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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Oct 08. 2024

처음으로 혼났던 거짓말의 기억

with. HOT 반지


이전 에피소드는 아빠가 주셨던 선물이라면, 이번 에피소드는 바로 친구가 준 선물이다.



출처 - pixabay



이 선물은 내 거짓말과도 관계가 있었는데 이전에도 거짓말은 했지만, 이것을 처음으로 기억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것이 정말 내 첫 거짓말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엄청 혼났던 기억 덕분일까 아직도 내용이 기억난다.



HOT는 핫했다. '응답하라 1997'에서 나오던 정은지는 아직 나에게 큰 누나일 즈음의 이야기다. HOT의 인기는 초등학교 어린 학생들도 가리지 않았다. 여자아이들뿐만 아니라 남자아이들도 팬이 많았는데 그 결은 대부분 자기도 저 형들처럼 인기가 많았으면 하는 동경이었다.



인기가 많으면 가장 그 인기를 실감하는 곳은 바로 문방구다. 그 시절 문방구는 바로 어린이들의 백화점이었기 때문이다.





줄줄이 늘어서있는 뽑기들 중에서는 HOT 캐릭터나 악세사리가 들어있는 뽑기가 가장 인기가 많았는데 친구가 거기에서 HOT 반지를 뽑았다. 자기는 이미 가지고 있다며 그 반지를 나에게 주면서 자기 손도 보여주었는데 정말 똑같은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하루 용돈이 100원이었는데 HOT 반지가 그냥 생기다니...! 친구 덕분에 그 돈으로 판박이를 붙일 수 있는 '덴버 껌'도 사 먹을 수 있었다.



왼쪽 검지에 애지중지 반지를 끼우고 다닌 지 며칠. 아빠 차를 탔을 때 나는 반지를 빼서 뒷좌석 문 손잡이에 넣어두고 잠이 들었다. 자동차는 집에 도착했고 아직 잠이 덜 깬 나는 비몽사몽 부모님을 따라 집으로 올라갔다. 잠이 온전히 다 깨고 나서야 검지에 끼워둔 반지가 보이지 않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라도 반지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과 고뇌속에 빠져들었다가 자동차 손잡이 생각이 났다.



제발 거기에만 있었으면...



나는 아빠에게 내려가서 자동차 한 번만 열어서 확인해보자고 떼를 썼다. 아무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장거리 운전으로 아빠는 많이 피곤하신 상태였던 것 같다. 



아빠 지금 너무 피곤하니까
나중에 하자, 나중에...



아마 자동차 손잡이에 확실히 반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는 기다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 그래도 반지가 없어서 걱정인데 혹시라도 자동차를 확인했을 때도 없다면 그것은 내게 절망으로 느껴졌던 나는 기다릴 수 없었다.



조용히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척을 하며 딴청을 피우던 나는 아빠가 주무시는 것을 확인했다. 마치 007 작전의 요원이라도 된 것처럼 아빠가 머리맡에 놓으신 자동차 열쇠를 챙겼다. 열쇠가 잘그락 거리지 않게 작은 손으로 단단하게 열쇠 꾸러미를 쥐는 치밀함을 보였다. 





갑자기 바깥에 나가겠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 것 같아서 엄마에게 거짓말을 했다.



엄마~! 베란다 창문에서 보니까
민수가 잠깐 부르는 것 같아요.
좀 나갔다 올게요~!



아파트 2층에 살았던 나는 한걸음에 계단을 내달려 자동차 문을 열었다. 정말 감사하게도 뒷좌석문 손잡이에 내 반지가 있었다. 그 때 반지를 향한 내 열망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과 비슷했으리라.

저녁식사시간 아빠는 내 손가락에 끼워진 반지를 보신 아빠는 그 반지는 어디서 난 것인지 물어보셨다.



유화) 아, 이거는 아까 민수가 줬어요.

아빠) 그래? 밥 다 먹었으면 반지 찾으러 가자.


유화) 찾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아빠) 아니야 신발 신어 확인하러 가자.



기류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이내 나는 아빠를 따라나섰고 나는 자동차에 도착했다. 자동차에 도착했지만 반지는 당연히 없었다 이미 내가 손에 끼고 있었으니까.



유화) 아무래도 다른 곳에서 잃어버렸나 봐요.

아빠) 그 반지 정말 아까 민수가 준게 맞니?


유화) 네 맞아요!

아빠) 그러면 올라가서 민수에게 전화해 봐야겠다.



엄한 표정의 아빠 얼굴을 보자 망했구나 싶었다.



유화) 아버지 죄송해요. 거짓말 했어요.

아빠) 집에 올라가 있어라.



아무래도 혼날 것 같을 때면 매번 아빠라는 호칭은 아버지로 바뀌었다. 아빠를 마주하는 것이 어려워진 마음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미 내가 친구 핑계를 대고 내려갔을 때 엄마는 내가 주차장에서 자동차 문을 여는 것을 베란다 창을 통해 보셨다고 한다.

한참을 있어도 아빠가 오시지 않아서 마음을 졸이고 있었을 때 아빠는 어디서 회초리로 쓸 나뭇가지를 대여섯 개 꺾어 오셨다.

대부분의 나뭇가지는 훈계하시면서 방바닥을 내려치실 때 부러져나갔다. 이대로 모두 부러졌으면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마지막 나뭇가지 하나가 남았을 때 아빠는 말씀하셨다.



종아리 걷어라.




한대를 맞고 잘못했어요 빌고, 두 대를 맞고 잘못했어요라고 또 빌었다. 그리고 셋, 넷, 다섯 대를 내리 맞았다. 처음 맞아본 종아리는 너무 아팠고 눈물이 줄줄 나왔다.



어릴 적부터 엄마가 강조하셨던 세 가지.

정직해라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알아라

감사해라



그중 첫 번째였던 정직함을 어긴 대가는 아버지를 통해 집행되었다.

잠들기 전, 엄마는 종아리에 후시딘을 발라주시면서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부르고 그 거짓말은 결코 나를 놓아주지 않는 다는 것을 알려주시려고 아빠가 엄하게 혼내신 것이라며 나를 위로해주셨다.



지금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이 사건이 내가 거짓말을 뉘우치는 시간이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고작 뽑기에서 나온 반지 하나도 그 시절 나에게는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없어진 것만으로도 얼마나 걱정되고 슬퍼서 발을 동동 굴렀는지 말이다.



아빠, 많이 피곤하시겠지만

저는 지금 정말 마음이 어려워요.

자동차에 반지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 마음의 무거움을 덜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번같이 가주시면 안 될까요?



내가 만일 이렇게 아빠에게 여쭤봤다면 아빠는 피곤을 무릅쓰고라도 나를 데리고 함께 자동차를 확인하러 가셨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는 대신 떼를 쓰는 것이 전부였고, 아빠도 이런 내 속마음을 모르셨다. 



내 아이들도 자랄 것이다.

소중히 여기는 장난감도 있을 것이며,

나처럼 언젠가 거짓말도 해서 혼도 나겠지.

그때가 되면 기억해 내자.


징징거리고 떼를 쓰는 것으로 밖에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던 그 시절의 나를, 

조리 있는 말이 아닐지라도

아이들의 작은 고백들 속에 담긴

그 마음을 알아주는 아빠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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