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보다 수용이 필요한 시대
공감 지상주의 시대
안녕하세요. '철없는박영감'입니다. 와~ 벌써 네 번째 소설을 끝냈네요. 머릿속에서만 이리저리 떠돌던 이야기들을 이렇게 막상 꺼내 놓으면 사실 부끄럽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내가 너무 쉽게 봤나? 조금 더 깊이 생각했어야 하나?'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을 되새기며 다음엔 좀 더... 다음엔 좀 더... 이게 벌써 네 번째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하하하.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 즈음하여 예전에 썼던 글과 소설을 다시 보고 있는데요.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꽤 쌓여있더라고요. 돌아보면,
'아~ 내가 이런 생각도 했었구나...'
깜짝 놀랄 때가 많습니다. 제 자신은 항상 지금이 완성형이라고 잘못 생각하고 살아왔구나 하는 반성도 하게 되고요. 얼마 전까지 저는 공감을 중심에 두고 글을 썼던 것 같아요.
'내 얘기에 귀 기울여 주세요... 당신의 아픔에 같이 슬퍼해드리겠습니다...'
지금 보면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교만과 오만의 극치. 나르시시즘의 전형이라고까지 자아비판을 해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공감'이라는 선택지를 확 내려놨습니다. 소재가 공감받기 힘든 소재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 어떤 때보다 고민은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엔 '수용'이라는 키워드로 써나갔습니다. 여기에만 집중하려고 다른 일을 거의 안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집중하고 몰입하니 확실히 쓰는 재미는 있었습니다. 뭔가 이렇게 푹 빠져본 적이 언제였던가... 싶더라고요. 다만 끝내고 나서 아쉬운 건, 너무 스스로에게 빠져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후회도 듭니다. 공감이 안되시면 수용만이라도 부탁드립니다. ㅜㅠ
어쨌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으니... 이제 다음엔 더 잘할 수 있겠죠? 하하하 결론은,
'다음에 더 잘하겠습니다!'
또 이렇게 끝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불행추구권'이라는 제목으로 일 년간 써온 글에 조금 더 추가해서 브런치북을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다음 소설은 '은주'의 이야기가 될 것 같은데... 철인(哲人)정치가 실현된 이(異)세계로 환생? 전생하며 다음 철인 후보자가 되어 이런저런 사건을 겪게 되며 전생의 자신? 혹은 엄마? 아니면 가족, 사회와 화해하게 되는 이야기를 구상 중입니다. 구상할 땐 참 재밌을 것 같은데... 막상 쓰면, 후회만 남아요. 그래도 이상하게 소설은 계속 도전하게 되는 마력이 있습니다. 다른 모습으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