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갈등 3rd

어공 VS 박힌 돌

by 철없는박영감
박힌 돌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직장 생활 꿀팁이라며 전수되던 것이, 청소해 주시는 분이나 시설 관리해 주시는 분, 혹은 경비를 서주시는 분들께 가장 예의 바르게 하라는 것이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드는다는 내용이기도 하고, 겸손하라는 의도를 실생활에 접목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대부분 직원들보다 2~3시간 일찍 출근하는 이들이기 때문에, 이들과 친하다면 성실함은 증명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이나 드라마 속에서는 청소부로 위장한 창업주가 주인공이 위기에 빠진 순간 짜잔 나타나 구원해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꿀팁이라며, 성공적인 직장생활을 위한 비장의 카드 같은 것으로 여겨졌는데, 소설과 드라마 소재로는 이제 식상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너도 나도 비기를 실전하다 보니 어느덧 표준이 되어버렸다. 소외계층의 권익이 향상됐다는 측면도 있겠고, 서로 존중하는 분위기가 뉴노멀이 됐다고도 하겠다.


그런데 일부지만, 이런 분위기가 역전되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권익 향상과 인권 신장을 마치 권력처럼 휘두르는 경우가 그렇다. 서로 존중하며 겸손하게 인사하고 응원하던 분위기가 이제는 '나한테 잘못하면 회사 사람들한테 너에 대해 안 좋게 소문을 내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성 분위기로 빠져든다. 그래서 이런 부류를 박힌 돌 (사실 똥파리라고 쓰고 싶지만)이라고 칭하겠다.


좋은 게, 좋은 거


예전에 소사라고 불리던 시설관리 공무원들은 이제는 뭔가를 해주면 은근히 대가를 바란다. 본인의 업무를 처리한 건데, 뭔가를 베풀었다는 착각을 하는 것이다. 좀 빨리 일이 처리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부탁의 말이 이들을 변하게 만들었으리라고 추측해 본다. 이들은 처음엔 돈을 바란다기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커피 한 잔에 고마워하다가 점점 정보나 다른 곳에 퍼 나를 이슈, 결국에는 이권이 포함된 뭔가를 바라게 된다. 바늘이 점점 소가 되어간다.


구내식당에서는 음식이 모자라도 어쩔 수 없다며 직원들을 쫄쫄 굶기기도 한다. 몇몇 직원은 참지 못하고 보이콧을 선언하며 밖으로 나가기도 한다. 이런 핑계로 11시 30분부터 점심시간을 시작한다. 명문화한 것은 아니고 그냥 자기들끼리 그렇게 정했다. 처음엔 한 두 명이 규칙을 깨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이제는 서로 눈감아 주며 관습법으로 자리 잡았으리라.


내가 알기론, 공무원들의 12시부터 13시까지 점심시간을 보장하기 위해서 민원 전화를 11시 30분부터 안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남은 30분간 마지막 민원을 처리하고 12시부터 휴식을 취하라는 그런 취지였을 것이 분명한데, 이게 와전이 되어서 공무원들의 점심식사 시간이 11시 30분에서 13시까지로 고착되어 버린 듯하다. 게다가 점심시간에 밖으로 나간 이들이 13시가 넘어도 안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 하나 둘... 이렇게 기본을 안 지키는 마음이 쌓이며 지금의 답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꼬인다. 꼬여


그나마 이런 경우는 내부적인 문제니까... 민원이나 감사같이 밖에서 크게 이벤트가 생기지 않는다면 수면아래에 가라앉아있다. 그리고 그들도 인간이고 로봇이 아니니까, 정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논리가 적용돼도 '우리가 남이가'정신이 발휘되며 결속력을 다지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어디선가 냄새를 맡고 날아드는 똥파리가 문제다. 이들은 이권이라는 구린내를 기가 막히게 포착해서 모여든다.


내가 하는 경로당 꾸러미 사업은, 월요일마다 농산물을 섭외해서 단번에 안성시내 경로당에 뿌리기 때문에, 판매자(농가) 입장에서는 소비자를 기다리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재고가 쌓일 일도 없으며, 또 초창기 제도홍보를 목적으로 농산물 가격까지 후하게 쳐주다 보니 일석삼조의 이득을 본다. (그래서 어디서 정보를 들었는지, 한 번은 주말 텃밭을 가꾸는 일반인이, 본인도 꾸러미에 납품할 수 있냐며 문의를 해오기도 했다.)


게다가 중소농, 청년농, 귀농, 귀촌인들을 위한 제도라는 명분이 있기 때문에, 가락동 공판장(특상품)에 내지 못하는 수준의 농산물을 농약 검출만 되지 않으면 비슷한 시세로 매입해 준다. 원래의 취지대로만 시행되면, 농촌의 소외계층들에게는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바람직한 제도이다. (안성시의 새로운 공공급식 시스템 정착을 위한 연습이라고 농가들에게 참여의 명분을 주기 위해 그렇게 말하고 다녔는데, 언제부턴가 모두가 그렇게 말하고 다닌다.) 그렇기 때문에 구린내가 안 퍼질 수가 없다.


