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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Jul 10. 2024

[소설] 석원과 상제의 어쩔 수 없는 이야기

어쩔 수 없이 프롤로그

어쩔 수 없이 무시할 수 없는 (Inescapable)


    밤 10시가 넘어가는 시간이면 하늘은 캄캄해야 했다. 하지만 불야성을 이룬 거리 때문에 하늘은 새카맣다기보다 부옇게 흐린 회색빛이었다. 아마도 하늘은 수많은 찬란한 별빛들을 그 안에 품고 보호하고 있으리라. 불야성의 땅 위에는 하늘의 별 대신에 눈에 안 띄려야 안 띨 수 없는 휘황찬란한 노래방 네온사인이 있었고, 바람이 빠졌다 찼다를 반복하며 요란하게 펄럭이는 호프집 입간판도 있었다. 그리고 중심가를 조금 벗어나면 주변에 전구를 박아 별보다 더 반짝이게 만든 빨간색 갈빗집 간판도 있었다.


    석원과 지훈은 거기서도 조금 더 벗어나, 소박하게 형광등으로 간판을 밝힌 작은 연탄구이집에서 2차를 달리고 있었다. 양철로 된 테이블이 6~7개 정도 놓인 이 작은 가게는, 밖에서 볼 때는 소박했지만, 그 안에 꾸역꾸역 모인 사람들과 불판의 열기로 봐서는 대박집임이 틀림없었다. 그곳에는 마치 덩굴처럼 얽히고설킨 이야기 꽃이 여기저기서 만개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웃음꽃을 피워내서 향기를 풍기는 곳도 있었고, 또 어떤 곳은 불판 위에 올려진 멜젓보다 쿰쿰한 냄새를 풍기며 속이 썩어가는 독초가 피어나는 곳도 있었다.


    석원과 지훈의 대화도 그 속에서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과장님, 정말 이게 말이 돼요? 새로 온 부장 그놈! 분명히 어제는 그동안 회의를 어떻게 진행해 왔는지는 모르지만, 자기는 다른 이들과는 다르다고, 아니 다르고 싶다면서... 뭐? 뭐라더라? '발전적인 회의문화를 지향하니, 그동안 잘 안된 것들, 혹은 weakness들을 agenda로 arrange 해서 앞으로 어떻게 follow-up 할지 develop해오라고?' 이런 븅~! 요상한 급여체 섞어 가면서, 되지도 않는 MZ인 척한다고 쇼하는 거... 과장님도 같이 보셨잖아요?"


    "어? 아~! 물론이지. 지훈 씨. 어! 어! 맞아 맞아. 부장님도 참 너무하셨지... 의욕만 너무 앞서셔서는... 그래 그걸 그렇게 그대로 이사님 방에 가지고 들어가셔서는 한바탕 깨지고 오셔서, 괜히 남한테 화풀이나 하시고 말이야..."


    주인장이 너무 바빠서 고기 타는지 봐줄 시간도 없어 보여서였는지, 아니면 험담을 하면서도 습관적으로 갖다 붙인 경어가 머쓱해져서였는지 알 수 없었지만, 연탄불 위에서 지글지글거리며 익다 못해 타고 있는 두꺼운 주먹고기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석원은 젓가락으로 고기를 뒤집었다. 그러면서 지훈의 말에 맞장구는 쳤지만, 사실 그의 시선은 마주 앉은 지훈의 등 뒤로 보이는 두 사람을 향해 있었다. 다행히 연기와 술기운에 가려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지훈은 조금 전 보다 다소 더 격해진 말투로 꼬부랑꼬부랑 말을 이어갔다.


    "아니 지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잖아~ 안 그래요? 거기다 템플릿도 없어서 다시 다 재구성하느라 날 밤새 가면서 해줬더니 뭐? 거기다 또 백데이터는 어떻고? 도대체 엑셀을 왜 쓰는 건데? 과장님! 글쎄 부장 놈이 기준자료로 쓰라고 준 엑셀 파일요... 글쎄 이 놈이 시트에 걸린 수식을 전부 지우고 복사하기로 숫자만 덮어썼는지, 막 무한 소수점에... 어떤 건 에러 나있고... 젠장! 이런 자료는 그 안에 숫자 조작해 놨을지 누가 아냐고요? 안 그래요? 그런 걸로 분석하면 AS-IS가 제대로 나오겠냐고요~ 그러니까 대번 이사님이 거짓말한다고 길길이 날뛰지. 그래놓고는... 아니! 지 잘못을 왜 엄한 내 탓을 하는 건데? 예? 과장님? 듣고 있는 거예요?"


    이제 갓 수습 딱지를 떼었지만, 마치 경력 10년이 넘는 석원의 대선배 같은 말을 내뱉고 있는 지훈의 등 뒤로 보이는 저 남자의 들썩이는 어깨에 석원의 시선이 멈춰 있었다. 석원의 귀에는 지훈의 말이 들리 않았다. 그래 그 남자는 분명히 울고 있었다. 그때 석원에게는 바로 앞에서 길길이 날뛰고 있는 지훈보다, 그 뒤에서 울먹이며 어버버 겨우 말을 잇고 있는 듯한 상제의 말이 더 선명하게 들렸다.


    "팀장님! 왜요? 왜 저는 안 되는 건데요? 네? 저도 좀 행복 지겠다는데... 왜 저는 안 되는 건데요? 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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