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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철없는박영감 Jul 24. 2024

[소설] 석원과 상제의 어쩔 수 없는 이야기

어쩔 수 없이 제4화 : 그에게서 듣는 그의 이야기 (3)

어쩔 수 없이 강요받는 (Be Forced To)


    그동안 현관문 거울 앞에서 의식처럼 스스로를 단속하고, 낯선 표정이 되어 밖으로 나설 때마다, 그가 불쌍해 미칠 지경이었다. 여태껏 그렇게 버텨온 정신력이 대단하다 싶으면서도, '언젠가 혹시나 자아를 상실하게 됐을 때,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과 걱정이 앞섰다. 그의 옷은 유독 헐렁하거나 입체적 구조의 디자인이 많았다. 그리고 항상 위아래 올블랙, 모자와 마스크는 필수였다.


    오버핏이 패션트렌드라지만 그의 옷은 어쩌면 최대한 외부의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고자 꽁꽁 싸맨 완충제가 아니었을까? 검은색이 아무리 시크해 보인다지만 그의 위아래 올블랙 코디는 본색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보호색이 아니었을까? 특히 팬데믹 이후 얼굴을 가리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지금, 마스크와 모자는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필수 외출 아이템이 되었다. 없을 땐 외출하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이런 측은지심이 한가득 차있는 마음에, 그가 부드럽게 달래는 목소리까지 더해지자 다시 아이처럼 꺼이꺼이 울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그에게 매달려 있다가 갑자기 머쓱해져 온다. 현타다.


 "어후~! 훌쩍! 훌쩍! 어후~ 내가 왜 이러냐? 늙었나? 늙으면 감수성이 예민해진다더니... 어후~ 부르르르"


입술을 떨며 분위기를 전환해 보지만,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 없는 건 매한가지다. 큭큭거리는 그의 소리만 들어도 어떤 표정일지 상상이 간다. 괜히 갑자기 뜬금없이 기합을 넣는다.


 "우와~! 어~후아!"


'큭큭큭' 배를 움켜잡고 소리 죽여 웃던 그가, 나의 기합소리에 박장대소를 하기 시작한다.


 "푸하하하! 푸하하하! 이 아저씨 왜 저래! 아휴~ 웃겨. 내가 못 산다~ 진짜. 내가 형 때문에 못살아. 푸하하하. 가서 세수나 하셔~"


 "에헴! 험, 험! 뭐... 그냥... 그게... 그럴 수도 있고... 그런 거지... 뭐... 에~잇!"


말도 제대로 못 끝내고 후다닥 도망치듯 욕실로 들어가 찬물에 세수를 하고 나오니, 그가 아이스크림을 건넨다. 비닐 포장을 벗겨 한 입 베어문다. 얼어버린 달콤함을 입안에서 살살 굴려 녹인다. 그러면서 괜히 멋쩍어 허세를 잔뜩 부린 헛기침을 해대며 그에게 말한다. 하지만 말의 맨 앞과 맨 끝만 큰소리가 클 뿐, 전체적으로는 목소리가 기어들어간다.


 "험! 험! 험! 무슨... 아이스크림 하나 사는 데...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러냐!? 그러니까 내가 걱정을 해? 안 해? 엉?"


 "뭐라고 하는 거야? 뭐라고? 헛기침 소리밖에 안들리거든?"


 "아니~ 사람이 말을 하면 집중해서 딱딱 알아들어야지... 내가 뭐... 외계어를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지... 한국말하는 건데... 엉?!"


 "아 네네~ 다 제 잘못입니다요~ 그래서 뭐라고?"


그때 그의 전화가 울린다.


 "여보세요? 네 과장님! 아니에요. 괜찮아요....... 형! 잠깐만... 나 중요한 통화라서... 이것 좀 먼저...... 네 여보세요? 네네 여상제입니다! 하하하 과장님 네~ 안녕하..."


 "아니! 아이스크림 사는 데 시간이 왜 이렇게 올래 걸리냐고 내가 걱정이 돼서 이렇게 묻고 있잖~. 저기 상제야~ 상제...! 어이 여상제 씨?"


