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긴 한데 안 갈 수 있나?
3개월간의 아프리카여행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남미에 가기로 했다. 겨울옷을 가지고 다니기 힘든 여행자라서 여름만 쫓아서 다니려고 했는데 여름 유럽을 즐기기 위해서 가까운 유럽이 아니라 대서양을 건너 겨울이 막 시작 되려는 남미에 가게 되었다. 남미 대부분의 나라가 스페인어를 쓰는 걸 알고 대항해 시대의 스페인의 위엄을 느끼며 남미를 여행했다.
지리상 가장 가까운 곳이 브라질이었다. 여러 정보들을 찾아봤을 때 보통 페루-볼리비아-칠레-아르헨티나-브라질 (페볼칠아브) 순서로 여행하는 동선을 많이 간다고 하는데 우리는 브라질부터 시작해서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세계여행을 하면서 국가 간의 관계에 대해서 새롭게 알게 된 신기한 사실들이 있다. 남아공에서 브라질을 가는 비행 편이 앙골라를 경유했는데 둘 다 포르투갈의 지배를 받았던 적이 있었다. 남미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쓰는 나라가 브라질이다.
남미를 여행하면서 알게 된 점 중에 한 가지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여행지에서는 현지인들도 어느 정도 영어로 소통이 가능했었는데 남미는 달랐다. Hello나 Hi가 아니라 올라(Hola)로 인사했고 숫자도 영어로 원, 투, 쓰리가 아니라 스페인어로 우노, 도스, 뜨레스였다. 포르투갈어를 쓰는 브라질을 포함해서 모든 남미국가에서 스페인어를 사용하다 보니 또 다른 공용어가 필요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메리카 대륙을 여행하며 영어다음으로 가장 배우고 싶은 언어가 스페인어가 되었다.
브라질은 삼바와 축구, 열정의 나라라고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준비를 많이 했다. 입국을 했던 상파울루와 그다음 여행지 리우데자네이루의 치안이 케이프타운 못지않게 위험하다는 수많은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을 경험하고 약간 용감해진 우리 부부에게 잊지 못할 많은 경험을 하게 해 준 2024년 4월의 브라질 여행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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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선과 일정
브라질의 면적은 우리나라의 85배이고 세계에서 5번째로 큰 나라이다. 조금씩 근처 도시를 옮겨 다니는 것이 불가능했다. 우리는 일단 상파울루로 IN 했고 포즈 두 이과수에서 OUT 하는 계획을 세웠다.
상파울루에서 리우데자네이루까지는 버스로 6시간이 걸린다. 브라질을 대표하는 두 대도시를 경험하고 강물이 너무 맑아서 천연수족관이라고 불리는 보니또를 가기 위해서 캄포그란데라는 도시로 이동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슬리핑 버스를 타고 상파울루를 경유해서 캄포그란데까지 꼬박 30시간이 걸렸다. 캄포그란데에 도착해서 다시 렌터카를 빌려 3시간 30분 이상을 더 달려 보니또에 도착했다.
그리고 아르헨티나와의 국경에 위치한 포즈두 이과수 (Foz do Iguaçu)로 16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이동해 이과수 폭포를 보았다.
3주 넘게 여행을 했지만 너무 땅이 넓어서 포기한 것들이 많다. 수도인 브라질리아와 사막에 고여있는 물이 비현실적인 렌소이스 사막, 지구의 허파라는 아마존은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브라질을 여행하는 우리나라 국민은 90일간 무비자로 체류가 가능하다. 우리 부부는 브라질의 5개 도시에서 23박 24일을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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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
대도시인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에서는 치안 때문에 번화가에 숙소를 잡았다. 관광객이 많고 경찰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서 걸어서 갈수 있는 가까운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우버를 타고 다녔다. 그리고 남미여행의 여행자들이 대부분 이용하는 버스를 타고 도시 간 이동을 했다. 버스회사도 많고 좌석타입에 따라 가격도 다양하다.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루에서 예수상이 있는 리우데자네이루까지 6시간이 걸렸고,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캄포그란데까지는 30시간이 걸렸다. 약 1,400km의 여정은 중간에 상파울루를 경유하는 경로였다.
캄포그란데에서는 렌터카를 빌려 보니또로 향했다. 세 시간 반정도를 달려 도착한 보니또에서는 다양한 액티비티가 있었다. 대부분 시내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셔틀을 이용해야 하는데 직접 운전을 하고 다녀서 편했다.
다시 캄포그란데로 돌아와서 약 700km 떨어져 있는 포즈 두 이과수까지는 16시간이 걸렸다.
