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내가 연애를 잘하는 줄 알았다.
인생의 쉬는 시간 없이 남자친구를 사귀면
인기가 많은 건 아니라도 여자로서 꽤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뇌경색이 발병하고 나 자신을 알아가게 되는 시간을 갖게 되면서 ‘나는 연애를 못하는 사람이구나’하고 깨달았다.
저 연애를 잘한다고 생각했던 처음이 대략 20대 중후반인데,
일단은 글을 써야하니 아주 맨 처음 이성에게 호감의 감정을 느낄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고 싶다.
첫사랑은 처음 사귄 사람인지, 아니면 처음 이성으로써 호감을 느낀 사람을 지칭하는 건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후자라면 나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때는 유치원 시절이었다.
피부도 하얗고 머리도 밝은 갈색이었던 그는 내가 볼 때 외국에서 온 아이 같았다.
나의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는데, 어느 날 그가 우리 집에 찾아왔었다.
두둥~
그런데 알고 보니 나의 친한 친구가 찾아가라고 해서 찾아왔다고 했었다.
내 친구는 정말 이뻤기 때문에 말을 들었던 거 아닐까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애매한 기억을 가지고 살았는데, 대학생이 되고 나서 그가 궁금해졌다.
생각이 정확히 나지 않지만 싸이월드나 동네친구들을 통해 건너 건너 알 수는 있었어서 적극적으로 찾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그는 잘 받아주었고 만날 약속을 정했다.
정말 궁금했고 설렜다.
그는 나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나를 왜 보자고 했을까?
그도 내가 마음에 조금은 있었던 걸까?
이것저것 생각을 하면서 만나기로 한 장소에 서 있는데, 이게 웬걸!
저기서 하얀 피부를 가진 그가 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설렘은 그를 보자마자 끝이 났다.
그 이유는 그가 아줌마파마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하하하~~
유치원 때의 첫사랑은 겉모습으로만 판단하기 때문에
대학생이 돼서도 겉모습으로 끝났나 보다.
만나서 아주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유치원 동창이 이렇게나 편할 수가!
이렇게 겉모습을 중시하는 내가 연애를 잘할 리 만무했다.
초등학교 때는 사춘기가 빨리 오는 바람에 주위에 친구들은 우정을 중시할 때 나 혼자만 사랑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나 혼자만 여드름도 많이 나고 당시 같은 반 남자애들보다 커서 남자애들이 여자로 볼 리가 없었다.
키가 그때 160cm였다.
그렇다고 지금 엄청 큰 건 아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잠깐 좋아한 사람은 패스하고 초등학생 5학년 때였다.
한 남자아이가 전학을 왔다.
목사님의 아들이었다.
키는 나보다 작지만 검은테의 안경을 쓰고 있었고 영리해 보이면서 잘생겨 보이는 그였다.
빈자리가 내 옆자리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내 짝이 되었다.
처음에는 친하지 않았지만
당시 모둠으로 앉았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이 남녀구분없이 다같이 장난도 치고 친해졌었다.
밸런타인데이날이 되었다.
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용기를 내서 그의 집이자 교회를 찾아가 접은 종이와 함께 초콜릿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답은 없었다.
이때는 모둠 친구들에게 다 돌렸어서 답이 없는 게 당연했다.
이렇게 초등학생 시절을 지나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내게 작고 귀여운 친구가 있었는데,
나와는 달리 애교도 많고 적극적으로 대해주던 활발한 친구였었다.
중학교 2학년 때, 집으로 하교하다가 우리 집이 보일 즈음에 많이 보던 뒷모습을 봤다.
자세히 보니 내 친구였다.
그런데 그 옆에 손을 꼭 잡은 남자친구가 있었다.
뒷모습만 봐도 달달함이 보였기 때문에 남자친구를 사귀었나 보다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친구가 뒤를 돌아보더니
“ㅇㅇ아~” 하면서 나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 남자친구도 나를 향해 몸을 틀었는데, 맙소사!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 짝사랑했던, 나의 짝이었던, 유독 큰 초콜릿을 줬던 그였다.
정말 충격이었다. 내 마음엔 아직 그가 있었는데!
친구에게 인사할 생각도 못하고 머리가 하얘져서 그 자리에 굳어있었다.
아마 친구는 ‘쟤가 왜 저러지?’ 싶었을 것 같다.
이렇게 나의 사랑은 또 지나갔다.
