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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무밥이 싫다고 하셨어

밥 먹다가 아버지의 어린 시절을 듣게 된 여자 

이반장님(아빠의 애칭)의 안과 검진을 위해 오랜만에 강남 나들이를 했다.

요즘 부쩍 시력이 안 좋아지신 이 반장님은 백내장이 심해지셨고, 예전에 다친 오른쪽 눈 때문에 난시가 심해졌다고 했다. 여러 군데 안과병원을 가보고, 우리는 그 병원을 선택했다.


병원에서 정밀 검진을 진행하기 위해 기다리던 중 점심시간이 걸려서, 한 시간 후에 오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도 서둘러 점심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예전에 살던 동네 근처여서, 우리는 맛집을 꽤고 있었고, 가장 좋아했던 음식점으로 이 반장님을 모셨다. 음식점으로 가면서 나는 이반장님 팔짱을 꼈다. 정밀 검사 때문에 동공이 커지는 안약을 넣었는데, 빛이 흐려져서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반장님이 넘어질까 팔짱을 끼며,  소소한 이야기를 했다.


"아빠! 큰언니가 좋아? 내가 좋아? 아빠는 그래도 큰 언니한테 더 마음 이 가지?

 원래 아빠들의 첫째에 대한 사랑은 범접할 수가 없다던데..."


갑자기 이반장님이 팔짱을 끼고 있던 내 손을 꼬옥 잡으며 말했다.

"그런 게 어딨냐? 가족이 다 좋지!"

그러나, 꽉 잡은 그 미세한 그 손짓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졌군!


나는 알고 있다. 아이를 낳아보니 첫째가 정말 애틋할 수밖에 없다.

엄마가 처음이라 첫아이에게 했던 그 수많은 수행 착오들을 생각하면 마음속엔 늘 첫째가 애틋하고 안쓰럽다.

물론 막내는 세상 귀엽다! 바닥에서 굴러도 구르는 그 발 모양까지 사랑이다. 

사실 뭐  이 질문은 아빠가 좋냐? 엄마가 좋냐?라는 질문과 똑같다. 

내향형인 이반장님의 사랑은 표현하지 않아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건 이반장님을 놀리고 싶을 때, 내가 자주 하는 나만의 농담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소소한 농담을 하며, 맛집에 도착했다.  

그 집의 점심 특선으로 가장 유명한 메뉴는 콩나물밥과 무밥세트였다. 

나는 이 반장님께 무엇을 선택하겠냐고 물었고, 이반장님은 단번에 콩나물밥을 먹겠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본인은 무밥이 싫고, 왜 무밥이 그리 싫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옛날 가난하던 시절에 (그러니까 대략 1950년대) 쌀밥을 너무 먹고 싶은데, 쌀이 잘 없으니까 밥에 무를 잔뜩 썰어서 솥밥으로 해 먹었다고 한다. 하얀 쌀밥이 너무 먹고 싶은데, 설겅설겅한 무만 잔뜩 씹어야 했던 기억에 아직도 무밥이 싫다고 하셨다. 지금이야 사람들이 별미로 먹는 음식이지만 이반장님은 처다 보기도 싫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린 시절의 이 반장님이 생각나서 마음 한 구석이 짠해졌다.

그 시절에는 전쟁 직후라 누구라도 그러했으리라...


잠시 옛 생각에 잠겨, 여기온 목적을 잃은 그때, 마침  콩나물 뚝배기가 나왔다.

이 반장님은 맛있게 야무진 손놀림으로 콩나물 밥에 양념장과 시래기나물을 넣고, 비비셨다. 

반장님 그릇에 고기가 없진 것 같으면, 함께 나온 불고기 뚝배기에서 고기만 꺼내 넣어드렸다.

손사래를 치시는 이 반장님은 그만이라고 계속 외치셨지만, 결국 밥 한 톨도 남기지 않으시고, 완뚝 하셨다. 그리고는 너무 다 맛있었다며, 잘 먹었다고 하셨다. 

이 반장님의 이야기로 마음을 채우고, 콩나물밥으로 배를 든든히 채운 우리는 다시 병원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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