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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제6화

Unavoidable

by 철없는박영감 Jul 3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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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이 불가피한


    언제부터, 어떻게 이런 사이로 발전할 수 있었을까? 분명히 X는 그 사건 이후, 여러 번 극단적인 시도를 했을 만큼 정신적 충격이 컸다고 들었다. 그런데 지금 화면 속에서 게이 커플 유튜버를 자칭하며 알콩달콩 꽁냥 거리고 있는 저들은 모든 것이 화사하다. 물론 조명빨이겠지만, 얼굴과 배경, 외적인 것만 화사한 것이 아니라 표정도 화사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뭔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들의 영상에 빠져들고 만다. '호기심? 궁금증? 뭘까? 혹시... 부러... 움?' 화면 속 그들에게서 눈을 못 떼고 있는데, 옆에 있는 누군가가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다.


 "어후~ 팔이야. 상제야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어? 어! 어! 팔 아프지? 핸드폰 이리 줘. 내가 들게."


 "아니, 그게 아니고... 마사지... 어깨 안마를... 에이~"


 "왜~ 뭔데 또?"


 "아니, 그냥... 뭐 내가 같이 보자고 떼쓰긴 했지만, 네가 액정만 너무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으니까 이상하게 질투가 나네~? 에이~ 그만 볼래. 그만 보자."


 "잠깐만, 얘들 다음 영상에서 연애썰 푼다잖아. 한 번 들어 나 보자.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자 그럼 이거 갖고 가서 편하게 봐. 난... 하~암, 잠이나 잘란다."


 "그래? 그럴래?"


 "칫! 진짜 흥칫뿡이다. 뭬~롱. 에이~ 괜히 보자고 했어. 본전도 못 찾았네."


 "뭐래? 왜 저래? 핸드폰 그냥 갖고 가. TV로 크고 편하게 볼 거야!"


 "아휴~ 난 그냥 가련다. 4층 올라간다고~, 나 진짜 간다고..."


    그는 자신이 추천했지만, 오히려 내가 더 빠져드는 걸 보니 흥미를 잃었는지, 집에 돌아가겠다고 나선다. 투정도 받아주지 않고, 마음도 챙겨주지 못해서 조금 미안하지만... 그래도 진짜 삐진 것은 아닌 것 같다. 만약 진심으로 서운했다면 그는 아무 말 없이, 망부석처럼 옆에서 조용히 째려보고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겉으로는 삐진 척을 하지만, 속으로는 나 혼자 이런저런 상념에 빠질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것 같다. 형은 그런 센스가 있는 사람이다.


 "잘 가라. 멀리 배웅 안 나간다."


 "...... 훗 잘났어 정말~!"


 "응? 방금 말투 좀 웃긴데? 무슨 말투야 그게?"


영혼 없는 대꾸에 그가 마지막으로 투덜댄다.


 "에이~ 오래간만에 도란도란 사랑의 밀어 좀 속삭여 보나 했더니... 김샜네. 아주 김 팍 샜어...!"


 "어? 뭐라고? 아직 안 갔어? 빨리 가서 푹 자~"


 "피식~ 진짜 간다. '쾅! 띠리릭'"


    나는 다시 영상에 집중한다. 화면 속에 그들... 아니지 이번엔 X가 혼자 나와서 Y와 자신의 연애사를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단수형이다. X가 풀어낸 전반부 이야기는 같이 겪었던 일이다. 군 선임과 후임으로 만나, Y의 가혹행위에 지옥 같았던 신병 시절,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일러실에서 강제추행 당했던 이야기까지... 이 즈음에서 X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뀐다. Y의 행동은 범죄가 맞고, 그것이 명백한 사실이며, 그리고 범죄는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한다. 그러니까 괜히 따라 하지 말라고... 하지만 그런 Y 덕분에 껍질을 깨고 나올 수 있었다고... 자신을 변태라고 욕해도 좋다고 말하고 있다.


    X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Y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임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수치심과 모욕감에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분노를 이기지 못해 여러 번 자해를 시도했다고도 한다. 하지만 당시에는 변화가 너무 느려서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Y가 징역을 살게 되고, 피해자인 X가 그와 격리 조치됐을 때, 그러니까 더 정확히 말해서 타 부대로 전출되어 다시는 Y와 만날 일이 없다고 확신이 들었을 때, 갑자기 그가 너무 사무치게 보고 싶어 지더란다.


    사건이 발각된 그날, 당직사관 앞에서 Y가 보인 태도는 의외였다고 한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사소한 것 하나도 더하거나 빼지 않았고, 있는 그대로, 변명도 하지 않고, X를 좋아해서 그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추행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그때 처음 심장에서 간지러움을 느꼈다는 폭탄 발언을 이어간다. 동시에 실시간 대화창에는 '스톡홀름 증후군'이라는 말로 도배가 된다. 전역 후 Y는 전과 때문에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질 수 없었고, 강제로 아웃팅 되면서 집에도 있을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Y는 어쩔 수 없이 변변한 직업 하나 없이 불법 퇴폐 마사지 업소에서 하루하루를 몸으로 때워가며 근근이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각자 인생의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있던 어느 날, 업소에 손님으로 온 X와 재회했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재회에 너무나 깜짝 놀란 두 사람', '또다시 불법적인 상황에서 마주친 두 사람'


그때 Y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본인은 사실 기뻤다고 한다. Y는 이후에 X에게 용서를 구하는 문자를 계속 보냈다고 한다. 결국 두 사람은 지난날을 정리하고 지금 같이 장사를 하면서, 부업으로 이렇게 유튜버도 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장사도 술장사로... 남들이 보기에 가장 천하게 보일 수 있는 장사지만, 본인들은 지금 가장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아~, 이런 사연이 있었구나...' 너무나 드라마틱하고 놀라운 고백에 '구독'과 '좋아요'를 누르고 나니,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댓글창을 열고 읽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응원하고 지지하는 댓글이 많이 보이더니 어느 순간, 바로 구독 취소를 누를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안에는 온갖 혐오와 증오, 비방으로 가득 차 있다. '신고를 하지, 아니면 삭제라도...'


