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렇게 도망치듯 또 쫓겨났다

by 마리혜

"쓴 나물이 지금이 너무 맛있다."

"아주 조금 딱한 번 먹을 양인데 가지러 올래?"


냉큼 달려가니 우리 어머니께서 늦은 점심을 드시는 중이었다. 참 맛있다는 쓴 나물을 아들 입에 넣어 주고 싶으셨는지 작은 통에 가지런히 담아 놓으셨다. 정말 아주 작은 양이었다. 하지만 쓰지 않았다. 쓴나물에 담긴 사랑은 달달하고 고소하면서 풍성했다.


밀가루 돌돌 묻혀 쪄서 간장 무치신 쪽파 반찬 한 가지를 덤으로 챙겨 주신다. 매번 이것저것 완성된 반찬으로 챙겨주시니 예순 넘은 며느리는 넙죽 받아서도 철들 생각을 못하고 있다.


동그랗고 작은 밥상에, 달랑 쓴 나물과 뭇국. 그리고 밥 한 그릇. 소박한 밥상은 미수인 우리 어머니를 지금까지 지켜주는 건강 밥상이다. 밥상 크기가 아니라 뭐든 맛있게 드시는 밥심이 아닌가 싶다. 밥이 보약이라 했듯이. 자식이 힘들지 않게 아프지 않아야 한다며 잘 드시니 감사할 뿐이다.


거실 한편에는 다듬으시다 남은 쪽파가 한 무더기가 수북이 놓여있다. 노인 일자리 가시려고 다듬다 남은 쪽파 밑이 뽀송하게 마른 채로 누워있었다. 개수대에는 몇 개 되지 않은 큼직큼직한 그릇들도 쌓여있었다.


한 바퀴 둘러보는 뒤통수에다 손대지 말라는 말씀부터 냅다 던지신다. 아랑곳하지 않고 식사하시는 동안 팔을 걷어붙인다. 곁에 앉아서 마른 쪽파를 다듬어도 이젠 극구 말리지 않으신다.


우리 어머니는 그리운 나의 엄마와 함께한 시간보다 더 많은 날을 보냈다. 당시엔 적지 않은 나이에 시부모 모시겠다고 자청했으면서 시금치 반찬도 못 만지는 말도 안 되는 며느리였다. 그러니 시어머니 환갑잔치엔 며느리한테 미역국도 제대로 못 얻어먹겠다고 시누이 눈총 받을 만했었다.


어머니 닮아 얼음 알같이 살림꾼들인 손 아래 두 시누이가 어머니보다 더 눈치 보였었다. 사실은. 늘 얼음공주 같았던 우리 어머니에게 한 때는 애증으로 보낸 날들도 많았었다. 그러나 어느새 흘러간 나이는 그때의 어머니 나이가 훌쩍 넘어버렸고, 이제는 어머니를 애잔하게 바라보며 이해하는 친구처럼 되었다.


"아이고, 아이고."

연신 신음을 내시면서 며느리 만났겠다 어제 오늘 일들을 술술 풀어놓으신다. 지난밤에는 시누이 줄 쪽파를 새벽 1시 30분까지 다듬느라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다고 하신다. 그것도 식당 하는 시누이 친구에게 주고 싶으셨던 거다. 노인 일자리 가서도 눕고 싶으신데 참고 버티다가 오셨다고 한다.


"그냥 바로 뽑아 주셔도 정말 고마워할 텐데, 이 많은 양을 힘들게 다 다듬어서 주시려고 그카시네?"

"에구, 우리 어머니 땜에 나 못살아."

"야야. 그릇은 그냥 다 놔두고 가거라.

"너하고 이야기하느라 내 일도 못하고 있다. 얼른 집에 가거라."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 정치, 산불, 연예인 이야기할 것 없이 두루 섭렵하신 어머니는 며느리만 만나면 이야기보따리가 저절로 풀린다. 다 풀어놓으시고는 당신 일거리 손댈까 싶어 쫓아내신다. 그렇게 도망치듯 쫓겨난다.


우리 어머니의 그 성품은 아무도 못 말린다. 당신 몸을 갈아서도 그렇게 하고 싶으시니 어떻게 말릴까.


텃밭 일도 당신이 그린 그림으로 그려나가고 싶어 하신다. 필요하실 때 언제든 말씀하시라고 해도 안 들으신다. 그러나 이젠 연세가 있으셔서, 꼿꼿하시던 분이 서서히 도움 요청하는 횟수가 늘어난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 마음이 아려온다. 장독대 된장 한 움큼 뜨면서 우리 어머니의 된장 맛을 그리워하게 되는 날이 올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이제까지 어머니 된장에 길든 나는 된장 담그는 것을 배우고 싶지 않다. 이기적이게 오래도록 우리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는 된장을 즐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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