말을 듣다 말고 전화를 받으며 방으로 들어가 버린 그... 그런 그의 등을 향해 던진 말들은 하나같이 지질 그 자체다. 하지만 괜찮다. 얼마나 그를 생각하고, 걱정하고, 사랑하는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던진 말들은 그가 못 들어도 괜찮고 안 알아줘도 괜찮다. 몇천 마디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리라. 계속 옆에 있어주겠다는 것이 내 진심이다. 살다 보면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꼭 올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다.


빨주노초파남보


    그의 첫 번째 사회관계적 의무였던 군대라는 시련은, 그의 인생에 문명충돌級 충격을 남기고 떠났다고 했다. 그가 자유를 박탈당하고 의무에 갇혀있던 시기는 공존과 공생의 방안을 모색한다며 외치던 '다양성과 공감'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탈 세계화, 탈 자유주의무역'의 태동과 함께 '신 냉전체제'의 기세가 한참 올라가던 때였다. 입대 전까지의 환경이 분광기로 빛을 세세하게 퍼트려 빨갛게, 노랗게, 혹은 파랗게... 비슷한 스펙트럼끼리 모아서 분류해 놓은 고요하고 정적인 무지개 같은 것이었다면, 입대 후, 정확히는 전역 후에는 흩어졌던 빛을 집광기로 한데 모아 퀀텀점프라도 하려는 듯 에너지를 축적해 폭발시키는 역동적 분위기였다.


    그가 갇혀있던 그 안에도 그런 여파 때문인지 차별과 혐오에 많은 것이 집어삼켜져 있었다고 했다. 새로운 환경 속의 사람들은 정말 천차만별이었다고 했다. 신병교육대까지 몰랐었는데, 자대배치를 받고 나서 확 와닿았다고 했다. 사실 신병교육대에서도 수료식에 찾아온 악마조교가 사실 그의 중학교 후배였다고 커밍아웃하는 바람에 한 차례 큰 충격을 받았었다고 했다. 하지만 자대배치 후 받은 충격에 비하면 새발의 피였다고 했다.


    계급이 깡패인 새로운 룰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고 했다. 아무리 억지스럽고 불합리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막내라서, 쫄따구니까...'라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군대의 낭만'이라는 이유로 다수는 침묵했고, '군기확립'이라는 정의를 앞세운 그들의 지시를 이행할 것을 강요받았다고 했다. 특히 그가 막 자대배치를 받고 왔을 때, 병장 진급을 바라보고 있던 Y 상병은 매우 악질이었는데, 조폭 같은 외모에 다부진 체격, 경상도 사투리가 특히 심했다고 했다. Y는 대학진학은 하지 않고 소방인지, 경찰인지, 뭔가 몸을 많이 쓰는 직렬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다가 입대했는데, 그래서인지 나이도 많았다고 했다.


    같이 배치받은 동기 X와 그는 매일 점호가 끝난 뒤 Y에게 불려 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당하기 십상이었다고 했다. Y 상병은 전라도가 고향인 그를 특히 싫어했는데, 공무원 시험에 수차례 낙방하며 공무원 가산점을 역차별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했다. 아마도 그 반발심이 지역감정으로 표출된 것 같다고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Y가 그에게 던진 첫 질문이 '5.18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였는데, 그때 그가 공산당이 자아비판하듯 대답했었다면 군생활이 좀 편지지 않았을까 싶다고도 했다.


    지금도 그는 Y의 말투가 생각나는데, 심한 경상도 사투리를 태어나서 처음 들었던 그는, 마치 중국의 성조를 듣는 듯했다고 했다. 그래서 Y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했다. 그것 때문에 가혹행위가 더 심해지기도 했다고... 그렇게 지옥 같은 나날이 이어지던 가운데, 그날은 새벽 불침번을 서는 날이었다고 했다. 교대자가 그를 흔들어 깨웠는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이었다고 했다. 그는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군장을 챙겨 나왔다고 했다. 그런데 교대자가 보일러실에는 절대 가지 말라고 주의시키더란다.


