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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기소녀 Oct 08. 2024

나는 말을 잘 못한다!

     

한 사람에게 있어서 ‘말’은

그 사람을 보여주는 ‘외모’와 쌍벽을 이룬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외모’는 마치 가게의 간판이나 인테리어를 나타낸다면,

‘사람이 하는 말’은 마치 그 사람의 가치관과 정체성 등등 머리구조와 영혼상태를 나타내주는 내적 통로로 역할을 한다.     


그래서 목소리도 외모와 같은 작용을 해서

사람에게 호감 주는 목소리라면 말을 웬만큼만 해도 말을 잘한다는 느낌을 풍기게 하고,

외모에 조금 자신이 없어도 목소리로 하여금 얼굴이 잘생기거나 이뻐 보이는 효과까지 준다.     


하지만 나는 말을 잘 못하고 익숙하지 않은데,

'목소리가 낫냐' 물으신다면 그런 것도 아니고

그럼 외모가 괜찮냐 물으신다면 또 그런 것도 아니다.     


목소리는 마치 닥터슬럼프에 나오는 아리와 비슷한데,

정말 비슷하면 성우라도 해볼까 싶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코맹맹이에 낮은 음을 가진, 또 그렇다고 완전 낮은 음도 아닌 어정쩡하고 한 음만 내는 목소리다.     


그래서 굳이 위로해 주려고 다른 방면으로 눈을 돌리지 않아도 된다.

이 주제는 내 자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냥 나를 제대로 봐주고 ‘그렇구나’ 해주면 된다.  




어릴 때는 그래도 엄마를 따라 한답시고 장군처럼 똑 부러지게 말을 잘했다고 한다.

생각은 나지 않지만 옆집 사는 친구랑 다퉜었다고 한다.

내가 말로 다다다다 쏴대니까 친구는 말도 못 하고 답답해서 나를 힘으로 밀어 넘어뜨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지금으로선 신기할 따름이다.

그 쪼끄마난게 다다다다 쏴대다니.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아서?    

 

사춘기 전까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엄마는 나와 반대로 목소리가 고급지고 우렁차다. 오빠도 마찬가지.

그래서 영향을 많이 받았고 나도 그렇게 닮으려고 애썼나 보다.     


하지만 사춘기에 딱 들어서면서,

마치 수술 후에 마취가 깨는 느낌으로다가

내 인생에서 인식의 불이 딱 켜지는 순간부터 조용히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하나의 소망이 있었다.

‘말’ 하지 않고 머리 위에 ‘말풍선’이 뜨면 좋겠다는.    

 

말하고 싶은 사람은 말로 하면 되고,

생각으로 대화하고 싶은 사람은 말풍선으로 하면 되지 않겠냐는 상상.     


한창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보급되고 스카이러브가 유행할 때 중학생이었던 나는 밀려오는 파도를 타듯 인터넷을 완전 즐긴 1인이었다.

학교를 가든 친구를 만나든 뭘 하든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는 말을 무조건 다 해야 하는데,

이 인터넷 공간은 ‘말’이 필요 없고 ‘글’로만 소통이 되니까 너무 좋았다.

그래서 타자도 빨리 늘었다.

하하하~     


스카이러브를 할 때만 해도 순수하게 대화만 나누고 서로 소통하는 창구라 자주 수다를 떨며 놀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채팅이라고 하면 어딜 가나 변태가 많다는 소문이.     


저때는 한창 호기심이 많을 나이고 세상을 알고 싶을 때니까 채팅을 하면서 현실에서는 말 못 하는 내가 아닌, 재미도 있고 분위기를 이끄는 또 다른 내가 될 수 있었는데,

희한한 건 말을 순발력이 없어서 멍 때리기 일쑤인데,

왜 이렇게 글은 술술 잘 나오는지 나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저렇게 하려고 해도 할 수는 없다.

이 자체도 에너지 소모가 크고, 어릴 때와 지금의 열정, 호기심 등등 또한 다르니까.     


지금은 적어도 진지한 이야기를 할 때는 톡으로 하려고 한다.