외모도 평범, 공부도 평범, 친구들 사이에서만 잘 지냈지 활발한 성격은 아니었으므로 나는 이성에게 어필될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가족끼리 따뜻한 표현을 하거나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를 할 일이 없었고 그 자체도 몰랐으므로,
나도 모르게 그 결핍을 또래 남자에게서 채우려고 했던 것 같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나의 본격적인 연애는 시작됐는데,
전학 간 학교의 친구들에게는 내가 괜찮게 보였나 보다.
그래서 고마웠다.
고등학교 3학년을 빼고 쭈욱 연애를 쉬지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든 연애할 상대를 찾아서 만났는데, 이게 나의 단점인지 뇌경색 이후로 처음 알았다.
나는 ‘쉬지 않고 연애를 한다’는 타이틀이 인기의 척도라고 생각했었다.
누가 알아봐 주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의 섬의 갇힌 느낌.
학력이나 생활력, 성품, 성격, 태도 등등은 필요 없었고, 내가 보기에 잘생기고 서로 이성적인 느낌만 있으면 된다고 여겼다.
외모와 덩치만 보다가 내면이 약한 사람을 만나니, 마치 내가 악녀가 되어가는 기분이었고,
돈 없는 연애가 싫어서 마음은 없지만 돈 있는 사람을 만나니, 마치 내가 꼭두각시가 되는 기분이었고,
순수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만났더니 남자가 아니라 동생을 돌보는 것 같았고,
나만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만났더니 사육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 탓만 한다고 생각하실 거다.
그때는 남자 탓만 했다.
똥차 가고 새 차 온다는 말을 믿었지만 이건 말 뿐인 게
내가 바뀌지 않는데, 어떻게 사람 보는 눈이 한순간에 바뀔까~
그리고 내가 남자에게는 똥차일 수 있었다.
똥차일 수가 아니라 똥차였겠지~
뇌경색이 발병하고 나서 당시 남자친구가 온다고 해놓고 소문에 다른 여자가 생겼는지 잠수를 탔었다.
다행인 건 사육당하고 있었어서 내가 기계적으로 연락한 느낌이었는데, 먼저 나를 멀리해 줘서 고마웠다.
진짜 감사한 건 6개월 이후에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었다.
어쨌든 당시의 내 기력은
밖의 기압과 집 안의 기압을 다 느낄 정도였고
사람들 많은 곳이나 큰 소리가 나는 곳이나 온도에 따라서 기타 등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몸이 쇠약해져 있었으므로
나는 나 스스로가 ‘연애는 못한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 처음으로 이렇게 결론지었다.
본래 나에게 있어서 연애는 필수였었는데 이제는 내 건강상태에 따라 선택이 되어버렸다.
아모레 파티~~~~
하하하하~~~
그러다보니 괜시리 평범한 사람들의 연애를 돌아보게 되었다.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영화관에 가거나
외부로 놀러를 가거나
오랜 시간 앉아서 신나게 대화를 나누거나
스트레스는 받겠지만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거나
사랑을 속삭이기도 한다.
나는 이 모든 게 불가능했다.
그래서 감사했다.
1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연애에 올인했던 나는 개인적인 성취보다는 남은 게 '만남과 이별'밖에 없었다.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삶을 계획하거나 아니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거나 도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좋은 사람을 만나면
다 해결되는 줄 알고 남자 만나기에 집중했었었다.
아르바이트는 했었다!
그런데 나이 30대 초중반부터 시간이 생겨버렸다.
‘나를 알아갈 수 있는 소중한 시간’
그동안 나는 세상과 사회에 찌들어 한창 작아지고 열등감과 실패감에 찌든 상태였다.
스스로 루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생기면서
(요양시간이지만!)
부모님을 관찰하게 되었다.
엄마는 날씬했을 때나 통통했을 때나 항상 당당하셨고
아부지는 엄마의 어느 모습이든 잘생기고(이쁘다는 표현을 이렇게 하신다) 귀엽다며 자랑자랑을 하신다.
나는 이런 부모님의 딸인데 왜 나는 이렇지?
내가 부모님과의 시간을 보내지 않은 탓이다.
내가 부모님을 관찰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았던 탓이다.
아기 때는 무조건 부모님을 배우려고 했을 텐데, 성장하면서 돈과 명예, 사랑하는 사람과 잘 먹고 잘 사는 거에만 정신이 팔려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건강한 남녀 연애소식들을 교회를 다니며 접하게 되면서 나의 문제점을 알아갔다.
첫째는 자존감 낮은 금사빠였다는 점.
