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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카이 로컬음식의 세계

필리핀 음식에  진심인 여자

필리핀 음식은 스페인과 미국 식민지의 영향으로 동서양의 음식 문화가 공존한다. 서양식 튀김과 바비큐가 많고, 다른 동남아 지역에 비해 향신료는 잘 쓰지 않으며, 대체로 음식이 달고 짠 편이다.


우리가 리조트를 선택할 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에 하나가 아침 조식이었다. 부모님을 생각해서 한국식 조식이 나오는 곳을 선택할까 했지만, 이곳에 온 만큼  현지 음식들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우리가 묵은 리조트는 조식으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다양한 필리핀 음식 구비 되어 있고, 오후에는 전통 간식을 서비스로 제공해 주었다.

아침마다 12명의 식구가 조식을 먹는 일은 일어나서 제일 먼저 느끼는 즐거움 중에 하나였다. 조식이 부모님 입맛에 안 맞으실까 걱정이 되었지만, '언제 또 이런 대식구가 이국적인 음식을 먹으며 즐길 수 있겠냐'라며 잘 적응해 주셨다. 부모님은 함께 한 모든 순간에 감사하며, 적극적으로 여러 음식을 시도해 주셨다.

우리가 처음 접한 조식은 바로 타호였다. 보통 해변에서 양동이 두 개를 연결해 어깨에 메고 타호 장사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우리 리조트에는 타호만 담당하는 직원이 있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타호를 먹어 보겠냐며 우리에게 건네어주셨다. 타호(TAHO)라고 하지만, 필리핀 사람들은 보통 따호라고 부른다. 타호는 필리핀 사람들이 아침 대용으로 자주 먹는다고 한다. 단단한 순두부 위에 흑설탕 시럽과 타피오카 펄이 얹어서 먹는 음식인데, 간단한 한 끼로 든든하고, 달달한 블랙 슈거 진하게 얹어져 있어, 되직한 블랙 슈거 밀크티를 연상시킨다. 옛날에 누군가는 해장으로 이 음식을 먹는다고도 했다. 이 반장님은 자신의 취향에 맞지 않으셨는지, 갑자기 타호 양동이 지게를 어깨에 둘러메셨다. 생각보다 무겁고, 무게 중심 잡기가 어려워 보이셨지만, 소싯적 양동이를 메던 실력이 나왔다. 엉뚱한 이 반장님의 매력에 우리는 이 반장님께 박수를 보냈다. 타호보다는 타호 양동이가 더 탐나셨던 듯하다.

조식으로 가장 많이 나왔던 음식 중에 아도보(adobo)가 있다. 아도보는 고기나 생선을 간장, 식초, 설탕, 마늘 등에 재워 조려낸 음식으로, 스페인의 영향을 받은 음식이라고 한다. 돼지고기 아도보와 닭고기 아도보가 유명한데, 닭고기 아도보는 우리나라 찜닭과 비슷하다. 향신료가 자극적이지 않아 아이들도 잘 먹는 음식이다. 아침마다 다양한 종류의 아도보를 만날 수 있어서 행운이었다.

이 반장님께서 제일 좋아하셨던 건 갈릭 라이스였다. 다진 마늘을 튀기듯 볶아 플레이크처럼 만든 후 쌀밥과 볶아져서 나오는 밥인데,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요리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에게는 마늘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맛있는 마늘볶음밥이다. 여기에 깡콩(우리나라에서는 공심채라고 하며, 모닝글로리를 간장에 볶은 나물볶음이라고 생각하면 된다.)을 곁들여서 먹으면 갈릭 라이스 한 공기는 뚝딱한다.