    그는 알겠다고 하고 불침번을 서기 시작했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가만히 주의를 기울이니 그 소리가 나는 곳이 보일러실 쪽이었다고 했다. 그는 잔뜩 겁에 질렸었다고 했다. 보일러실은, 몇 해전 자대배치받은 지 얼마 안 된 신병이 자살을 했던 장소로, 소등 후에는 반드시 관건 되었다고 했다. 특히나 신병들에게는 절대 출입이 금지된 장소이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소리는 점점 노골적으로 변했고, 점점 선명해졌다고 했다.


 '귀... 귀... 귀신? 그래서 주의를 줬던 건가?'


    가볼까 말까, 누구를 깨울까 말까, 당직사관에게 보고를 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다고 했다. 하지만 새벽에 사람들을 잘못 깨웠다가는 민폐일 것이 분명했고, 만약 아무 일도 아니라면 지금보다 더한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그는 혼자 보일러실에 조심조심 다가갔다고 했다. 보일러실이 가까워질수록 소리는 누군가 흐느끼는 듯한 소리같기도, 야릇한 교성 같기도, 하나가 아닌 둘이 섞여 동시에 나는 것 같기도 했다고 했다. 그렇게 잔뜩 긴장한 채로 보일러실에 도착했는데, 문에 관건장치가 풀려있었다고 했다.


    '삐그덕~'


그는 용기를 내어 그 절대 출입 금지 구역의 문을 살며시 열었다고 했다. 보일러 돌아가는 낮은 기계음이 더해져 소리가 좀 묻히기는 했지만 출처는 분명해졌다. 그는 보일러실로 조심히 발을 내디뎠다고 했다. 비상구 초록 불빛이 비추던 그날 보일러실의 내부는 지금도 또렷이 생각난다고 했다. 귀가 울릴 정도로 '웅'소리를 내는 회색빛의 육중한 보일러에서 뻗어 나온 빨갛고, 노랗고, 파란 배관들이 어지럽게 벽을 따라 얽혀있었고, 그 뒤로 제일 안쪽에 문이 하나 더 있었다고 했다.


    문에는 불투명한 유리창이 하나 나있었는데, 그 창을 통해 그는 분명히 커다랗고 시커먼 실루엣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너무 놀란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후다닥 보일러실을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문을 잠가버렸다고 했다. 너무 무서워서 '시간아 제발 빨리 가라! 제발~!'를 되뇌며 할렐루야도 외쳐보고, 나무아미타불도 외치며 그렇게 혼자서 벌벌 떨고 있는데... 그런 그의 옆으로 시커먼 실루엣이 갑자기 휙 나타났다고 했다.


    "으악~! 웁! 웁!"


그는 제정신이 아니게 되어 거의 발광직전까지 갔다고 했다. 그렇게 너무 놀란 나머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지려는 그를 그 실루엣이 재빠르게 다가와 넘어지지 않게 품 안으로 잡아당겼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귓가에 '쉿'소리를 내며 입을 막더란다. 초등학교 때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어안이 벙벙해졌던 그때처럼 그는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고 했다. 그렇게 실루엣에 안겨 있는데, 그 품이 의외로 넓고 따뜻해서 진정이 좀 됐다고도 했다. 그리고 점점 다시 소리가 들려오는데, 그 실루엣이 그를 부르더란다.


 "여상제 이병? 야~ 여상제? 괜찮아?"


    정신을 차려보니 당직사관이 앞에 있었다고 했다. 당직사관은 순찰 중에 벌벌 떨고 있는 그를 발견하고 이상함을 느껴 다가왔는데, 그가 이렇게 패닉에 빠질 줄은 자신도 몰랐다고 하며 그에게 다가왔다고 했다. 그는 순간 보일러실이 다시 떠올랐다고 했다.


 "소... 소위님! 보일러실! 보... 보일러실에 뭔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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