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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만찬은 보라카이 시푸드와 함께

시푸드 파티에서 아버지를 우러러보게 된 여자

이 반장님의 팔순 생일이 지나고 보라카이로 왔지만, 팔순 원정대의 취지에 맞게 축하 파티를 한 번 더 하기로 했다. 음식은 섬나라의 특징에 맞게 해산물 요리로 선택했다. 남편이 현지 여행사 사장님께 추천을 받아, 한국 사장님이 운영하시는 작은 호텔 시푸드 뷔페를 예약했다.


알고 보니, 한국인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해서 유명해져, 미리 예약을 하지 않으면 원하는 날짜에 못 먹을 수도 있는 곳이었다. 사전에 메뉴를 정하고, 예약금을 보내면, 당일 들어온 신선한 해산물을 어시장에서 직접 사 와서 요리해 준다고 했다. 남편은 사전에 타이거 새우, 가리비, 갑오징어, 바비큐 그릴을 주문했다. 그리고 사장님께서 추천 요리로 한 가지 주신다고 했다.

우리는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마지막을 해변가 시푸드 뷔페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른 저녁 우리는 해변가 호텔로 향했다. 뉘엿뉘엿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직원이 해변가에 테이블을 세팅해 주었고,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자리에 앉았다. 예전에 이 반장님께 인생을 80까지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인지를 물었다.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한 듯한 이 반장님은 눈 떠보니, 금방 80이더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생각이 나서 이 반장님께 여쭈었다.


"이 반장님! 팔순은 지났지만 오늘 이 잔치를 맞이하여 한마디 하시렵니까?"

"한마디는 무슨 한마디여! 아빠는 뭐 한 거 아무것도 없고, 다 엄마하고 너희들 덕분이다!"


부끄러움 많은 이 반장님이 모두가 있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말씀하셨다. 그만큼 이 순간이 감회로워서 하신 말씀이었을 것이다.


45년생인 이 반장님은 그 시대의 아버지들이 그랬듯,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열심히 살았다. 둘째 아들로 태어났고, 아버지는 강제 징용으로 생사조차 알길 없었다.  졸지에 과부가 된 할머니는 세 아들을 먹여 살리려 장사를 하러 다녔고, 입에 풀칠하기로 어려웠다고 했다. 아들 중에 가장 공부를 잘했지만, 끝까지 공부할 수는 없었다. 서울로 상경하여, 어렵게 자리를 잡은 이 반장님은 닥치는 대로 일했지만, 늘 힘들었다고 했다. 70년대 후반 중동 건설 붐이 일면서, 사우디에 가서 일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그동안 모은 돈으로 정착해서, 빠듯하지만 제법 안정적인 생활을 이어가다 IMF가 왔다. 대기업들도 줄줄이 도산하는 시절이라, 자영업자였던 이 반장님도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하던 일을 접고 다시 현장으로 나가 계속 일해야만 했다. 이 반장님은 현장 관리소장으로 70까지 일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말하는 이 반장님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그동안 이 반장님의 삶을 진지하게 느껴 본 적이 없었다. 이 반장님을 생각하면, 우리가 너무 좋아하고, 열심히 살았다 이 두 가지가 전부였다. 그런데, 오늘 이반장님의 멘트에서 뭉클한 무언가가 느껴졌다. 그것은 우리 딸들과 이 반장님 간의 특별한 유대이기도 했다. 이 반장님은 존재만으로 우리에게 위안을 주는 사람이다.


잠시 후, 예약한 음식들이 차례로 나왔다. 제일 먼저 타이거 새우가 나왔다. 버터 갈릭과 스파이시 칠리 두 가지 버전으로 나왔다. 살면서 그렇게 큰 새우를 본 적이 없었다. 크기가 랍스터에 견줄만했다. 비주얼에 놀란 나의 혓바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누구에게 먼저 권하기도 전에 본능적으로 타이거 새우의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신선하고 쫀쫀한 새우살이 마치 랍스터와 같은 맛이었다. 왜 추천하는지 알 것 같았다.


남편이 좋아하는 갑오징어는 튀김으로 나왔고, 가리비는 치즈 갈릭 구이로 나왔다. 갑오징어를 한입 베어 물으니, 산미구엘이 절로 당겼다. 산미구엘 맥주로 입을 살짝 헹구고, 가리비에 있는 치즈가 굳기 전에 호로록 삼켰다. 짭조름하면서 달달한 가리비 구이가 마음에 들었다.

다음으로 칠리크랩이 나왔다. 그런데, 남편이 직원을 불렀다. 우리는 알리망오 크랩을 시킨 적이 없다고 말했다. 직원은 주방에 확인을 하겠다고 했다. 알리망오 크랩은 필리핀에서 잡히는 게 종류 중에 하나이다. 예전에 세부에서 알리망오 크랩을 먹은 적이 있는데, 소스는 참 맛있었지만, 살이 적고 내장이 비린 경우도 있어서 이번에는 메뉴에 추가하지 않았다.


주방에서 인심이 좋게 생기신 사장님이 나오셨다. 그러면서 추천 메뉴를 해달라고 하셔서 알리망오 칠리크랩을 내놓았다고 하셨다. 남편은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별로 내켜하지는 않았지만 알리망오를 먹었다.

그러고는 내게 조용히 말했다.


"여보! 나 알리망오 좋아하네~!"

"어머머! 진짜 이렇게 맛있는 거였어? 우리 알리망오  좋아하네~!"

부창부수라고 했던가? 우리는 잠시 말을 잊은 채 알리망오에 집중했다. 이 밖에도  치킨 이나살과 포크 이나살이 나왔지만, 시푸드의 맹공에 갈 곳을 잃었다. 또한 서비스로 나온 깡콩은 우리의 느낌함을 달래주었다. 다들 정신없이 신나게 보라카이 시푸드에 매료되어 식사를 했다.

시선을 돌려 해변가를 보니, 보라카이 석양이 사라지고 있었다. 아이들은 바닷가로 나가서 소리 지르며 발차기를 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닷가를 뛰어다니고,  사진을 찍었다. 이 반장님과 정여사가 커플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먼저 요청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표정은 어색했지만 환한 미소에서 만족감이 느껴졌다. 더할 나위 없이 잊을 수 없는 보라카이의 밤이 지나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딸아이가 내게 와서 말을 걸었다.


"엄마! 나는 그냥 물에서 발차기만 하고 놀았는데, 핸드폰이 꺼졌어!"


맙소사! 우리의 이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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