필리핀 음식 중에 빠질 수 없는 음식이 레촌(lechon)과 크리스피 타파(chrispy tapa)이다. 레촌은 4~6개월 된 아기 돼지를 장작불에 구워 기름기를 뺀 바비큐 요리이다. 필리핀 잔치 음식으로 생각하면 되는데, 모임, 축제 등의 여러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대표 음식이다. 크리스피 타파는 족발 튀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쫀득한 족발의  크리스피 하게 튀겨, 겉면이 아주 바삭한 게 특징이다. 레촌과 타파는 겉은 바삭하지만, 안쪽은 상당히 촉촉한 반전의 맛을 선사한다. 반전의 맛에 빠져 한참을 먹다 보면 살짝 느끼함이 올라오는데, 이때 산미구엘을 함께 마시면 가슴속까지 시원한 맥주가 느낌함을 데리고 내려간다.

바비큐와 튀김에 진심인 필리핀에서는 그릴드 바비큐가 진짜 맛이 좋다. 바비큐 꼬치구이 이나살(inasal)이라고 하는데, 닭다리를 통째로 구우면 치킨 이나살, 돼지고기를 꼬치에 끼워 구우면 포크 이나살이라고 한다. 이나살은 길거리에서도 볼 수 있고, 전문점에서도 볼 수 있고, 호핑을 가도 나온다. 달짝 지근하면서도 잘 태워진 이나살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맛이다. (또, 섬나라답게 다양한 시푸드가 발달했는데, 시푸드의 다양한 세계는 다음 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조식 말고도, 오후가 되면 우리 숙소로 간단한 전통 간식들이 서비스되었다. 어떨 때는 맛있기도 하고 어떨 때는 처음 먹어보는 생경한 맛 때문에 얼굴을 찌푸리기도 했는데, 그 시간이 되면 우리는 가위바위보로 그날 벌칙자를 선정하여, 디저트를 먹게 했다. 처음에는 서로 나만 아니면 되를 외치며 시작되었는데, 마지막에는 너 나 할 것 없이 새로운 맛을 찾아 먹어보고 있었다.

서비스된 디저트는 푸토(puto), 판단(pandan), 비빙카(bibingka) 참포라도(champorado)와 같은 간식거리였다.  푸토와 비빙카는 필리핀 식 술빵이라고 할 수 있겠다. 차이가 있다면 쌀가루를 쪄내면 푸토이고 구워내면 비빙카가 된다. 푸토는 떡에 가깝고 비빙카는 파이나 케이크에 가깝다. 우리나라 술빵에 비해 좀 더 부드럽고 달달한 맛을 낸다. 판단은 아시아의 바닐라라고 불리는 식물인데, 판단으로 시럽도 만들고 음료도 만든다. 크림처럼 만들어 토스트나 빵에 올려 먹기도 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참 포라는 한국식으로 표현하자면 초콜릿 죽이라고 할 수 있겠다. 팥죽과 같은 비주얼이지만 코코아 파우더가 잔뜩 들어간 맛이다. 형부는 조식으로 나온 참포라도를 보고, 보라카이에도 팥죽을 먹는 다며, 잔뜩 퍼 오셨다가 큰 낭패를 보셨다.


오후 4시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가위바위보를 한다. 그러나, 가위바위보가 무색할 정도로 디저트는 나쁘지 않았다. 가끔 참포라도에 멸치 튀김이 나오는 경우를 빼고는 말이다. 그 또한 소소하지 마 재미있는 추억이다. 시간이 갈수록 간식 타임을 모두 기다렸다. 신나게 소리 지르며 나만 아니면 되를 외쳤다. 그러다가 서로 나눠 먹는 정겨운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우리는 현지식에 한치의 이질감도 없이 금방 적응했다. 모두들 이것저것 맛보려 했고, 짜다 싱겁다 비싸다 이런 말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혹시나 이상하게 느껴지면, 이건 한국식 술빵이라든지, 한국식 찜닭으로 생각하면 된다고 안내해 주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알려주었다. 그러면 이상하게 느껴지더라도 그들의 문화로 이해했다. 알수록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그런 느낌이었다.


보라카이는 있는 동안 우리는 매 순간 서로에게 집중했다. 음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것을 맛보고 새로운 문화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오늘이 다시는 안 올 것처럼 열심히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먹여주며, 서로를 즐거워했다. 그렇게 집중한 건 우리 생애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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