이동시간이 워낙 길어서 2층짜리 슬리핑버스가 기본인데 180도로 누울 수 있는 Leito좌석은 일찍 매진되는 듯했다. 세미 레이토 (Semi-Leito)좌석의 120도와 180도는 큰 차이가 있었다. 가능하다면 180도 누울 수 있는 좌석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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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이모저모
우리는 세계여행을 하면서 대부분 숙소에서 밥을 직접 해 먹었기 때문에 우리가 방문한 모든 나라의 마트를 경험했다. 브라질의 마트에서는 독특하게 많은 종류의 식용꽃을 팔고 있었다. 먹어 보지는 않았지만 플레이팅할때 미관상 올려두는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 크기면 안성재셰프도 납득할만한 맛도 날 것 같았다. 냉동실에는 아마존산 물고기들이 있었다. 처음 보는 거대한 물고기들이 신기했다.
상파울루에서는 관광을 위해 돌아다니면서 동양인인 우리를 특별히 쳐다본다거나 사진요청을 받은 일이 전혀 없었다. 길거리에 동양인도 많이 보였는데 알고 보니 일본사람들이었다. 일본외에 일본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곳이 바로 상파울루라고 한다. 약 50만 명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덕분에 세계여행 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회를 먹을 수 있었다.
일본인이 많이 살아서 그런지 일본인 거리도 상파울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가 되었다. 맛있는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많았다. 한글도 심심치 않게 보여서 반가웠다. 봉헤찌로라고 코리아타운도 있는데 저녁을 먹으려고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많이 한산한 분위기였다.
브라질은 한때 국민의 80%가 포르투갈의 식민지배의 영향으로 가톨릭교였다고 하는데 20세기 이후 개신교가 급속도로 성장하여 현재는 가톨릭 못지않은 신자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셀라론 계단 근처에 있는 메트로폴리타나 대성당을 갔었다. 원뿔 형태의 독특한 형태의 성당이었다. 지름 104미터, 높이 68미터에 수용인원이 2만 오천명이나 된다고 한다.
밖은 더웠는데 안에 들어오니 서늘함이 느껴졌다. 걸어서 갈만한 거리라고 생각해서 걸어왔는데 지금 정보를 찾다 보니까 인근지역이 우범지역이라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내가 느낀 서늘함이 무서움이 아니라 시원함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상파울루 (São Paulo)
상파울루는 브라질뿐만 아니라 남미전체를 넘어, 남반구에서 인구수도 가장 많고 경제규모도 가장 큰 도시라고 한다.
우리는 상파울루에서도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라는 파울리스타 대로 (Av. Paulista)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오분만 걸어 나오면 대로가 나오는데 매주 일요일마다 차 없는 거리로 운영되고 있었다. 상파울루 도착 다음날이 마침 일요일이어서 여러 가지 이벤트도 구경하고 재미난 공연들도 즐겼다. 길거리에서 우리나라 노래가 들려서 가보았는데 남미를 강타했다는 K-POP 열풍도 느낄 수 있었다.
상파울루 미술관
(Museu de Arte de São Paulo)
파울리스타 대로에는 1968년에 개관한 상파울루 미술관 있다. 브라질에서 빼놓고 얘기할 수 없는 유명한 건축가 리나 보 바르디 (Lina Bo Bardi)가 설계한 건물이다. 이탈리아 출신으로 브라질에 넘어와 자신만의 건축스타일로 해석한 모더니즘 건축작업을 선보였다.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세지마 가즈요 등 오늘날 유명 건축가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사후인 2021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커다란 네 개의 기둥이 건물을 받치고 있는 형태로, 필로티에는 마켓이 열려 많은 사람들에게 개방되어 활성화되어있는 활기찬 공간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던 약 10미터 높이의 필로티 하부는 중간에 기둥이 없는 구조로 답답하지 않고 개방감 있는 공간이 되었다. 기둥 간 거리가 70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이비라푸에라 공원 (Parque Ibirapuera)
다음날 야심 차게 찾아간 이비라푸에라 공원의 OCA는 월요일 휴무였다. 서울숲의 세배가 넘는 규모의 공원인데 브라질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가의 작품들이 있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휴무일을 생각 못했다. 다음날 리우데자네이루로 가는 버스를 예약해 놔서 오늘이 상파울루의 마지막임을 아쉬워하며 외관을 둘러보았다.
