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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카이 선셋세일링-바닷가에서 지는 해를 바라본다는 건

선셋을 유독 좋아하는 여자


보라카이 해변은 석양이 유독 아름답다. 석양 빛을 홀린 듯 바라보다 보면 태초에 이 바다에서 우주 만물의 창조가 있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또, 붉은 석양이바다 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천지창조가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이다. 선셋세일링 (sunset sailing)은 천지창조의 보라카이 석양을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액티비티이다.

선셋세일링은 해 질 무렵에  커다란 돛단배가 달린 보트를 타고, 바다의 유속을 이용해 무동력으로 바닷가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친환경적이면서 낭만 적인 액티비티이다. 17년 전 처음 남편과 선셋 세일링을 했을 때는 지는 석양 무드(mood)에 취해, 남편에게 뽀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사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선셋세일링은 세월이 지남에 따라 진화했다. 돛단배의 낭만이 보트의 낭만으로 바뀌었다. 선셋 보트라고 해서 다소 의리의리한 2층 보트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가 스노클링도 하고, 칵테일도 마시고,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지는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선셋세일링은 없어지지 않았다. 선셋 세일링의 단점은 그물망 의자가 불편하고, 우기에는 파도가 많이 쳐서 앉아 있으면 물싸대기를 맞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렬하고 멋진 돛단배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면,  합성 사진 같은 풍경에 누구나 포토그래퍼가 된다. 또, 친환경의 낭만을 즐길 수 있어 여전히 인기 있는 액티비티 중 하나이다. 보라카이는 선셋 세일링과 선셋 보트가 공존한다.)


가족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선사하고 싶은 우리는 선셋보트를 예약했다. 오후 4시 2층 보트를 타고 바다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배가 움직이자마자 DJ가 신나는 음악을 틀어주었다. 선상에는 간단한 칵테일 바가 차려졌고,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국인들이 많았다. 필리핀 사람들 말고도,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사이키 조명이 화려한 클럽 분위기라 아이들과 부모님이 걱정이 되었다. 우리는 시끄러운 1층을 벗어나 2층으로 부모님 자리를 옮겨드렸다. 원래는 한국인들의 비중이 더 많았는데, 그날 한국인은 우리뿐이었다. 보통 선셋 보트는 한국인 말고도 여러 나라 사람들이 많았기에 색다른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밖에 없어서 다른 가족들이 다소 위축되는 분위였다.

시간이 지나 우리는 바다에 뛰어들었다. 아이들은 바다 수영을 하면서 신이 난 나머지 선상에서 뛰어내렸다가 올랐다가를 반복했고.  남편은 2층 선상에서 바다로 뛰어내리고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다. 식구들도 처음에는 멈칫하더니, 2층에서 뛰어내리며,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다. 부모님은 그저 바다 한가운데를 보는 것 만으로 좋다고 하셨고, 섬 주변을 열심히 둘러보셨다. 시원한 바람과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경치를 배경으로 이 반장님과 사진을 찍었다. 현란한 사이키 조명 때문에 사진은 엉망으로 나왔지만, 그것마저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소소한 둘만의 데이트처럼 말이다.


"이 반장님?! 바다 앞에 있으니까 시원하고 좋지? 진작 왔으면 어땠나 그런 생각 들어?"

"아니! 거~ 뭔 소리! 지금 같이 있으니까 좋아! 바람도 시원하고!"

이 반장님과 포토촬영 후 아이들에게 갔다. 아이들은 아직도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있었는데, 직원들이 파란 불가사리를 잡아다 주었다. 아이들은 신나서 파란 불가사리를 들고 소리를 질렀다. 불가사리를 보트에 올려놓고  다시 또 바다로 나가자고 소리쳤고, 남자 어른들에게 함께 하자고 바다로 끌고 들어갔다. 파도가 높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다소 힘들었지만, 불가사리 덕분에 신나는 바다를 더 즐겼다. 서서히 해가 뉘엿뉘엿 지평선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보트로 올라가 음료수를 한잔하려고 했던 순간, 형부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형부! 왜요? 무슨 일 있으세요?"

"아! 나 수영복 주머니에 핸드폰을 넣고 뛰어내렸네!"


세상에나 이럴 수가 핸드폰과 함께 바다 수영을 하다니! 이 소식은 금방 언니에게 전달되었고, 부부 사이에 알 수 없는 기류가 흘러, 우리는 뒤로 물러서 다른 자리로 피했다. 그렇게 형부의 핸드폰은 보라카이 바다에서 수명을 다했다. 형부와 언니의 마음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이런 이벤트를 두 번이나 만들어준 형부에게 고마웠다. 다소 밋밋할 뻔한 선셋 보트가 덕분에 웃음으로 장식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우리는 2층에서 조용히 외쳤다.


"형부~~~ 감사해요~ 덕분에 또 이벤트가 생겼네요~ 지루할 틈이 없어요~"


정여사는 질끈 눈을 감았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번졌다. 우리 모두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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