생각하며 무언가 말해줘야 할 때는 글이 좋다.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얼굴이나 그 주변 배경, 말 등등 여러 가지로 시선이 분산되면서 집중하기가 어렵고 대답도 적절하게 나오지 않는데,

톡으로 하다 보면 반드시 도움 되는 한 마디는 나와서, 고민은 톡을 선호한다.      


    

그렇다고 '입을 닫고 살았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무언가 폭발했는지 전보다는 활기차졌고 남자에게 먼저 대시도 하고 열몇 명이 모이는 모임에서 리더도 하고 댄스동아리도 하고 알바도 하고 그랬었다.     


역시나 ‘말’을 잘했던 건 아니다.

‘세상 살아가기에 필요한 말’은 했지만,

정작 나를 토닥이거나 상대를 위로해 주거나 마음을 어루만지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었다.

아니 못했었다.     


아무래도 가족 안에서 마음을 나누는 말들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부모님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

부모님도 그 위의 부모님도 그렇게 사셨다.     


너무 가난하니까 먹고살기에 바빠서 다들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일을 해야 가족이 먹고사는데, 그럴 여유도 없었을 거다.

‘그래도 부모니까 해야지!’라고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각자 처한 상황과 성격과 상태에 따라 다르니 누가 누굴 가르칠 순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이야 텔레비전이나 인터넷에서 심리치료사들이나 정신의학교수님들이 나와 여러 유용한 정보를 공짜로 알려주지만,

우리 때는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고, 알았어도 돈이 없는데 거기다가 쓸 여유도 없었고, 필요성도 못 느꼈을 것 같다.     


‘그러면 먹고살려면 말을 더 잘해야 하는 게 아니냐?’ 이런 질문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맞다.

그래서 대학생 시절, 아르바이트할 때 인사는 잘했다.

하하하~          




그러고 보면, 나는 목소리도 작다.

인사는 잘했어도 가끔 상대방이 들었을지 의문이긴 했다.

발음도 가끔은 지렁이가 굴러가듯 말할 때가 있는지 상대가 못 알아듣기도 한다.

나는 잘 말했는데 상대가 그렇게 느끼는 걸 알면, 그 상대와는 대화가 쉽지 않아 졌다.

영어는 아직도 잘 못하지만, 신이 나에게 언어능력을 준다고 하면 나는 망설이지 않고 꼬부랑이 많은 영어나 유럽 쪽 언어를 선택할 거다!     


참고로 자신감이 없어서 목소리가 작은 게 아니라

그다지 큰 소리를 낼 필요성도 못 느끼고 잘 안 해봤으니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게 좋았다.

좋았다기보다는 그냥 이게 나였다.     


웃긴 건 연애를 할 때다.

내 목소리가 유일하게 컸다는 걸 인지한 시기이다.

다툴 때는 소리가 나도 모르게 커지고 뇌도 아주 팽팽 잘 돌아가니까 순발력도 엄청 빨랐고 할 말도 많았었다.

아무래도 가족에게 채우지 못한 결핍을 남자친구에게 말로 푼 것 같다.

참 부끄럽다.

그때는 몰랐지만, 뇌질환 이후 요양을 하면서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는데, 그때 조금씩 반성이 들었다.               



‘말을 잘 못하고, 목소리가 작으면 조용한 시간에 전화로 하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된다.

이것도 방법이다.

하지만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나 의도, 기분 등등에 의해 대화가 좌우될 때가 많았으니 이것 또한 나에게는 완전 좋은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에게 좋은 방법이라면 맞춰준다.

존중쓰~     


‘에잇! 못해먹겠네!’라고 할 수 있다.

정말 내가 신이라면 말없이 말풍선이 뜨거나 상대방의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아는 세상을 만들 것이다.

하하하~               



말을 잘 못한다고 했는데,

나이가 있으니 어느 정도 ‘말’도 사회화가 되어서 그런지

가족과의 목적 없는 수다나 교회 동생과의 일상대화나 친구와의 연애상담 이 정도는 가능한데,

내 성향이 INFJ라 그런지 단체로 같이 있을 경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거의 다 경청모드로 앉아있거나 목적 없이 시간을 때우는 자리면 굳이 참여하고 싶지 않아 한다.     


