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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May 01. 2024

뭘 그렇게 찾고, 의미를 갖다 붙여... 그냥 살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Yes, I can't.


    '사람은 듣고 싶은 말을 하고, 읽고 싶은 글을 쓴다'


    충격적이었다. 이 말을 처음 봤을 때, 아니 들었을 때인가? 하여튼 '네, 맞습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는 대답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쓰지 않았다, 쓰지 못했다, 쓸 수 없었다! 그렇게 두문불출했다. 결론이 나지 않은 마음상태 때문에 겸손해졌다. 존댓말로 일기를 썼다. 되도록 의견을 붙이지 않았다. 사실 그대로, 최대한 솔직히, 속마음 그대로 표현하려고 애썼다.


    매일매일이 반짝이던 날들이 빛을 잃은 느낌이었다. 생각을, 아니 망상일까, 어쨌든 날마다 펼쳐지던 내 이야기들은 '이게 읽고 싶어 하는 것인가? 듣고 싶었던 말인가?'라는 족쇄가 채워졌다. 자화자찬? 자기 위로? 그래 딱 그 정도였다. 다른 글들로 눈길을 돌렸다. 특히 '작가소개'를 많이 봤다. 솔직히 '이 분들은 소개 글이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알고 쓴 건가?'라는 불순한 의도가 앞섰다. 나만 괴로울 수 없다는 물귀신 같은 악의였다.


    음악을 들었다. 어느새 새로운 음악은 도통 들을 수 없고, 추억으로 포장되야만 들을 수 있는 귀가 되어있었다. '받아들임?' 칫 개뿔! 난 그런 종자가 아니었다. 꽉 막힌 꼰대가 더 어울렸다. 괜히 겉멋 들어서 깨어있는 척했다. 맞다. 그랬다. 겉으론 '다름'을 인정했다. 하지만 시간을 투자하고 공을 들여야만 했다. '민희진 사태'를 보면서 처음 딱 든 속마음은 '싫다 틀렸다'였다. '훗, 내(네)가 뭔데 싫다 좋다 옳다 그르다를 판단해?'


    듣고 본 것, 이미 발생한 사건을 판단하겠다는 마음은 오만이다. 쓰기 시작하면서 이 '오만'이라는 단어를 참 많이 썼다(use). '나(너) 오만이라는 단어의 뜻은 제대로 알고 쓰나?'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든 단어들에 의심이 들었다. '나(너) 뭘 알고 쓰고 있는 거니?' 어... 어...


 "나(너) 앞으로 쓰지 마! 말도 하지 마!"


No, I can.


    팝송을 좋아했다. 3세계 음악을 좋아했다. 물론 못 알아 들었다. 하지만 새로운 창법, 화성, 진행이 좋았다. 길게, 혹은 짧게, 역사가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오래 묵은 음악을 새롭다고 좋아했다. 그리고 찾아들었다. 고등학교 때 가장 좋아하는 가수가 'Faye Wong (왕비, 왕정문)'이었는데, 그야말로 중국어로 솰라솰라하는 노래가 뭐가 그렇게 좋았는지... 그녀의 노래를 들으며 행복해하고 있으면 친구들은 이상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운전하면서 듣는 플레이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그녀의 노래를 동승자가 무심결에 들으면,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다. 짓궂은 이는 놀리기도 했다. '쟤 이상한 중국 노래 듣고 다닌데요...' 하면서 동네방네 소문을 냈다. 그때의 나는 '네 맞아요' 당당하게 말하면 될 것을, '아니요, 그냥 틀다 보니... 그런 노래 듣는 사람이 아니에요'라며 발을 뺐다. 행복하게 듣던 노래에 다른 의미를 갖다 붙이니 창피하고 부끄러운 것이 되었다.


    작가소개를 보고 있으면, 혹은 글쓰기 강의하시는 분들의 글이나 콘텐츠를 보고 있으면, 글을 쓰며 '인생의 의미를 찾겠다', '진정한 나를 찾겠다', '잃어버린 나를 찾겠다',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겠다' 등등 뭘 그렇게 찾고, 의미를 부여하겠다고 내세운다. 물론 나도 포함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진짜?'


하하하 너무 건방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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