깨를 한두 번 토닥이며 ‘이런 반응일 줄 알았다’며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떴다.


         

****

               

 “마도시! 이공중! 내가 그럴 줄 알았다. 너희들 사고 칠 줄 알았어! 내가 왜 너희 그냥 내버려둔 줄 알아? 그만 좀 멈추라고 내버려둔 거야. 내가 말을 해도 듣지도 않고 연구하더니! 아오~ 이제 현실을 알겠지? 천재라 그래서 봐줬더니, 그런 바보 같은 연구 그만둬! 그리고 사표 쓸 건지 가만히 처박혀서 이백 년 동안 대한민국 기술부진을 극복할 연구를 할 건지 선택해!!!!”               


 회의 때 본전도 얻지도 못하고 쫓겨난 마도시와 이공중, 개발자 둘은 총책임자의 말에 풀이 죽었다. 총책임자는 ‘꼬시다’는 표정으로 개발실을 나가버렸다. 그와 동시에 익숙한 실루엣이 들어왔다.

          

 “저… 여기 개발자실 맞죠? 아까 마도시 개발자님 계신가요?”     

 “아~ 저 마도시입니다.”

            

 아까 까만 눈망울이 또렷한 산성의 팀장이었다.               


 “무슨 일로…?”     

 “아! 마도시 개발자님!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죠? 아까 듣지 못해서요.”     

 “네~ 우선 지반이 두껍고 화산과 거리가 먼 곳에 지하벙커를 만들어야 합니다. 지상에서는 살아남을 방도가 없으니 지하밖에 없죠. 그곳에서 환경이 갖춰지면 생산할 수 있겠지만 우선은 최대 10년간의 식량을 채워 넣고 지구종말 3개월 전에는 들어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지금부터 지하벙커를 만들고 준비하면 좋겠죠… 하지만 이제 그럴 시간도 없겠네요. 다들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요.”

          

 마도시는 약간은 허탈한 마음으로 산성의 팀장을 보며 개발실에 있는 홀로그램을 띄워 씁쓸하게 말하고 있었다. 마도시 옆에 선 팀장은 마도시의 손가락이 향한 홀로그램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갑자기 마도시의 얼굴을 바라보 볼이 발그레 해졌다. 

           

 “흠흠~ 저... 저희 산성은 지구종말 이론을 믿습니다! 투자하겠습니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요? 본사와 상의하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본사가 곧 저입니다. 아까 사표 쓰실지 고민하신다고 하셨죠? 저녁 함께 하시면서 고민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아~~ 좋죠! 좋죠 좋죠! 이공중! 성공이야!”  

             

 기뻐하는 마도시와 뒤에 서있던 이공중.

 둘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했고, 마도시에게 일종의 다른 마음을 품은 것 같은 산성의 팀장은 마도시를 보며 눈빛이 흔들리다가 이내 마음을 다잡고 마도시에게 계약을 상징하는 악수를 청했다.     



****


               

 “도시씨~ 어떻게 지구 종말 이론을 발견한 거야? 공중씨와 함께 연구한 거야?”     

 “아니에요. 유나 씨. 도시가 먼저 발견해서 저에게 설명을 해준 거죠.”     

 “아냐~ 공중과 함께 한 거지! 하하하!”  

           

 그날 이후 마도시와 이공중은 정부 연구개발팀을 관두고 산성의 팀장이자 후계자인 김유나와 함께 지구종말을 대비했다. 이에 함께 참여하겠다고 나선 신예 개발자들도 있었다.     

 이들은 대한민국 콘크리트가 깔리지 않은 곳을 찾아 땅을 파고 얼마 전에 개발한 신소재 ‘진흙젤리’ 소재로 지붕과 바닥을 둘러싸며 벙커를 건축했다.

            

 “이 진흙젤리 소재는 무궁무진하게 쓰일 거야. 쉽게 모양을 잡을 수 있고 금방 자리를 잡으니까~ 철골구조 없이 가능하지. 마치 이글루 보다 간단하고 쉽게 지을 수 있고, 강도는 핵폭발에도 끄덕 없죠. 이름만 진흙이지 정말 진흙이 들어간 건 아니고요. 진흙 같은 질감의 소재예요.”     

 “왜 전 세계는 이백 년 동안 발전이 없었을까요?”     

 “우리가 없어서?”     

 “호호호호~ 도시씨와 공중씨가 없어서요? 정말 말이 되네요!”     

 “말은 똑바로 해야지. 이건 도시 네가 개발한 거잖아. 지구종말 이론도 그렇고 이 진흙젤리도 그렇고.”     

 “이것 또한 도시씨가 개발한 거예요? 와우~ 너무 대단해요!”     

 “부끄럽네요. 하하하!”


 이공중이 건축 상황을 보러 자리를 뜬 사이에 마도시와 김유나는 서로 두 손을 맞잡고 한창 지어지고 있는 지하벙커를 바라보았다.                         



****


     

 이렇게 지하벙커의 천장, 벽, 바닥 어디 하나 구멍 없이 모든 두께가 100cm로 만들어지고, 그 안에 개발실과 식량 창고, 많은 집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 지진에 대비하여 모든 건물들은 진흙젤리 소재로 만들었다. 현재 쓰이고 있는 콘크리트와 철골구조를 단 하나도 들여오지 않았고, 제2의 신세계처럼 지하벙커를 새롭게 건축하려 했다.

 무엇보다도 자연친화적이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던 마도시는 동물들을 쌍쌍이 들여와 동물원을 만들고 흙과 나무들, 꽃들을 심었으며, 인공호수와 강을 만들어 지하벙커 한켠을 가득 메웠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개발자들의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는 윗선에 억눌려 펴지 못했던 기술들을 개발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곳에 미래개발에 필요한 도구들과 재료들을 들여놓았다.               

  

 이렇게 1년 8개월 동안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원하는 개발자들과 일반인들만을 모집해 이주했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미친 짓’이라 여겼다. 왜냐면 평온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한몫했고, 정치인들의 언변이 두 몫 했으며, 갑자기 닥치는 신의 분노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 세 몫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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