마치 우주선이 땅에 내려앉은듯한 모습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출신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오스카 니마이어 (Oscar Niemeyer)가 상파울루 시의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이비라푸엘라 공원의 설립당시 설계한 건물 중 하나이다. 지금은 여러 전시가 열리는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든 직각이나 직선, 단단함이나 유연하지 않은 것에는 관심이 없고 내 조국의 산맥이나 구불구불한 강, 대양의 파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자유롭게 흐르는 감각적인 곡선에 이끌린다는 니마이어의 건축철학을 미리 공부하고 건축물을 마주하니 기념비 조각가라고 비판받는 게 이해가 될 만큼 과감했다.
마치 메롱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입구의 캐노피가 왠지 상파울루 거리에서 마주친 나무의 형태가 연상되었다. 다음번 여행 때 방문할 브라질리아가 더욱 기대되게 만들어준 시간이었다.
리우데자네이루 (Rio de Janeiro)
상파울루에서 여섯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해안도시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했다. 한때 나폴레옹에게 본국을 빼앗긴 포르투갈 왕국의 수도였고 브라질리아 이전의 브라질 수도였다. 아름다운 해안선을 따라서 레스토랑과 바들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있다. 그중 약 4km에 걸쳐 하얀 모래해변이 펼쳐진 코파카바나 해변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해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길거리에선 펠레부터 호나우두, 호나우딩요, 네이마르까지 다양한 브라질 국대 유니폼을 팔고 있다. 해변에서는 남녀노소 할거 없이 모두 공을 차고 있다. 저기 저 소녀는 나보다 트래핑을 잘한다. 저 할아버지는 무거운 몸에 비해 너무 날렵하시다. 축구 못하는 브라질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진짜 전 국민이 공을 다루는 게 익숙해 보여서 부러웠다.
미래박물관 (Museu do Amanhã)
사진 찍을 맛이 나는 스페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 (Santiago Calatrava)가 설계한 건물이다. 이후 여행지인 미국과 유럽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작품들을 많이 한 건축가이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미래박물관은 기둥이 없는 켄틸레버 구조 지붕이 유명하다. 광장 쪽으로 75m, 바다 쪽으로 45m 양쪽으로 거대한 지붕이 뻗어 나와 있는데 그 밑에서 바라보면 하얀색의 구조물들에 압도당한다.
1인당 약 7,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실내로 들어오면 온통 하얀색이라 공간이 더 높고 넓어 보인다. 사선벽과 곡선으로 이루어진 공간은 영화에서 보던 우주선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바다 쪽은 커다란 수공간을 배치해 큰 구조물이 물에 떠있는 듯하다. 노을이 질 때까지 머물렀는데 하루 종일 긴장하고 돌아다녀서 그런지 여유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리우데자네이루에 간다면 누구나 좋아할 만한 공간으로 꼭 한번 가보기를 추천한다.
셀라론 계단(Escadaria Selaron)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빼놓을 수 없는 관광지 중의 하나이다. 칠레 출신 호르헤 셀라론이라는 사람이 이 동네에 자리 잡고 215개의 계단에 세계각지에서 모은 타일들을 붙여 현재의 모습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은 관광객들로 붐볐지만 인근지역은 많은 범죄가 발생하는 우범지대라고 하니 항상 주의해야 한다.
우리나라 태극기 문양의 타일도 있다고 해서 힘들게 찾았다. 관광객이 워낙에 많아서 자리 잡고 사진 찍기도 힘들다. 슬럼화된 지역에 변화를 주고자 시작한 작업은 재정문제로 타일수급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세계 각국의 여러 사람들이 보내준 타일로 끝내 완성될 수 있었다고 한다.
건설폐기물을 재활용하여 엄청난 공원을 만든 인도 찬디가르의 넥 찬드공원이 생각났다. 그들이 시작한 작은 변화의 노력이 수많은 사람들을 이끌어 즐겁게 만들어주는 공간이 되었다.
구세주 그리스도상 (Cristo Redentor)
파리의 에펠탑이나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처럼 도시를 생각하면 생각나는 랜드마크가 있다. 나에게 우리나라의 정반대 편에 있는 리우데자네이루의 그리스도상은 도시를 넘어 브라질을 대표하는 랜드마크였다.
그리스도상은 높이 약 710m의 코르코바두 산 정상에 있는데 차량이나 트램을 타고 올라갈 수 있다.
약 20분 정도 트램을 타고 올라가면 세계 3대 미항 중 하나인 리우데자네이루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조금 더 걸어 올라가면 예수상의 뒷모습을 먼저 보게 된다. 예수상이 바라보고 있는 도시의 모습과 등지고 있는 도시의 모습과 환경이 정반대여서 “예수상은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한다. 예수상이 바라보고 있는 도시는 바다가 보이는 부촌으로 재력도 있고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인 반면 등지고 있는 동네는 파벨라라고 불리는 슬럼가인데 마약을 사고파는 갱단들과 경찰의 총격전이 벌어지기도 하는 무서운 동네이다.
