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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May 13. 2024

이 산이 아닌가벼

2024년 05월 둘째 주

이 산이 아닌가벼


    "여기서 좌회전! 여기 여기! 지금 바로 좌회전해서 들어가!"


 "네? 여기요? 여기? 지금? 지금요? 에잇!"


 "어! 여기가 아닌가? 다리 건너기 전에서 커브를 틀었어야 했나?"


 "네? 어... 어... 그래요? 그런데 여기선 어떻게 나가죠?"


 "좀 더 가보자... 뭐...! 급한 거 있나? 아니면 돌아가면 되지..."


    방금 전 식당에서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한 아버지는 '나를 따르라'을 외쳤다가... '이 산이 아닌가벼~'라고 외친 나폴레옹 같았습니다. 조수석에 앉아 대시보드에 발을 올리고, 미세먼지 주의보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창문을 끝까지 내려 창밖으로 한 팔까지 척 걸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기분 좋은 모습에 저는 운전에 집중하면서도 슬쩍 장단도 맞춰주고 있었습니다.


 "아부지 제발 노래는 부르지 마세요!"


    두통 때문에 소음에 민감했기 때문에 제발, 제발 노래만은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고, 엄마는 뒷좌석에서 그러지 좀 말라고... 계속 아버지에게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었습니다. 아휴 이런 두 분을 중재하는 일까지 해야만 하다 보니, 아~ 두통으로 바람 쐬러 왔다가 도리어 두통만 더해지고 있는 형국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누비고 다니던, 40년도 더 지난 시절 이야기에 취해 한 시간 넘게 횡설수설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고모리 저수지가 점점 다가오자 저수지 주변에 좋은 드라이브 코스가 생각났다면서 길잡이를 자처했습니다. 옆에서 자세까지 고쳐 앉고 좌회전할 위치를 알려주겠다며 기억을 더듬고 있었죠. 맞은편에서 오는 차를 신경 쓰면서 아버지가 주는 신호에 맞춰 좌회전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안 했다가는 운전도 제대로 못하는 머저리 취급을 당할 것 같았거든요. 저도 갑자기 자존심이 발동했습니다.


    뒤따라 오는 차들에게 방해되지 않게 적절항 타이밍에 아버지의 신호에 맞춰 좌회전을 딱 해서 들어갔습니다. 최소한 머저리 취급은 면하겠구나 안도하고 있는데... 음... 웬 식당 주차장이더군요. 게다가 들어가는 차와 나오는 차가 뒤엉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데 교통정리하는 사람도 하나 없더군요. 빈자리만 있으면 주차해 놓은 얌체차량까지 더해져 정말 묘기 대행진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후진으로 나가는 차, 아슬아슬하게 고급 외제차 긁지 않게 비켜가는 차, 운전석 너머로 무서워서 벌벌 떨고 있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보이는 초보운전 차... 저도 진땀, 식은땀, 온갖 땀을 다 빼고 있는데... 와~ 아버지...! 태연하게 콧노래를 부르며 손으로 장단까지 맞추고 있더군요. 그런 아버지를 보며 혹시나 사고 날까 봐 노심초사하며 신경을 곤두세운 엄마의 화난 목소리까지 더해져 안과 밖은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너 정말 대단하다. 나 같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한소리 했을낀데... 우째 그렇게 가만히 태연하게 있을 수가 있냐... 정말 대단하다..."


다행히 차를 돌릴만한 작은 여유가 생겼고, 주변 운전자들의 배려로 가까스로 차를 돌려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무사히 빠져나와 도로에 들어서자 엄마가 한 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이 정도면 고생한 아들한테 '내가 실수했다. 내 잘못이다.'라고 한마디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와~ 술이 전두엽의 '통제와 참고 견디는 기능'을 무력화한다는 말이 맞나 봅니다.


 "내가 내 아들 고생시키는 게... 그게 뭐가 잘못됐는데?"


    아~ 나폴레옹의 돌격 지시로 죽을힘을 다해 산 정상을 향해 돌격한 백만 대군이 '이 산이 아닌가벼'라는 한마디에 50만이 전사하고, 전열을 가다듬어 다시 돌격한 산 정상에서 '아까 그 산이 맞는가벼'라는 말에 나머지 50만이 복창이 터져 전사했다는 유머는 현실에도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 술기운 때문일 겁니다. 술기운으로 용감해져서 '돌격 앞으로'를 외쳤을 겁니다.


전두엽의 능력은 위대합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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