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진짜 서울이라구요?
생애 첫 독립을 하면서 오게 된 지금의 동네는
고층의 건물과 아파트로 즐비한 도심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서울에 오래 거주한 사람일지라도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한
이 동네가 구체적으로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곳은 개발이 제한되어 20여 년 전 서울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집값도 인근에 있는 다른 동네에 비해서는 조금은 저렴한 편입니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만 해도 동네의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골목마다 빼곡하게 자리 잡은 붉은 벽돌집, 옥상에 널려있는 이불과 빨래들,
오래된 상점과 낡은 간판,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까지.
높은 울타리로 둘러싸인 빈 건물들이 있고,
공터에는 유적지임을 알려주는 팻말이 심심치 않게 놓여있습니다.
더운 여름날, 제 나이와 비슷한 건물이 즐비한 골목에서 현관문을 활짝 열어놓고 사는
이웃들을 보면 다른 시공간에 와있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이 동네를 방문한 저의 지인들은 '여기가 서울이 맞느냐'라고 되묻기도 했습니다.
여느 도심처럼 화려하거나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느릿느릿 생동합니다.
이른 새벽부터 아침, 대낮, 어스름한 저녁, 늦은 밤까지.
유독 자주 목격하는 풍경이 있습니다.
바로 폐지를 줍는 어르신들의 모습입니다.
이 동네의 원주민 분들로 할머니인 경우가 많습니다.
동네에 재래시장이 있어 과일이나 채소 등을 담았던 상자들이 자주 배출됩니다.
그런데 폐지 줍는 어르신을 바라보며 제가 마주하는 것들은
그분들을 위한 일말의 관심이나 진심 어린 기도가 아닙니다.
뾰족한 나뭇가지처럼 꼿꼿하게 서있는 두려움,
새벽안개처럼 서늘하게 덮쳐오는 혐오감.
쓰레기가 쌓인 후미진 골목, 초라한 행색으로 허리를 굽힌 채
폐지를 줍는 할머니의 모습은 불현듯 저의 먼 미래처럼 느껴집니다.
그 상상은 때때로 제 삶을 집어삼킬듯한 공포로 덮쳐옵니다.
글과 생활의 간격, 자주 비어있는 통장, 고지서에 박힌 숫자들.
살면서 모아놓은 재료들로 퍼즐을 조립해보니 초라하고 볼품없는 그림이 완성됩니다.
어르신들이 처음부터 그런 일을 하셨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이 사회에서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며 나름 윤택한 삶을 영위하던 가운데,
삶의 다양한 변곡점을 맞으며 부득이하게 폐지수집에 나섰던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훗날 할머니가 된다 해도 신체활동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함이 있어서
산책하듯 걸어 다니며 폐지를 줍는다고 생각하면 그리 나쁜 상황인 것만도 아닙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하거나 스스로 움직이기 힘든 상황일 경우
폐지를 줍는 것조차도 불가능할 테니 말입니다.
수없이 도망치며 마주쳤던 불안함을
눈덩이처럼 키워왔던 것일까요.
폐지와 어르신들을 보며 찌푸린 표정의 못생긴 눈사람 하나를
끌어안고 살아왔던 저를 발견합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눈앞을 가로막는 창살이 사라지지 않을 때,
열심히 발버둥 쳐도 어두운 터널 밖을 벗어나지 못할 때,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남아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
곧잘 폐지처럼 눅눅하고 납작해집니다.
너덜너덜해진 저를 볼 때면 전봇대 아래에다 버려두고 싶습니다.
얼룩지고 냄새나는 삶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도망치고 싶습니다.
독립한 뒤로 스스로를 돌보기 시작하며
이제는 어른이 되었나 싶어 으쓱했는데
단단한 마음을 가지려면 아직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한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