예수상을 만들 때 이러한 도시의 모습까지 염두에 두고 지은건 아니겠지만 현재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그들이 절대 뒤돌아봐주지 않는 예수상을 바라보며 종교적으로 구원받지 못한다고 느낄 수밖에 없을 거 같아 안타까웠다.
전체 높이 38m의 예수상을 정면에서 제대로 보고 기념사진도 남기려면 오전에 방문해야 한다. 오후에 가면 역광이라 신비로운 모습이 연출되지만 누구신지 알아보기가 힘들 수도 있다. 오후 네시쯤이었는데도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리우데자네이루의 밤 (With Music)
상파울루부터 리우데자네이루까지 며칠 지내다 보니 생각보다 볼거리도 많고 관광객들이 많은 곳은 그래도 치안이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다. 숙소 바로 근처에서 리우의 밤문화를 즐길 수 있다는 숙소 호스트의 정보를 듣고 bip bip이라는 삼바 펍에 갔다.
밤 9시쯤 도착했는데 아직 뮤지션들이 도착하지 않았다. 음악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각자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까지 먹고 하나 둘 모이는 느낌이었다. 좌석은 뮤지션들을 위한 자리고 관객들은 옆에 서서 보거나 펍 밖에 서서 기다린다.
주인장 할아버지가 한쪽에서 손님들이 알아서 셀프로 가져간 술들을 체크한다. 우리도 맥주를 냉장고에서 꺼내서 멀리 있는 주인 할아버지한테 신호를 보내니 알겠다고 하신다. 현금으로 나갈 때 지불하는 시스템이다.
밤 열 시가 되니 어느새 사람들이 북적인다. 뮤지션들도 할아버지한테 맥주를 확인받는 걸 보니 직접 사서 마셔야 하나보다. 테이블을 꽉 채운 사람들은 저마다 한 가지씩 악기를 들고 공연이 시작됐다.
관객들과 뮤지션들이 있다. 악기들이 있고 흥도 있다. 악기 비슷한 것들도 있고 자유로움도 있다. 기타를 치는 사람과 탬버린을 치는 사람, 접시를 두드리는 사람도 있다. 그냥 동네 아저씨들끼리 모여서 자기들끼리 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마시고 있는 맥주캔을 두드리면서 슬쩍 참여해도 자연스럽게 어울렸을 거 같다.
리우데자네이루는 브라질 전통음악인 삼바를 베이스로 한 보사노바가 탄생한 곳이다. 그래서 보사노바를 즐길 수 있는 펍들이 많은데 우리는 그중 한국인들 리뷰가 있던 리틀 클럽이라는 곳에 밤 8시 공연을 보러 갔다. 글을 쓰며 정보를 찾으려고 구글지도를 봤는데 지금은 폐업했다고 해서 안타까웠다. 근처에 다른 펍들도 많아서 맥주 한잔 하면서 분위기 있는 보사노바를 즐길 수 있다.
보니또 (Bonito)
다음 여행지인 보니또는 스페인어, 포르투갈어(포어)로 예쁘다는 뜻이다. 가기 위한 여정이 쉽진 않았지만 보니또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보면 바로 수긍이 가는 지명이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상파울루를 거쳐 캄포그란데라는 도시로 버스를 타고 30시간을 이동했다. 우리의 세계여행 중 가장 오래 이동한 동선이었다. 남미는 워낙 땅이 넓기 때문에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슬리핑버스를 주로 이용했다. 브라질에서는 Leito, 아르헨티나에서는 Cama 좌석이 누워서 갈 수 있는 좌석이었다. 편하게 갈 수 있는 대신 좌석이 금방 매진된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아서 120도만 누울 수 있는 Semi Leito 좌석에 앉아 30시간을 이동했다. 이미 나미비아 빈트후크에서 남아공 케이프타운까지 24시간 이동 경험이 있었기에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탔는데 중간중간 쉴 수 있었던 휴게소 시설과 음식이 더 괜찮아서 그런지 나쁘지 않은 컨디션으로 캄포그란데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참고로 기사님은 중간에 교대하신다.
캄포그란데 터미널에 도착해서는 바로 그다음 행선지인 포즈 두 이과수까지 가는 버스표를 구입했다. 5일 정도 후였는데도 완전히 누워서 갈 수 있는 Leito좌석은 이미 매진이었다.