에프킬라


그래도 농가가 그렇게 모여든다면, 사실 제도 초창기를 감안해서, 정말 좋게 좋게 풀면서 진행할 수가 있다. 게다가 그렇게 꼬인다는 소리는 홍보 전략이 제대로 먹혔다는 소리도 되니까 좋은 현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게 어딘가에 소외되어 있는 농가를 찾아서 밖으로 나와 빛을 보게 한다면 그 자체가 보람을 느낄만한 일이기도 하다. 만약 너무 심하면 내가 중심을 잡고 에프킬라 확 뿌리면 되니까... 나 은근히 그런 거 잘한다. 찬물 끼얹는 거... 흐흐흐


문제는 내성이 생겨버린 똥파리들이다. 이들은 신념을 갖고 있으며, 자신들을 정의, 희생, 봉사자로 둔갑시킨다. 이런 위선자들은 처음엔 상냥한 모습으로 다가와서 은근히 사람을 조종하려 든다.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나? 그러다가 자신의 의견이 먹히지 않으면, 누군가의 권위를 들고 와서 굴복시키려 한다. 그마저도 안 통하면 마지막 수단으로 발작을 일으킨다. 이것도 전문용어로... 지랄발광이라고... 흐흐흐


업무인수인계를 받고 일을 시작하자, 이 내성 생긴 똥파리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이번 주 꾸러미에는 어느 농산물을 넣어야 한다며, 뭐 채소 종류에는 조미채소가 어떻고, 엽채류가 어떻고, 근채류가 어떻고, 나중에는 단백질이 어쩌고 저쩌고 영양사도 아닌데 영양성분까지... 그래도 일을 맡은 지 얼마 안 됐고, 모르는 게 더 많으니 이들의 말을 들어가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했다.


꼭두각시


그렇게 처음 꾸리게 된 꾸러미는, 그들이 정해준 농산물, 그들이 지정해 준 농가, 그들이 제시한 가격대로 꾸려졌다. 뭐 그때까지는 상냥한 그들의 모습에 그게 맞는 건 줄 알았다. 그리고 내가 고민할 일을 대신해 주니 얼마나 편리한가?(나중에 말하겠지만 그래서 공무원들의 외주용역사랑은 심각하다.) 그렇게 꾸려진 꾸러미는 한 상자에 다 안 담길 정도로 가득했다. 농산물이 웃자라는 계절적 특성도 있었고, 그만큼 다양한 채소가 들어갔다는 말도 됐다. 제법 그럴싸해 보였다. 난 꼭두각시 된 줄도 모르고 첫 임무의 성공적인 완수를 자축했다.


오랜만에 뭔가를 했다는 뿌듯함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인지상정. 처음엔 그냥 누군가 후임자가 왔을 때, 나 같은 막막함은 느끼지 않기를 바라며 OJT보고서 격으로 업무 순서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납품 농산물의 가격 책정에 관해 정리를 했다. 몇 주간 똥파리들의 꼭두각시놀이를 하다가 파리채를 휘두르는 사람으로 각성한 순간이기도 하다. 그렇게 그들이 불러준 다음 주 납품 목록의 농산물 가격을 설정하고 똥파리들을 만났다. 그런데 그들이 펄쩍 뛴다. 그런 가격이면 농가들이 납품하지 않을 것이라는 협박 아닌 협박이 들어왔다.


이상했다. 분명히 가격을 책정하는 방법이 이렇게 있는데? 저들은 무슨 근거로 그 가격을 부르는 것이지? 나는 원리원칙을 들먹이며 그들의 설득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들은 이내 '아마'라는 수식을 붙이며 내 생각이 틀렸다고 어필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럼 그럴 거면, 주무관님이 직접 통화하세요. 아마 안 한다고 할 건데... 하여튼 직접 통화해 보세요. 그 가격에 한다고 할지..."


그렇게 미팅을 마치고 나는 바로 섭외 농가에 전화를 했다. 가격의 설정 기준은 이러하며 지금 시세는 이렇게 낮아졌으니 가격을 좀 낮춰야겠다. 원리원칙을 내세우며 롤 모델로 삼았던 그 팀장님의 말투를 머릿속에 떠올리며 상담을 진행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잘 받아들였다. 혹자는 당연하다며, 나라에서 하는 대로 따르겠다며 그런 거 신경 안 쓴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들, 똥파리들에 대한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각성


이렇게 아낀 예산으로 더 많은 농가가 더 다양한 품목으로 꾸러미에 참여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농가를 직접 섭외하기 시작했다. 거의 텔레마케터 수준으로 농가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처음 듣는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모든 농가의 풀(Pool)을 가지고 계절 밥상에 맞는 품목으로 공정하게 정하고 있다는 똥파리들이 해충으로 보이는 순간이었다.


내가 전화를 거는 농가마다 제도의 취지를 설명하고,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농가에는 어떤 이득이 있는지 열심히 설명했다. 물론 피싱 전화로 알고 그냥 끊는 농가도 있고, 이미 판로가 있다며 관심 없다고 거절하는 농가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무관심 혹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그중에는 너무 고맙다며 꼭 다시 전화를 달라는 농가도 있었다. 신규농가를 발굴한 것이다. 아~ 이런 게 보람된 일이구나!


점점 똥파리들과는 거리를 두게 되었다. 그래도 차마 살충제는 뿌릴 수가 없어서 파리채를 휘휘 휘둘러 쫓아 보냈다. 하지만 똥파리들은 쉽게 흩어졌다가도 금방 다시 꼬였다. 이번에는 공공급식팀장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고 왔다.


"이렇게 이렇게 구성하는 것이 공공급식 팀장님의 의중이고요..."


사실 진짜 공공급식팀장이 그렇게 말했는지는 알 수 없다. 똥파리들이 퍼다 날른 말일뿐이니까. 직접 확인해보려 했지만 그 팀장이라는 사람은 뭐가 그렇게 바쁜지 만날 출장 중이었다. 그렇다고 임용된 지 한 달도 안 된 애가 팀장급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런 말 한적 있냐고 묻기도 그렇고. 그냥 꼬일 때마다 파리채를 휘휘 휘두를 뿐이었다.


아~ 나 박힌 돌이라고 칭하기로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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