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카이 정서에 빠져든 여자
아침에 바닷가에 나가 이 반장님과 산책을 했다. 그러면서 이 반장님께 보라카이가 어떤지를 물었다. 처음에는 그저 좋다고 말씀하셨다. 며칠 후 보라카이가 좋냐고 재차 물었다. 이번에는 대답이 길어졌다. 음식은 생각보다 맛있어서 좋았고, 해변가와 풍광 덕분에 매일 걸을 수 있어서 좋았고, 필리핀 사람들이 친절해서 좋았다고 하셨다.
맞다. 보라카이 현지인들은 참 친절하다. 단순히 외국인에게 보내는 환대 또는 휴양도시 특유의 환대와는 다른 느낌이다. 외국인들을 보며, 친절하게 웃어주고 인사해 주고, 도와주려 한다. 한국의 정 문화와도 비슷하다.
어느 날 오후, 가족들과 디몰(보라카이 대표 오픈 몰) 해변가를 걷고 있었다. 호객 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우리에게 한국말로 말을 걸었다.
"여기 마사지 싸요! 한 시간에 500페소"
"호핑 안 해? 여기 호핑 진짜 싸! 진짜!"
남편이 세부에서 배운 따갈로어를 외쳤다.
"왈라 빼라!(돈 없어!) 까뿌이!(힘들어 또는 귀찮아)"
이 말을 듣고 주변에 있는 모두가 재밌다며, 박수를 친다. 그러고는 자신의 나라말을 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고맙다는 한마디에, 필리핀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를 단박에 느낄 수 있었다.
그러다 오래전 만난 보라카이 친구와의 일화가 생각났다. 우리에게는 페르난도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우리의 첫 호핑 가이드였다. 우리는 그와 급속도로 친해져 보라카이에 올 때마다 그와 함께했다. 친분이 쌓이면서 그가 어릴 적 이야기를 해줬다. 그가 어릴 때는 보라카이가 유명한 휴양지가 아니었기에, 외부인만 보면 도망갔다고 했다. 보라카이가 급속도로 관광객이 많아지면서, 원주민들은 빠르게 변화하는 기류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그간에 일들이 이해가 갔다.
예를 들면, 여행사를 통해서 선착장 픽업을 신청했는데, 픽업을 나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날짜와 시간을 헷갈려 안 나온 것이다. 또, 마사지 시간이 한 시간이라고 하면, 2시에서 3시가 한 시간이라는 건 아는데, 2시 45분에 시작한 마사지가 3시 45분에 끝나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마트에 가서 계산을 할 때, 320페소가 나오면 500페소와 동전 20 페소를 자연스럽게 내밀었는데, 동전 내면 계산 헷갈린다고 다시 돌려주었다. 처음에는 휴양지가 이러면 안 되지 하다가, 페르난도의 말을 듣고 그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그 순박함이 더 정겹게 느껴졌다.
그때부터 보라카이와 깊은 교감을 나눴던 것 같다. 나는 가족들에게 페르난도와의 일화들을 말해주며 보라카이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했다. 팔순 원정대도 그런 간단한 맛보기 같은 교감을 나눈 듯했다. 보라카이는 그런 매력이 더해져 꼭 다시 오고 싶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