금사빠는 거의 99.9퍼센트가 자존감이 낮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나를 토닥여주고 지켜주면 되는데, 이성에게 사랑받고 싶어 하고 그 이성의 사랑으로 나를 평가하는 안 좋은 습관이 있었다.
그때는 친구의 친구가 지하철에서 자신을 눈여겨본 사람과 일 년 만에 결혼했다는 소식에 엄청 부러웠었다. 그런데 금방 이혼했다는 소식도 들었었다. 그 친구의 친구도 금사빠였나 보다.
아마 내가 잘못 걸렸으면 그랬을 것 같다.
둘째는 소유욕이 있었다는 점.
그래서 내 마음이 자유롭지 못했다. 정말 신뢰가 쌓은 사람이면 그 사람이 뭘 하든 믿어주고 기다려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떠날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떠날 텐데 말이지.
셋째는 인내하지 못했다는 점.
사랑은 참아주고 기다려주는 요소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화가 나면 바로 냈고 필터가 없었다. 그래서 사귀었었던 한 친구가 ‘너는 결혼감은 아니야’라고 했던 말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내가 당시의 나를 봤어도 나는 결혼감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나를 잡아줬다면 변하지 않았을까 싶지만 보는 눈이 다 거기서 거긴데 누가 잡아주리.
넷째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무조건 외적인 요건에 이끌려 만났다는 점.
나는 그동안 나라는 사람을 가족을 투영해 이해해보려 했지만 그게 항상 부정적인 생각에 이르렀기 때문에 스스로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있다가 MBTI가 유행하면서 이를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INFJ.
내가 나 자신을 볼 때 이해하지 못했던 내용들이 다 여기에 들어 있었다.
나를 알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졌다.
내가 적은 아니지만,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의 말이 제격일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나에게 어떤 사람이 어울리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믿을 수 없으면 만나고 있더라도 마음이 싹 식는다)
-내가 정적이니까 비타민처럼 활력을 줄 수 있는 사람(서로 웃음코드가 맞을 것 같다)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서로 위로와 격려를 하면서 아껴줄 수 있다)
-예수님 없이 못 사는 사람(생활양식과 가치관에 대해서 서로 맞아야 한다)
-혼자서도 잘 있을 수 있는 사람(그럼 ‘독신이 맞다’고 할 테지만 그 뜻이 아니라 밥도 혼자서 잘 차려먹을 줄 알고 스스로를 토닥일 줄 아는 사람을 뜻하는 것)
-사랑으로 기다려 줄줄 아는 사람(서로의 치부를 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봐도 인내하며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
-표현방식이 잘 맞는 사람(말로 표현해서 사랑이 채워지는 사람이 있고, 행동으로 해서 채워지는 사람이 있으니, 꼭 맞지 않더라도 이해해 주고 맞춰주면 된다)
-예의 있는 사람(필수다, 물론 불의에 못 참아서 잠시 예의를 내려놓을 수 있지만 약자에게 강하게 대하고 강자에게 아첨하고 또 거만한 사람은 아무리 다른 것들이 맞아도 싫다)
-뭘 하든 사랑을 가지고 열심히 일 하는 사람(불평을 토해내며 일하는 사람은 힘들다)
-긍정적인 사람(건강하게 부정적이면 좋은데, 삶을 보는 시각 자체가 부정적이면 힘들다)
-내 건강상태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말로만 이해한다고 하는 거 말고 사랑해서 받아들여지는 그런 느낌?!)
여기까지만 생각이 난다.
뭐 이리 많나 할 수 있다.
백 퍼 다 맞아야 한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써봤다.
'나도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에 그럴 수 있는 부분들만 쓴 것이기도 하다.
청소년기 때도 연애를 똑 부러지게 잘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반면
나처럼 자아확립을 못해서 감정에 끌려 연애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잘못하면 피 본다.
하지만 이 인생의 쉬는 시간이 주어져서 앞으로 이 상태로 연애를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반성하고 다짐해 봤다.
하하하하~~
나는 연애를 잘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 한 바퀴 돌아왔다.
예전 시각으로 봤을 때 남자답고 멋져 보였던 사람들이 지금은 이성적인 매력이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예전에 재미없어 보였던 남자들이 멋져 보인다.
참 희한하다.
나를 가꾸고 겸손하게 삶을 대하다 보면 어느 날 나타나거나 아니면 말지 뭐~
하하하~~
그냥 깨달은 이 자체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