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도 아빠 마음 알까?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고 하는데 내 새끼 예쁜 것이야 오죽할까. 실제로 큰딸은 엄마인 내가 봐도 그만하면 괜찮은 편이다.
갓 태어났을 땐, 아기가 눈이 크고 쌍꺼풀이 있어서 참 신기하고 예뻤다. 눈을 들여다보면 새카만 눈동자가 마치 그믐날 호수에 뜬 달 같았다. 그래서 아기를 안고 눈을 맞추고 있을 때 가장 즐겁고 행복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딸의 눈이 여전히 초롱초롱하고 선명해서 퍽 매력 있다.
"어쩌면 이렇게 생겼을까."
"내게 어떻게 이렇게 예쁜 아기가 왔지?"
쌍꺼풀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허공을 향해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입을 오므렸다 폈다 하는 모습을 보면 심장이 오그라들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입을 오물거릴 때, 손가락으로 볼을 톡 하고 대면 기지개를 켜듯 배를 불쑥 들었다 놓기도 한다.
모유 수유 한 덕에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살이 올라 통통했다. 또 어찌나 순둥순둥한지 수유하면 서너 시간은 거뜬하게 잤다. 아기가 자는 동안 밀린 일거리를 서둘러 하고 나면 충분히 쉴 수 있었다.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아서 아기를 거저 키우는 것 같았다. 그러니 그것만으로도 예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예쁘기만 했던 큰딸이 18개월 되던 해에 여동생을 보았다. 생후 18개월이면 아직 아기인데 어쩔 수 없이 언니라는 무게감을 실리게 했다. 그러다 보니 두 딸을 키울 때 부모로서 사랑을 공평하게 나누었다고 해도 아이들은 어땠을까 싶다. 엄마의 사랑이 더러 부족했을 텐데 내색하지 않았다. 가끔 어른이 된 딸들이 말없이 지내온 그 시간이 궁금할 때가 있다.
크면서는 유난히 피부가 희고 뽀얀 연년생 동생보다 조금 미치지 못한 큰딸은 피부 색깔로 미모가 좀 밀리긴 했다. 하지만 데리고 나가면 동네 사람들이 눈이 초롱초롱하고 예쁘다고 한마디 하면 나는 영락없이 팔불출이 되었다. 남은 없는 아이를 나만 키우는 것처럼 덜렁대며 좋아했던 것 같다.
남편은, 우리의 첫 선물이기도 했지만, 쌍꺼풀진 큰 눈이 자신을 닮았다고 해서 큰 딸에게 각별하게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딸들에게 향한 사랑은 무조건이었다. 작은 딸에게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작은 딸은 말수가 적은 편에 비해 털털한 큰딸과 대체로 잘 통하는 편이었다.
그러던 딸이 출가하고 예쁜 손자들까지 안겨주었으니, 할아버지가 된 남편은 손자가 올 때쯤이면 며칠 전부터 들떠 있는 모습이 역력했다. 손주 자랑은 돈 주고 하라고 한다. 돈 주고라도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입이 근질거렸다. 아무리 개구쟁이라도 이쁘지 않은 구석이 하나도 없다. 우는 모습조차 예쁘니 팔불출처럼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자랑하게 된다.
손주들이 오는 날이 가까워지면 하루 전부터 남편과 나는 손주들 맞이할 준비를 한다. 대청소하고 아이들이 쓸 용품 챙겨놓고 먹을 반찬도 미리 만들어 놓는다. 어렸을 때부터 외갓집 추억을 심어주기 위해 정성을 다해 애쓰고 사명감처럼 하는 중이다.
그런 할아버지 마음을 알고 있는지 놀고 싶은 만큼 놀고도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 다가오면 가지 않겠다고 울고불고 난리이다. 더군다나 집에 가서도 몇 날 며칠을 울며 전화해서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다고 하니 어찌 이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무엇보다도 손자가 예쁘고 또 사위가 좋은 특별한 이유가 있다. 큰 딸이 결혼하기 전에 직장 생활을 무리 없이 잘하는 걸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말수가 줄고 자주 하던 전화 통화 중에도 전에 없이 톡톡 쏘아붙였다. 통화를 하다 보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말소리는 퉁명스럽게 오고 가고 이내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5분도 채 하지 못하는 통화도 수화기를 내려놓을 때는 대부분 서로 마음이 언짢게 끊는 날이 많았다. 그러기를 약 1년 동안 지속됐다. 어느 날 딸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통화할 때 웃는 횟수가 늘어나고 통화 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엄마, 사랑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알게 된 사실이지만 우리 큰딸이 사랑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딸은 결혼하게 되었다. 그렇게 사위는 우리에게 더없이 귀한 선물이었다. 지금도 딸보다 사위가 좋은 이유는 사랑으로 딸을 변화시킨 그 힘이 무엇보다 든든했고 믿음직스럽기 때문이다.
눈물이 많은 남편은 딸들에게 사랑이 각별하다. 먼저 결혼한 작은딸의 결혼식에서도 아쉬움을 참지 못하고 오열했었다. 큰 딸 결혼식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눈물이 많은 나보다 더 눈물이 많은 남편 때문에 민망함에 어쩔 줄 몰라 옆에서 급하게 눈물을 짜내어 울어야 했었다.
그 후에도 가끔 한잔하면 술기운에 취해 딸 이야기 하면서 폭풍 눈물 흘리며 애틋할 때가 많았다. 보다 못한 연세 드신 지인께서 남편에게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딸이 잘살고 있는데 그렇게 쓸데없이 자꾸 울면 어떻게요. 그러면 자꾸 울 일이 생겨서 좋지 않다니까"
그 말이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신기하게도 그 후론 한 번도 운 적이 없었다. 자식 일이라면 끔찍이 여기는 남편이 행여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 충분히 알 것 같다. 내가 결혼하고 나의 아버지도 내가 자던 자리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고 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향하는 마음이 엄마처럼 섬세하지는 않아도 가슴속에 꾹 눌러앉아 있는 마음은 누구보다도 깊고 크다. 제때 재빨리 꺼내서 보여주고 표현하지 못해도 굵은 눈물방울에 아버지의 마음이 고스란히 다 담겨있다는 걸 나는 안다.
나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이가 들수록 말보다 눈물이 앞서는 남편의, 딸을 향하는 마음을 느낀다. 어른이 된 딸에게 다하지 못했던 사랑을 손주들에게 맘껏 쏟는 그 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딸도 아빠 마음 알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