    앞으로 그들이 참고 견디고 이겨내고 극복해야 할 이성적이지 않을 시간들이 눈앞에서 바로 확인되자, 지금의 행복이 제발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하지만 그러면서 또 마음 한 구석에 생기는 짠함을 무시할 수 없다. 남일 같지 않고 심지어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감당할 수 없는 이런 아슬아슬한 삶은 살지 말아야지'하는 다짐도 하게 된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무엇을 기대한 건가?


    "팀장님! 왜요? 왜 저는 안 되는 건데요? 네? 저도 좀 행복 지겠다는데... 왜 저는 안 되는 건데요? 네?"


눈물이 주룩 흘러 코 끝에 맺혔다.


 '얼마나 힘들게 낸 용기인데... 30년 가까이 살면서 처음으로 마음을 표현한 건데...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커밍아웃인데...'


서러웠다.


 '도대체 왜 이렇게 밖에 태어나지 못한 건가? 그동안 잘 참아왔는데... 난 병든 건가? 도대체 내게 무슨 잘못이 있길래...?'


화가 났다.


 '왜 이렇게 밖에 못하는 건가? 나는 내가 아니란 말인가? 그동안 거부당하고 부정될 것이 두렵고, 결과를 뻔히 알기 때문에... 그래서 다 포기했는데... 그런 줄 알았는데...'


연민이 생겼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억누르고 억눌러도... 나사를 조이고 조이고 꽉 조여도... 어디 한 군데 느슨해진 곳부터 모래성은 와르르 무너졌다.'


명쾌해졌다.


 '그래 뭘 기대한 거야? 그냥 태어나서 처음 고백해 봤다... 이거잖아? 와~ 드디어 나도 해봤다. 나도 남들 해보는 거 이제 겨우 하나 해봤다. 훗! 자기 합리화 쩌네~'


    어쩔 수 없었다. 그 사람도 남자고, 나도 남자다. 남자끼리는 그런 거 할 수 없는 거란다. 그런데 법은 아니란다. 규칙도 아니란다. 자연의 섭리는 더더욱 아니란다. 그냥 그럴 수 없단다. 받아들일 수 없단다. 동성에게 욕정의 대상이 되는 것을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단다. 점잖게 말하지만 결국 기분 더럽다는 얘기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낫다. 그냥 내가 싫은 게... 만약 법, 규칙, 자연의 섭리로 정해진 거였다면 그야말로 나가 뒈져야 했을 테니까... 정교한 프로그래밍 중에 생긴 버그 같은 거니까...


    오늘 그 사람을 모시고 주요 거래처 접대에 가기로 한 선택은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연심을 충성심으로 둔갑시킨 채 남모르게 키워온 지 3년 가까이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 사람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아침에 눈 떴을 땐 어떤 모습일까? 잠옷을 입고 잘까? 운동복 차림으로 잘까? 아침은 먹을까? 아니면 커피 한잔으로 끝일까? 정장은 어떻게 고를까? 항상 깔끔해 보이긴 하는데...' 그러다가 그 사람은 이성과 함께 있으면 어떻게 놀까라는 호기심이 생겨버렸다.


    마침 이사에게서 팀장으로서, 회사대표로서 자기 대신 거래처 접대에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고 난감해하는 그 사람이 눈에 뜨였다. 그 사람에게 다가가 오늘 접대 자리에 같이 가겠다고 지원했다. 그 사람의 표정이 그나마 조금 밝아졌다. 다행이다. 그런데, 내 표정은 일그러졌다. 호기심은 독이 되었다.


 '그 사람이 그곳에서 그 여자를 만났다.'


    둘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기류... 그걸 눈치챈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위기감이 들었다. 그리고 헛된 망상인 걸 알면서도 곧장 기분이 나빠졌다. 그래서 나를 내려놓고 술을 들이부었다. 질펀하게... 그래 딱 이 표현이 어울린다. 난 철저하게 이성애자인 척했다. 그런 나를 두고 거래처 사람들은 자기들도 눈치 보지 않고 놀 수 있어서 좋았다며 칭찬 일색이었다.


    덕분에 거래처 사람들을 다 택시에 태워 보낸 후, 그 사람이 다가와 수고했다며 숙취해소제를 건넸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한사코 거절했지만, 내가 우겨서 집에 모셔다 드린다며 같이 택시를 타고 그 사람이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리고 집으로 올라가려는 그 사람을 막고 취기를 빌려 한잔 더 사달라고 졸랐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그 사람 앞에서 울면서 '커밍아웃'을 하고 있다. 젠장~ 뭐 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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