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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I hate 세종대왕(#3) : 한(恨) 민족?

한국 권위주의 문화의 뿌리와 현상을 이해하고 변혁을 시도하기 위하여

by 파포

앞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 권위주의 문화는 사상(유교), 역사(조선왕조, 일제통치, 한국전쟁, 군사정권), 문화(군대문화), 언어(호칭, 높임말/낮춘말)의 영역에 종합적으로 뿌리를 두고 형성되어 왔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도 있었다. 1999년에 출간된 책으로, 한국 권위주의 문화의 ‘주적’으로 공자로 대변되는 유교를 비판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앞의 글에서 본 것처럼, 공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자의 나라 중국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수평적인 사회이다. 현재를 알기 위하여는 역사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우리는 어떤 역사를 통하여 권위적인 사회에 살게 된 것일까? 한국의 권위주의는 고대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나, 문자가 없던 시절에 대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 이에 삼국시대부터 간단히 한국 군위주의의 역사를 짚어 보도록 하겠다.




02. 역사


신라의 골품제도

고등학교 역사 시간에만 들어봤을 만한 골품제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고자 한다. 혈통을 중시한 신라시대에는 “성골, 진골, 6~4두품, 3~1두품”으로 로 신분을 구분하였다. 성골과 진골은 왕위와 고위 관직을 독점하였으며, 6두품 이하는 능력이 있어도 관직의 승진에 한계가 있었고, 3두품 이하는 천한 신분으로 관직에 나아갈 수 없었다. 나의 조상은 어떤 등급이었을까?


고려의 8조 세계

고려에서 관직에 오르기 위해서 8조(祖) 세계(世界)를 증명해야 했다. 다소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설명하면, 고려시대에 32명의 조상 중에 천한 신분이 없어야 높은 관직에 오를 수 있었다고 한다. 고려의 후반부터는 신분제도가 불안정해지고 양반층과 노비층 간의 사회적 이동이 가능했었다고도 하나, 조선시대로 넘어와서는 신분제도가 더욱 견고해졌다.


조선왕조 500년

조선왕조는 계급사회였다. 임금, 왕족, 양반, 평민, 노비라는 피라미드를 가진 명백한 계급사회가 500여 년이나 지속된 것이다. 조선시대 노비의 인구비중이 30~40%에 달하였다고 한다. 물론 당시 한국만 계급사회였던 것은 아니다. 절대왕정의 시대는 서양의 역사에서도 볼 수 있고, 중국도 일본도 모두 왕정 시대를 지나왔다. 다만, 프랑스 대혁명에서 볼 수 있듯이 서구 사회는 혁명을 통하여 계급사회를 타파하였고, 중국은 뒤늦게 외압에 의하여 황제시대가 마무리된 후에 국공내전을 통해 공산주의가 정권을 잡았고,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기존의 기득권 세력이 숙청되었다.


일제강점기 36년

아쉬운 점은 대한민국은 혁명을 겪으며, 계급사회가 타파된 것이 아니다. 세계적인 혁명의 시대에 한국은 오히려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점령군의 피지배를 받는 암울한 역사를 살아가게 된다. 왕정을 타파하고 평등의 사회로 나아가는 시대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 군부에 의해 피지배를 당하는 보다 불평등한 사회를 살게 된 것이다. 터널을 뚫고 나왔지만, 곧바로 더 어두운 터널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지도자들 (@중국 중경)

나는 중국 상해와 중경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방문한 적이 있다. 매우 비장한 모습의 단체사진은 아직도 나의 뇌리에 박혀 있으며, 그들을 생각하며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불만과 불평들이 얼마나 사치스러운지를 깨닫곤 한다. 아쉬운 것은 해방 이후 친일파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가 설립되고 친일경찰, 친일관료 등을 대상으로 처벌을 하고자 하였으나,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에 의하여 반민특위는 강제 해체되었고, 제대로 처벌받은 친일파는 없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은 한국에서 여전히 권력과 재산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다.


한국전쟁과 군사정권의 통치

군대는 매우 효율적인 조직이다. 생사를 가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지휘통제가 신속히 이루어지고, 일사불란하게 작전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극단의 위계적인 조직구조와 명령체계를 가진다. 조선왕조 500년의 계급사회와 일제강점기 36년의 피지배사회를 지나온 한국은 광복과 해방의 기쁨도 잠시,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라는 비참한 상황을 경험한다. 3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한국은 위계적인 사회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을 체결한 한국은, 드디어 봉건주의와 제국주의의 굴레, 그리고 전쟁이라는 비참한 터널을 모두 통과하고 비로소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곧바로 1961년 군사정변으로 군사정권이 들어서며, 한국은 또다시 20여 년을 군사독재의 지배하에 살아가게 되었다.



신라시대부터 한국의 근현대사까지를 간략히 나열한 이유는, 한국 역사의 흐름이 한국 권위주의 문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 한국의 근현대사를 보면, 한국은 한(恨)이 많은 민족이다. 서구가 봉건사회를 탈출하여 자유와 평등의 사회로 나아갈 때, 우리는 외부 세력의 지배와 민족 내부의 분열을 겪어온 아픔을 가지고 있으며, 대다수의 국민들은 항상 권력의 메커니즘에 의해 지배를 당해왔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 태백산맥, 한강“을 대학교 방학기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소설에서 외설적인 장면만 뺀다면, 중고등학교 필독 도서로 반드시 선정되어야 할 소설이라고 생각한다.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읽으면 마치 그 시대를 살아본 것과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만큼 시대상을 자세하게 반영하였으며, 당시의 인물들에 감정이 이입되어 저절로 눈물이 나기 마련이다. 또한 당시의 시대가 아닌 현대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된다. 세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구조적인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삶을 살아가며, 꺾이고 꺾여도 뿌리 뽑히지 않는 생명력을 유지한다. 조정래의 소설을 읽고 나면, 우리 민족이 얼마나 한(恨) 많은 민족인지를 알 수 있다.


