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훈 <일종의 고백>
사랑은 언제나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고
또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나는 가끔씩
이를테면 계절 같은 것에 취해
나를 속이며
순간의 진심 같은 말로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
나는 너를
또 어떤 날에는
누구라도 상관없으니
나를 좀 안아줬으면
다 사라져 버릴 말이라도
사랑한다고 널 사랑한다고
서로 다른 마음은
어디로든 다시 흘러갈 테니
마음은 말처럼 늘
쉽지 않았던 시절
며칠 사이, <일종의 고백>이란 제목으로 쓴 글의 조회수가 급등했다. 왜 그런가 알아보니 그 노래를 부른 가수가 JTBC <싱어게인 4>에 출연해서였다.
<일종의 고백>은 싱어송라이터 이영훈이 2015년에 발표한 정규 2집 <내가 부른 그림 2>에 실려있다. 2022년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삽입곡으로 곽진언이 리메이크해 널리 알려졌다.
이영훈은 "순간적이거나 충동적인 마음 또한 일종의 고백일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이 곡을 만들었다. 완전하거나 정제되지 않은 '순간의 진심'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이를테면 계절 같은 것에 취해"라는 구절은 놀랍도록 아름답다. 자꾸 소리 내어 읊게 되고, 그 뜻을 곱씹게 된다.
"일종의 가수"
방송에서 이영훈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자극이 없는 사람이고, 제가 하는 음악도 자극이 없는 음악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세상에 멋진 가수들이 너무 많은 와중에 큰 자극 없는 저도 일종의 가수다(라고 생각합니다).
- JTBC <싱어게인 4>, 2025년 10월 21일 방송
스스로를 '일종의'로 규정하며,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진솔하게 노래하는 가수임을 밝혔다. 그런 태도와 정서가 배어 있는 그의 가사는 담담한 독백을 담은 서정시다.
있잖아 나는 늘 불안하고 완전하지 못해
그래서 난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해
이제 나는 정말 아무렇지 않으니
돌아가자 익숙한 저 언덕 너머
혹시 내가 문득 그리워진대도
돌아가자 길었던 꿈의 반대편으로
#돌아가자
토옥 톡 떨어지는 빗방울 그 사이로
하나둘 지나가는 사람들 그 사이로
그대는 지나가고 내 맘은 지워가고
신발은 젖어가고 내 볼도 젖어가고
까닭 없는 외로운 밤이 문득 나를 찾으면
가지런히 놓여 있던 기억들이 위태로운 듯
흔들리며 조금씩 사라지는 얼굴 하나
대책 없이 기다리는 마음 하나
이영훈은 방송 전 인터뷰에서 음악을 만드는 행위 자체에서 의미를 잃어버린 듯했고, 원인 모를 무력감에 빠져 있다고 말했다. 무력감에서 벗어나기 위한 돌파구로 방송 출연을 결심했다.
창작은 고뇌와 좌절을 동반하는, 자신과의 외로운 싸움이다. 하물며 자극적인 음악과 영상에 익숙한 시대에 담백한 음악을 추구하는 가수가 주목받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가 느낀 무력감은 외로움의 다른 얼굴인지도 모른다.
"일종의 시인"
세속적 성공과 거리가 멀어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창작자를 마주하면 묘한 감동이 일고 마음이 숙연해진다. 시인이 그렇다. 흔히들 시인은 직업이 될 수 없다고 한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시인이라 해도 인세는 소박하고, 원고료나 상금 같은 비정기적 수입으로는 생계가 보장되지 않는다. 강연과 강의가 주요 수입원이 되기도 하지만, 다수는 다른 생업에 종사하며 시를 쓴다. 밥이 되지 않는 시를 쓰기 위해 시가 되지 않는 밥벌이를 한다.
이상을 추구하는 시인의 삶이 멋져 보였다. 되돌아보면, 내가 시의 세계에 다가가게 된 건 그런 시인의 삶에 감동해서였다. 시를 쓰기로 결심한 후 시집을 읽고, 시를 쓰고, 합평 수업을 들으며 지냈다. 내 시가 이룰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며, 내 언어의 한계를 탓하며, 자주 좌절했다. 그럼에도 시를 놓지 않고, "안 오는 게 아니라 아직 오지 않았을 뿐인 천천히 오는 기쁨"의 순간을 기다린다.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어려웠을까.
#데미안
'일종의 가수'는 순조롭게 경연의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 그러나 아마도 그는 우승자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육식동물의 세계에 나타난 초식동물의 운명처럼, 먹이사슬의 정상에 오르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그가 이 방송을 통해 외로움을 벗어나 다시 노래할 힘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며 응원한다.
일류만이 살아남는다고 믿는 세상,
자신의 꿈에 '일종의'라는 수식어를
이름표처럼 달고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이를테면 일종의 시인 같은 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