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찬호 <칸나>
드럼통 반 잘라 엎어놓고 칸나는 여기서 노래를 하였소
초록 기타 하나 들고 동전통 앞에 놓고
가다 멈춰 듣는 이 없어도 언제나
발갛게 목이 부어 있는 칸나
그의 로드 매니저 낡은 여행용 가방은
처마 아래에서 저렇게 비에 젖어 울고 있는데
그리고 칸나는 해질 녘이면 이곳 창가에 앉아
가끔씩 몽롱 한 잔씩을 마셨소
몸은 이미 저리 붉어
저녁노을로 타닥타닥 타고 있는데
박차가 달린 무거운 쇠구두를 신고 칸나는
세월의 말잔등을 때렸소
삼나무숲이 휙휙 지나가버렸소
초록 기타가 히히힝, 하고 울었소
청춘도 진작에 담을 넘어 달아나버렸소
삼류 인생들은 저렇게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초로(初老)를 맞는 법이오
여기 잠시 칸나가 있었소
이 드럼통 화분에 잠시 칸나가 있다 떠났소
아무도 모르게 하룻밤 노루의 피가 자고 간, 칸나의 붉은 아침이 있었소
송찬호,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문학과지성사, 2009.
무대를 펼쳐놓고 칸나는 노래하네
듣는 이 없어 더 크게 울리는 소리
누구를 위한 노래 아니었으니
칸나가 머물다 떠난 자리에서
시인은 몽롱 한 잔을 기울이네
드럼통 화분에 붉게 핀 칸나와
옆에 기대어 선 초록 기타의 떨림을
그들에게서 달아난 청춘과
그 자리를 채운 낭만을
그리고 쓸모없는 시를
사랑하는 시인이 여기 있네
"시는 소통을 염두에 둔 장르가 아니다."
어느 시인이 한 말에 뒤통수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시에 관해 들었던 말 중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세상을 소통 중심으로 이해하고 분석하는 소통학(Communication Studies)을 공부했기에 더더욱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었다. 시가 소통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 혼잣말과 다를 게 무엇인가.
달리 생각해 보기로 했다. 시가 혼잣말이어서는 안 될 이유가 있을까?
시인의 설명은 이러했다. 시의 장르적 속성은 설명문이나 편지 같은 실용문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실용문은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 있고 독자가 오해할 소지가 적다. 반면에 시는 작가의 의도와 달리 의미가 확장되어 뻗어나간다. 같은 시를 읽어도 독자마다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다.
송찬호 시 <칸나>에서 '칸나'는 가수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칸나'는 시인이나 소설가, 배우나 화가가 될 수도 있다. <칸나>는 예술의 본질에 관해 이야기한다. 술 한잔하듯 마시는 '몽롱'은 예술가에게 창작의 동력이 되는 자기애, 자아도취, 영감, 낭만, 신념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고단한 삶 속 작은 위로와 희망으로 볼 수도 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라고 번역된 문장이다. 직역하자면 "항상 굶주린 상태로 있어라. 늘 바보처럼 행동하라."가 되겠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 1955~2011)가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 인용해서 널리 알려진 문장이다. 잡스가 '종이책 버전의 구글'이라고 소개한 과학잡지 <지구 카탈로그(Whole Earth Catalog)>(1968~1972)의 마지막 호 <지구 에필로그(Whole Earth Epilog)>(1974)의 뒤표지에 적혀있다.
<지구 카탈로그>의 발행인 스튜어트 브랜드(Stewart Brand, 1938~ )는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했다. 잡스가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축사에서 브랜드의 말을 인용한 것은 우연이 아닌 듯하다. 브랜드는 히피 정신, 공동체 문화, 환경운동을 지지하며 주류 문화에 대항한 반문화(counterculture) 운동가였다.
1960년대 후반 브랜드는 사람들이 자연에서 살아가고자 할 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지구 카탈로그>를 기획했다. 미국 항공 우주국(NASA)에 지구 전체를 찍은 사진을 공개할 것을 요청해 그 사진을 <지구 카탈로그>의 창간호 표지에 실었다. <지구 카탈로그>는 1974년 폐간 후에도 1998년까지 8권을 더 출판했다. 2002년까지 출간된 관련 출판물을 포함한 모든 자료를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있다. 구글의 종이책 버전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브랜드와 잡스는 굶주린 상태로 열망했고 추구하는 바를 바보처럼 밀어붙여 목표를 성취했다. 유용한 정보와 도구를 생산하고 사회를 변화시켰다.
시를 써서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
시가 성취할 수 있는 것, 시의 쓸모를 생각하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저 나의 '몽롱'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는 것이다. 잘 쓰고 싶은 열망으로 굶주리고 바보처럼 보일 만큼 도전하려는 마음으로.
오늘의 몽롱을 한 잔 꺾어 마신다.
바보들을 위하여 건배.
My Foolish Heart - Bill Evans Tr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