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h well
어쩔 수 없지, 아~ 그래 할 수 없지!
엄마의 상태 악화 소식에 우리 가족이 모두 모였다. 그도 동행했지만, 같이 들어가자는 제안을 극구 사양했다. 안 그래도 동생과 사이가 껄끄러워져 있는데, 괜히 자기까지 나타나서 더 악화시키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엄마에게 가족의 마지막 모습은 화목한 모습이어야 한다면서... 그는 역시 그였다. 그래도 엄마 마지막 가시는 길인데, 같이 배웅해 드려야 하지 않겠냐고 설득해 봤지만, 말 중간에 그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는 것을 보고, 바로 미안하다며 달래야 했다. 그렇게 그를 혼자 남겨두고 엄마의 임종을 지키러 들어갔다. 하지만 역시 마음은 편치 않았다.
병실 안으로 들어서자, 잠깐이지만 움찔할 정도로 차가운 시선이 날카롭게 날아들었다. 그리고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칼날들이 거둬들여졌다. 그들은 다시 하고 있던 일에 집중했다. 마치 투명인간이 된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이 집의 장남이고, 엄마도 자랑스럽다며 인정해 주셨다. 그러기에 힘들지만 더 당당하고 뻔뻔하게 견뎠다. '내가 이럴진대, 만약 같이 들어왔으면...' 그의 생각이 옳았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의식불명 상태로 누워있는 엄마 주위로 가족들은 저마다 뭔가를 하고 있었다. 제수씨는 물수건으로 엄마 몸 여기저기를 닦고 있었고, 동생은 다리를 주무르고 있었다. 아버지는 말은 없었지만, 시선을 엄마에게서 떼지 못하고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아버지는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왔냐?"
"네"
"그래... 하... 의사가... 그...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구나..."
"......"
"같이 왔냐?"
"네"
순간 동생 내외가 하던 일을 멈췄다가, 다시 아무것도 못 들었다는 듯이 자기 일에 집중했다.
"그래... 알았다."
"저... 아버지 그래도 엄마 마지막인데, 같이..."
"안된다!"
"그래도 여기서 엄마랑 제일 오랜 시간 같이 보낸 사람이에요!"
"그래도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는 거다! 이건 안 되는 일이고..."
그때까지 말이 없던 제수씨도 어쩔 수 없다는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아주버님... 제가 나설 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어머님 가시는 길인데... 이제 그만 가족들 생각도 좀 해주시는 게... 주제넘은 소리인 것은 알지만... 저 이도, 저도 아주버님이랑 예전처럼 다시..."
"알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저 때문에 불편하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보내드릴 때까지 저도 더 이상 고집 피우지 않겠습니다. 그게 제가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해 줄 수 있는 효도인 것 같으니까요..."
하늘의 별이 전부 쏟아져 내릴 것처럼 유난히 반짝이던 날 새벽녘, 엄마의 사망선고가 내려졌다. 엄마는 그렇게 하늘나라로 가셨다.
엄마의 장례식이 시작됐다. 장례식장은 조용하고 엄숙했다. 그런데 상복을 갖춰 입고 문상객 맞을 준비를 한창하고 있는데, 입구 쪽에서 낯익은 실루엣이 어른거렸다. 그가 저 멀리서 주저주저하며, 망설이고 있는 듯했다. 들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아버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버지도 그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그의 눈에는 슬픔과 결단이 섞여 있었다. 나는 얼른 아버지 앞을 막아섰다.
"아버지 조문도 힘드시겠어요? 그래도 엄마랑 쌓은 정이 있는데..."
"들어오라고 해라. 네가 가서 데려와~"
"감사합니다. 아버지"
내가 다가가자 그는 계단실로 숨었다.
"잠깐! 상제야! 숨지 마! 아버지가 들어와도 괜찮데... 나랑 같이 들어가자."
그의 손을 이끌고 장례식장에 들어섰다. 그는 향을 피우고, 엄마의 영정사진을 향해 절을 하고, 나와도 맞절을 했다. 그리고 돌아서는데...
"이리 들어와라!" 아버지가 말했다. "네 엄마 마지막 소원이다."
그도, 나도 아버지의 부름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상주 대기실에 우리 둘이 들어서자 아버지가 그에게 상복을 건네며 말했다.
"이제 너도 우리 가족이다. 너들 엄마가 그렇게 하길 원했다."
우리는 놀라움과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동생 내외도 나 모르게 합의가 됐는지 그를 보는 시선이 조금은 변해있었다.
"감사합니다. 모두 정말 감사합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웃으면 안 되는데... 지금 너무 행복합니다. 이 은혜 평생을 통해 꼭 갚겠습니다."
사실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고 있었다. 그냥 이런 말이 튀어나왔던 것 같다. 염을 하는 자리에서도 아버지는 그를 가족으로 인정하며 슬픔과 충격을 함께 나누었다. 그렇게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