단체로 있을 때,

그것도 가까운 사이들이 아니라 애매한 사이일 때,

가만히 앉아있으면 가마니가 되어버리거나 유령이 되어버리고

말을 할라치면 목소리가 작아서 그냥 지나가거나

또는 재미없고 분위기가 나 때문에 처질까 봐 안 하게 되고 기피하게 되었다.     


또 뭔가 물어봐야 할 때 인터넷을 검색하지 굳이 물어보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인터넷 구매 했을 경우, 채팅 기능이 있으면 하고 급하면 전화도 하긴 한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으면 문의를 남겨서 하루, 이틀은 기다리는 게 보통이다.     


그래도 일대일은 편하다.

일대일도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그나마 낫다.

단체는 누구에게 뭘 맞춰서 이야기할지 모르겠는데, 개인은 그 사람에게만 맞추면 되니까 그나마 좋다.

그렇다고 내 이야기를 아예 안 하는 건 아니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맞춰서 내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또 가끔 호기심이 생기는 사람이 생기는데,

그 사람과 우연찮은 기회로 가까워지면 한번 도전을 해보긴 한다.

남자는 아니니 기대와 오해 마시길!     


도전해서 유유하게 천천히 흘러가면 그 흐름에 맡기며 지내고

처음부터 뻘떡거리거나 미묘하고 이상한 느낌을 받으면 거리를 두고 지낸다.     


대부분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면서 그 사람이 어떤 영혼의 사람인지 조금씩 파악하게 되는데 물론 내 파악이 다 맞는 건 아니다.

그렇다!

말을 잘 못하니까 ‘경청’을 하게 된다.

경청을 하면서 파악을 하게 되고 또 생각을 하게 되고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예전에 엄마가 안경가게에 안경다리 문제로 갔다가 불친절한 직원에게 무례한 말들과 함께 자신의 스트레스를 엄마께 풀 때도,

바보같이 멍하니 바라보며 경청만 하다가 가게에서 나와서야 정신을 차렸는데

그때는 이미 늦었어서 ‘내가 왜 그때 엄마를 보호해주지 못했을까’하며 며칠 동안을 속 끓이며 힘들어했었다.     

말이 없고 말풍선으로 소통하는 세상이었으면

진짜 바로 말풍선을 날렸을 텐데!     


이렇게 말을 못 해서 바보 같다는 생각도 가끔 들기도 하다.     


하지만 자책만 하면 어떻게 해~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완벽한 사람도 아니고 이게 내 디폴트인데 어떻게 해.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머리로 시뮬레이션을 엄청 돌렸으니 다음부터 잘하면 된다.    

      

그래도 ‘글’로 소통하는 세계가 있어서 다행이다.

문자, 카톡, 블로그, 브런치 등등!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만 살았다면 나는 어떻게 살았을까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요한 건 내 마음을 표현하는, 그러니까 불평하거나 부정적인 말들 말고

‘상대방에게 따뜻함을 주는 말‘이나 ‘나 다운 말’을 잘 못한다.

그래서 유튜브를 보거나 브런치의 글들을 보면서 배우기도 한다.     


고생했어~

많이 기다렸지?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많이 힘들었겠다.

보고 싶었어.

이해해~

진심으로 고마워!

네가 있어서 감사해!

(무턱대고 화내는 상대에게 화내지 않고 우선 참으면서) 네가 왜 화가 났는지 이유를 설명해 줄래? 너와 잘 지내고 싶어서 그래~

내가 도울 게 있을까?

나에게 사과해 줘!

최고다!

너라는 사람은 참 귀해!

기타 등등~     


나 다운 말은 내 캐릭터가 묻어 나오는 말이어야 하는데,

이건 ‘말’보다는 ‘글’에서 많이 묻어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 글이 있음 됐지!

글이라도 있어줘서 고맙다!

그래도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말도 할 말은 해!

나야~ 걱정하지 마!

어떻게든 살아진다!                         



나는 말을 못 한다.
나는 말을 못 하는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말을 하기 귀찮은 것도 아니고,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다고 나 자신이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말을 잘하면 플러스점수 먹고 들어가는 세상에서 나는 마이나스지만
그래도 생각이 많고 글로 어느 정도 표현이 되니 좋다.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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