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친구는 무전여행

by 마리혜

낯선 남자 사람하고 식당에서 단둘이 밥을 먹었다. 밥을 먹으면서 나눈 이야기 중에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

"그 정도면 졸혼해야지."

"아직도 잔소리하면 다시 생각해야지."

남편 친구와 점심 식사하면서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흥분하면서 했던 말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결혼 적령기의 아들은 대학 졸업하고 엄마 잔소리를 피해 베트남으로 취업 나가서 몇 년을 보내고 왔다. 넓은 아파트에 남아도는 방을 두고 지긋지긋한 잔소리를 피해 다시 독립해서 살고 있다.

심지어 아버지도 이제는 이혼하시라고 적극 권유할 정도라고 하니, 나이 칠십에 도대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린가. 친구인 나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친구는 아들의 결혼 문제에 심한 갈등이 있다고 했다. 며느릿감이 국적이 다르고 피부색도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물론 부모로서 덥석 허락하기에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이해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들은 사랑이 확고했다. 그렇다면 부모라도 막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였다.


마음을 내려놓고 아이들의 사랑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겠다고 했다. 지난 1월 부부 동반 고향 친구 모임에서 했던 말이었다. 내심 어려운 결심을 해준 친구에게 박수를 보냈다. 또 조만간 좋은 소식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있던 참이었다.


매년 정기 모임에 만나면 서로 농담 삼아 건네는 남편에 대한 불만은 재미 삼아 늘 있었다. 그때마다 마무리는 주로 그녀의 역성을 들어주며 기분 좋게 끝났다. 그는 그런 여자들의 말속에 끼어들어 변명하는 일도 없었다. 그저 한편에서 묵묵하게 막걸리를 들이켜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그 표정의 의미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러나 이렇게 갈등이 깊을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사업이 번창하던 10여 년 전에는 이혼을 생각할 정도의 갈등이나 지나친 잔소리는 없었다고 했다. 그럴만한 것이 내 생활 방식에 비교하면 가당치도 않은 일들을, 그녀가 요청하면 대부분 들어주며 살았던 거다.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돈을 끌어모을 정도로 풍족하던 생활이 그녀의 사고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내가 생각하던 친구가 아니었다. 한심했다. 누구도 책임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었다.


아들의 결혼 소식은 없는지 넌지시 물어보았다. 아직 계획이 없다는 말로 더 이상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기어코 아들 결혼마저 무산된 것 같다. 나는 서슴없이 쏟아냈다.


복에 겨워 자기 분수도 모르고 남편을 볶는 철없는 아내라고 했다. 남편 사업이 잘될 때 왕비처럼 호사 누리더니, 남편 병들고 힘이 없어지니 귀한 줄 모르고 잔소리하는 바보라고 했다.

내가 쏟아내는 자기 아내에 대한 원망을 말없이 듣고 있다. 황혼에 고독의 터널에 무참히 던져진 남자의 모습이 너무 슬퍼 보였다.


그는 10여 년 전, 27년 동안 탄탄하게 전문건설업을 영위해 오던 중 최대의 부도 위기를 맞았다. 정리하면서 가지고 있던 현금으로, 단 한 사람에게도 아픔을 주지 않았다고 했다. 잘 나가던 사업이 한순간 정리가 되고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한 채가 유일하게 남겨져 있다고 한다.


남아 있는 아파트를 팔면 아내가 먹고 살기에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을 거라고 한다. 고스란히 아내에게 돌려주고, 본인은 연금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연금마저도 시간이 지나면 아내의 몫이 아닌가.

살다 보면 마음이 안 맞아서 안 살고 싶을 때가 고비마다 있다. 윗대부터 그럴 때마다 못 살겠다고 갈라서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서로 맞춰서 완성해 가는 것이 또 우리 삶이 아닌가.


내 친구 그녀가 야속하다. 친구보다 아내 친구가 더 편하다고 처음으로 속내를 드러내 보이며 쓸쓸히 미소를 짓는다. 다음의 행선지는 전라도 땅끝 마을 그 어디쯤이라고 한다.


남편 친구이자 내 친구의 남편은 지금 암 투병 중이며, 자동차에 몇 가지 캠핑 도구 장착하고 기약 없이 홀로 무전여행 중이다.



<마리혜의 출간 도서>

내 나이 예순, 성덕이 되었습니다 | 마리혜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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