소설 <한강>에는 빨갱이의 자식으로 몰려 가는 곧곧마다 벽에 부딪치는 형제의 이야기가 나온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 절망하고 있는 동생 유일표에게 형 유일민은 편지로 이렇게 전한다. “의문을 갖지 말아라. 회의도 하지 말아라. 미래를 아는 인간은 아무도 없으며 가망 없는 미래를 예상해서 현재의 삶에 불충실하는 것처럼 큰 어리석음은 없다. 공부에 열중해라.” 우리나라는 역사 속에서 수많은 벽을 부딪친 한 많은 민족이지만, 또 많은 어려움을 헤쳐내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현재까지 왔다.




위화, 루야오, 모옌의 책들

나는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중국의 대하소설도 꽤나 즐겨 읽었다. 외국어 원서를 읽기에 다소 힘에 부치나, 그래도 원서를 읽고 싶은 사람들에게 한 가지 팁을 주자면, 오디오북을 통해 귀로 들으면서, 눈으로도 함께 따라 읽으면 보다 빠르고 순조롭게 원서를 읽을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중국 작가는 루야오(路遥), 위화(余华), 모옌(莫言)인데, 세명 모두 문화대혁명 전후를 역사적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을 많이 썼다. 모옌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로 그의 소설은 익살스러운 풍자가 재미있으며, 흥미진진하다. 허삼관매혈기, 형제 등의 소설로 잘 알려진 위화는 중국인 작가이지만 중국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식을 가진 작가로, 그의 비판은 중국인을 향한 그의 애틋한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루야오는 근현대 중국인들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하였으며, 루야오의 <평범한 세계(平凡的世界)>는 아직 한국에 번역본이 발간되지 않았는데, 내 인생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이 소설을 번역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중국과 중국인에 대해 매우 비호감을 가지고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중국어를 전공하고 중국에서 생활하여 본 나는 중립적인 입장으로 중국을 바라본다. 한국인이 개인 관계에서 누가 높고 누가 낮은 지를 항상 의식하고 사는 것처럼, 국가와 민족 등 집단에 대하여도 어느 집단이 높고 어느 집단이 낮다는 상하관계의 렌즈를 가지고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우리는 긴 역사 속에서 중국을 한국보다 낮게 보는 아주 짧은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봉건주의와 제국주의의 터널을 뚫고 나온 중국은 급진적으로 좌향좌 하면서 공산주의 독재정치로 현재까지 오고 있다. 문화대혁명을 거치며,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고, 지금도 일당독재 하에서 정치의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덩샤오핑 이후 흑묘백묘론(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과 선부론(먼저 일부가 부유해져서 먹을 파이를 키운다)을 내세우며, 공산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가 급속하게 도입하며, 매우 불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위의 중국에 대한 나의 시각은 외부자로서 중국을 바라본 비판적인 시각이다. 반대로 중국인들이 한국을 바라본다면 어떤 시각일까?


봉건주의와 제국주의의 터널을 뚫고 나온 한국은 급진적으로 우향우 하였고, 일제 식민지의 잔재세력들을 청산하지 못하였으며, 친미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수많은 대학생들을 학살하였고, 역대 대통령들은 살인을 당하거나 감옥에 가거나 자살을 하였다. 정치인들은 양분되어 싸우고 있으며, 민주주의라고는 하지만, 대부분 국민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이기에 빈부의 차이가 크며, 돈 많은 사람이 최고의 권력을 가진다.


바로 이웃한 나라로 수천 년의 역사를 함께 한 한국과 중국은 비슷하지만 각기 다른 역사를 살아왔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새었지만, 한국도 중국도 모두 어려운 근현대사를 지나왔으며, 현재로서는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를 떠나 ‘자본주의’가 가장 중요한 본질을 구성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은 왜 중국인보다 더 위계적인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갈까?


중국에서 4년간의 직장생활을 해보니, 중국에서도 리더와 구성원 간의 위계질서는 명확하다. 그러나 리더가 아닌 구성원 간의 관계는 매우 수평적인 구조이다. 그러나 한국은 구성원 간에도 나이와 직급에 의해 분명히 계급이 구분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살아간다.

글을 80% 이상 완성하고,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을 찾다보니 최봉영 교수의 책을 만날 수 있었다.

최봉영 교수는 <한국사회의 차별과 억압>이라는 저서에서, 현재 한국사회가 ‘유사신분제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공식적인 신분제도는 없으나, 공적인 수직관계가 사적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쉽게 말해서 회사 상사와의 관계가 업무에 그치지 않고 개인적인 영역까지 이어지며, 심지어 상사의 가족과 나의 가족 간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러기에 우리는 가급적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과 나의 가족들이 마주치지 않게 하려고 한다. 서양에서 가족을 초대하여 함께 파티를 하고, 중국에서도 자연스레 가족을 초대하여 식사를 하는 경우가 있으나, 한국에서 우리는 직장관계와 가족관계가 섞이는 어색한 만남을 최대한 회피한다.


한국과 중국이 걸어온 역사는 대동소이(大同小异)일까? 소동대이(小同大异)일까? 분명한 것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역사적 배경에 기반하여, 현재의 문화 차이가 나타난다. 물론 현재의 문화차이는 역사, 사상, 언어 등 복합적인 요소에 따라 나타난 결과이다.


우리는 모두 역사의 한복판에 살고 있다. 현재의 모습은 역사가 누적되어 쌓인 누적평균이다. 다만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오늘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쌓아갈지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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