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래피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된 지는 2년 전 8월쯤이었나 봅니다. 일면식도 없는 선생님과 인연은 네이버 검색창이었어요. 선생님이 쓰신 캘리 이미지들은 저의 눈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당시에는 캘리에 관심이 많아서 배우고 싶었어요.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어떤 선생님을 찾아가야 할까 고민하고 있던 참이었어요. 마침, 검색창에 뜬 많은 이미지 중에서 선생님의 글씨체가 특히 힘이 넘쳐서 좋았어요.
넘치는 힘에서 부드러운 여성스러움도 느끼게 되었고 다양하게 표현된 글씨체가 신기했어요. 왠지 끌렸어요. 망설임 없이 선생님과 약속하고 다음 날 충주로 달려갔습니다.
시내 주택가에 자리 잡은 공방에는 담벼락을 타고 올라가는 빨간 유홍초가 파란 숲으로 별처럼 쏟아지고 있어서 퍽 인상적이었어요. 대문을 들어서자 너른 마당에 심은 각종 야채도 쏙쏙 올라와 있었어요. 아기자기하고 깔끔해서 부지런한 손길이 느껴지니까 친근감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단아한 모습의 첫인상은 선생님의 나직하고 조용조용한 말씨가, 부드러운 문체에서 느꼈던 감정과 비슷했어요. 아름다운 글체에 매료된 참을 수없는 열정의 가벼움은 50분 거리의 캘리 수업을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불태울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을 만나서 인연을 맺고 싶었던 것은 그동안 생각해 왔던 작은 꿈을 이루려면 도움이 필요했었고, 무언가 해야 했습니다. 그냥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어느 것도 시도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평소에 시를 좋아했어요. 좋아한 것만큼 관심이 많아서 끄적이길 좋아했고요. 사실 작은 꿈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배워서 시작하기에는 너무 터무니없겠다 싶기도 했어요.
메모장에는 끄적인 고작 몇 편의 시가 전부였습니다. 마음 한편에는 지금 시작만 해도 절반의 성공을 이룬 것처럼 신나는 일이었어요.
캘리도 열심히 배우고 시와 글을 꾸준히 써서 시화집을 만들고 싶은 작은 꿈이 있어서 매일 신났어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으니까요.
시작하고 보니 과거에 열심히 배운 서예 기초만 믿고 달려들었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열정만 넘친 거지요. 책 낸다는 핑계로 연습도 안 하고, 지난주에 던져놓은 가방 그대로 덜렁거리고 갈 때도 많았어요.
지난 7월 전시회에는 선생님의 애간장을 참 많이 태웠어요. 몇 달 전부터 준비하고 연습해야 하는데 전혀 그러지 못했어요. 몸 하나도 지탱하기 어려워서 전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이 저에게는 고통으로 여겨졌으니까요.
함께 하는 작업이라서 빠질 수도, 나아갈 수 없이 무기력한 마음이 나 자신도 힘들게 했지만, 선생님을 무척 힘들게 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선생님의 도움으로 겨우 전시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며칠 전 선생님과 <평생교육원> 강의를 듣고 점심 식사 후에 카페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몰랐던 선생님의 고충을 잠깐 들을 수 있었어요.
나름대로 어려움이 있어서 한 사람 한 사람 사정은 있겠지만, 전시회를 치르려면 선생님은 20여 명 회원의 작품 구성하고 완성하도록 코칭 하시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고충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선생님으로서 교육 철학에 관한 깊은 고민을 어렵게 말씀하셨어요. 7월 초 전시회가 끝나고 지금까지, 제가 지난여름 동안 힘들었던 비슷한 상황을 선생님께서 겪고 계셨어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늘 웃는 표정과 나지막한 말씨에서 힘든 마음이 있다는 걸 느끼지 못했어요. 작은 몸에서 우울함과 무기력한 마음이 있다는 걸 미처 몰랐어요. 빙산의 꼭대기만 느꼈지, 빙산 아래에 있는 선생님의 힘듦을 눈치채지 못한 거예요.
우리가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 말하는 단어, 구, 문장은 의사소통 빙산이라 부르는 것의 꼭대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진화하는 언어> 밀리의 서재 p59
선생님의 마음을 꺼내놓고 조금 덜 힘들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약속했어요. 내년 전시회에는 선생님께서 신경 덜 쓰시게 해드려야겠다고요. 정신이 번쩍 듭니다.
미루기 좋아해서 눈에 보이지 않으면 약속을 또 지키지 못할 수도 있어서 붓과 벼루, 화선지를 눈에 보이는 곳. 손이 닿는 곳에 놓았습니다. 내년 전시회는 조금 더 나아져야겠지요.
잠시 머문 마음이 작은 울림으로 남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