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삶의 실험, 그는 수행자였을까?

『월든』헨리 데이빗 소로우

by 마리혜

헨리 데이빗 소로우!

1945년 소로우가 월든 호수의 숲에 들어와 2년 동안 원시인처럼 생활했던 소박한 삶은, 짧지만, 그가 던진 메시지는 강력했다. 그곳에서 손수 통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밭을 일구었다.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고,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며 보냈던 원시적인 생활은 인습에 구애받지 않는 새로운 삶의 실험이었다.


호숫가의 숲에서 2년 이상 사는 동안, 측량 일이나 목수로 생계를 유지하고 글을 쓰면서,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할 기회를 가졌다. 200년 가까이 지나도록 불후의 고전 명작이 된 『월든』을 집필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로 봐서는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면 마음먹기에 따라 미래 성공 가도는 이미 보장된 학벌이 아닌가. 그럼에도 부와 명성을 좇는 안정된 직업과 문명의 모든 편리함을 내려놓고 숲속에서 원시생활을 자처한 모습은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시대라면 좋은 대학을 나왔음에도, 문명을 등지고 자연으로 들어가 원시생활을 실험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은퇴자가 아니라면, 20대 젊은 나이에 수행자처럼 자연의 삶을 살기 위해 용단을 내리기는 쉽지 않다.


소로우는 자연과 한 몸이 되어 마치 개척자가 된 듯한 삶에 만족감을 느끼고 있다. 그 모습을 보면 몸이 필요로 하여 자연에서 그러한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될 특별한 에너지가 발동했을 것 같다.


불교에서 말하는 전생에 수행자가 아니었을까. 나 또한 불자로서 처음 책을 펼쳐 들었을 땐, 무슨 이유였을까 하는 궁금증에 읽을수록 흥미롭게 빠져들었다. 법정 스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까지 『월든』을 손에서 놓지 않으셨다고 하니 의미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람들은 그릇된 생각 때문에 고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육신을 조만간에 땅에 묻혀 퇴비로 변한다. 사람들은 흔히 필요성이라고 불리는 거짓 운명의 말을 듣고는 한 옛날 책의 말처럼 좀이 파먹고 녹이 슬며 도둑이 들어와서 훔쳐 갈 재물을 모으느라고 정신이 없다. 그러나 인생이 끝날 무렵이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만 이것은 어리석은 인생이다.”p19」


이 글을 읽고 소름이 끼쳤다. 불교적인 문장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소로우가 전생에 수행자가 아니었겠느냐고 생각했던 대목이다. 아니면 불교사상을 심취해 다년간 공부했거나 독서를 통해서 불교적이고 실험적인 삶을 살고자 실행에 옮겼을 거란 생각도 하게 되었다.


공수래공수거 空手來空手去. 인간은 이 세상에 잠시 들리러 왔을 뿐, 내 것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빈손으로 왔듯이 갈 때도 빈손으로 간다. 그러므로 재물에 지나친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음을 잘 말해주는 말이다.


소로우는 간소화하고 간소화하라고, 하루에 세 끼를 먹는 대신 필요할 때 한 끼만 먹으라고 외친다. p141

이처럼 욕심은 알맞게 취하되 무엇을 가지고자 하는 것을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가 추구할 그 무엇을 찾으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처럼 세속의 조건을 내려놓고 자연에 들어가 자신의 삶을 실험했던 소로우의 모습은, 불교 『금강경』의 한 구절인 ‘應無所住 而生其心(응무소주 이생기심)’을 떠올리게 했다. 어디에도 집착하지 않으면서도 참된 마음을 일으키는 삶. 그는 문명의 편리함에 머물지 않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삶의 본질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허위의 인간 사회여,

세속적인 명성을 찾기에 바빠

천상의 뭇 즐거움은 공중에 흩어지는구나." p58


소로우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을 직면해 보고, 인생을 가르치는 바를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마치 수행자인 듯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겨우 28세에 불과한데 말이다.


『월든』을 읽으면서도 줄 곳 느껴왔던 점은 소로우의 불교적 관점으로 느끼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소로우에 대한 공감대가 더 컸던 것 같다. 그리고 읽는 내내 행복했다.


나도 가끔. 훌쩍 떠나 파도가 물결치는 고향 동해 한적한 곳에서 한 달 만이라도 책 읽고 글쓰기만 하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부모님이나 가족을 떠나본 적이 없어서, 사실은 자리 깔아줘도 용기를 못 내고 있다. 매번 상상으로 그치고 만다.


20대 어느 한때는 출가하고 싶은 마음도 살짝 가진 적도 있었지만, 그 인연은 아니었던 것 같다. 고독과 외로움의 고통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갈 용기가 없었던 것 같다. 지금 이대로 만족하니 다행이다 싶다.


아, 소로우!

소로우의 자연묘사는 놀라움을 금치 못 하겠다. 계절이 바뀌면서 변화하는 월든 호수와 주위의 숲과 그 속에 사는 온갖 동물과 식물들의 모습. 그 모두는 소로우의 펜 끝으로 그려져 그야말로 책 속에 영원히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월든>- 헨리 데이빗 소로우 저.


“호수는 하나의 경관 속에서 가장 아름답고 표정이 풍부한 지형이다. 그것은 대지의 눈이다. 그 눈을 들여다보면서 사람은 자기 본성의 깊이를 잰다. 호숫가를 따라 자라는 나무들은 눈의 가장자리에 난 가냘픈 속눈썹이여, 그 주위에 있는 우거진 숲과 낭떠러지 들은 굵직한 눈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p280

“노 櫓가 움직일 때마다 또 벌레가 움직일 때마다 빛이 반짝인다. 그리고 노 櫓가 물을 칠 때 생기는 메아리는 얼마나 듣기 좋은가! p283


얼마나 순수한 마음이어야 이런 표현들이 가능할까. 마치 한강 작가의 『여수의 사랑』에서 보았던 화려한 문체를 만난 느낌이 들었다. 호숫가의 가장자리를 장식한 돌들마저도 보석으로 표현한 소로우처럼 아름답고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싶다. 아울러 그렇게 반짝이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자연을 놓아두고 천국을 이야기하다니! 그것은 지구를 모독하는 짓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숲, 독서, 고독, 마을, 호수, 되강오리, 호수 주정꾼 개구리들, 콩밭 망쳐놓은 우두척등 동물 이야기, 어느 것 하나 섬세하게 반짝이는 천재적인 아름다운 문장들을 이 글에 다 쏟아 놓을 수 없어 안타까울 정도이다.


소로우는 말한다. 인간은 한평생을 다 살아낸 사람이 없다고. 우리는 자신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며, 인생의 절반을 깊은 잠 속에서 보낸다. 그가 말한 "태양은 단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문장은, 우리가 맞이하는 매일의 아침이 진짜 ‘깨어남’은 아님을 일깨운다.


인간은 행동의 동기를 자신의 내부에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연의 하루는 매우 평온한 것이며 인간의 게으름을 꾸짖지 않는다고 조용히 타이른다. 마지막 장을 덮으며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안 되겠다 생각하게 되었다.


참된 아침은 내면에서 빛이 떠오를 때 비로소 시작된다. 나는 오늘, 『월든』을 통해 오래도록 잠들어 있던 내 마음 한 자락을 살며시 깨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정말 깨어 있는가.



내 나이 예순, 성덕이 되었습니다 마리혜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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