캄포그란데부터 보니토까지는 약 세 시간 반정도 걸리는 거리인데 보니토에서의 기동성을 위해 렌터카를 빌리기로 했다.
보니토에는 수많은 액티비티 프로그램이 있다. 우리는 4월에 방문했지만 성수기에는 원하는 투어를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해서 30시간의 이동 중에 여러 업체랑 컨택해서 견적을 받아보았다. 여전히 소통의 어려움이 있어 결국은 보니토에 도착해서 여러 업체를 돌아다니며 발품을 팔아 예약했다.
우리는 여러 리뷰들을 참고해서 이틀에 걸쳐 세 개 프로그램을 예약했다. 개인적으로 천연 수족관과 수쿠리강 투어는 별 다섯 개, 앵무새 투어는 별 세 개다.
천연수족관은 수영장에서 스노클 교육을 잠깐 받고 정글숲을 헤치고 들어가 맑고 맑디 맑은 강물에 들어가 물고기들을 구경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물 밖에서 봐도 너무 투명한 수질이어서 바닥까지도 너무 잘 보이는데 직접 물에 들어가서 보면 팔뚝만 한 물고기들이 바로 옆에서 함께 헤엄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수쿠리강 스노클투어도 맑고 맑디 맑은 수쿠리강을 약 2km 정도 둥둥 떠다니며 스노클을 즐기는 프로그램이다.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고 떠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다양한 물고기들과 헤엄칠 수 있다. 우리가 했던 투어는 맑은 강의 수질을 유지하기 위해서 입수 전에 선크림이나 모기퇴치제를 바른다거나 뿌리지 못한다. 빌려주는 슈트가 긴팔이 아니라서 모기에 엄청 물렸다.
다음날 부라코 다스 아라리스라고 불리는 남미대룩에서 가장 큰 싱크홀에 사는 앵무새들을 구경하는 투어에 갔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인에게 들었는데 셔틀을 이용하는 투어는 개인차를 가지고 움직이는 우리보다 두 시간 일찍 숙소에서 출발한다고 한다. 여유 있게 움직이는 우리에게 렌터카는 좋은 선택이었다.
정글을 지나며 신기한 동식물들에 대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다. 깊이 약 105미터에 폭이 약 300미터 다다르는 싱크홀에 접근하자 엄청 큰 앵무새들이 짝지어서 날아다닌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일평생 부부가 한쌍으로 다니는 홍금강앵무라는 종이 었다.
투어를 일찍 마치고 어제 물놀이의 여파를 온몸으로 느끼며 브라질에서 먹을 수 있는 별미 악어고기를 먹으러 레스토랑을 찾았다. 닭고기랑 비슷한 흰 살이고 맛도 비슷했다. 우리는 대부분 숙소에서 직접 요리해서 한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는데 이렇게 뭔가 특별한 음식이 있을 때는 꼭 도전을 했고 리뷰의 도움을 받아서 거의 실패하지 않을수 있었다.
말라이라와 뎅기
따로 자세한 글을 올렸지만 보니토의 모든 투어를 마친 이때부터 와이프의 컨디션이 급격히 나빠졌다. 다행히 상황이 더 악화되기 전에 캄포그란데라는 큰 도시로 이동을 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피검사를 통해 말리리아 진단을 받고 5일 후에 또다시 뎅기 진단을 받았다. 당시 브라질은 아마존 지역에서만 말라리아가 발병되고 있었다. 대도시인 상파울루와 리우데자네이루만 여행했고 모기도 물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아마도 아프리카에서 물린 모기가 원인이었던 거 같다. 10일 동안 고열에 시달리며 말로만 듣던 병을 몸소 체험하며 이겨낸 와이프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
포즈 두 이과수 (Foz do Iguaçu)
나중에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와이프가 고백했다. 세계여행 중 처음으로 한국행을 생각해 본 시점이 이때였다고 한다. 말라리아와 뎅기라니 그럴 만도 했다. 다행히 체력을 조금 회복하여 이과수 폭포까지 16시간이 넘는 버스이동을 해낼 수 있었다.
세계 3대 폭포는 모두 두나라의 국경에 위치하고 있다. 그중 이과수 폭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과 맞닿아 있는데 자연스럽게 우리의 다음 행선지도 아르헨티나로 정해졌다. 세계에서 가장 유량이 많은 폭포라서 빅토리아 폭포보다도 더 웅장하게 느껴졌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아르헨티나에 위치한 엄청난 폭포가 한곳에 집중되어 쏟아지는 이과수폭포의 하이라이트, 악마의 목구멍을 내려다보는 길이 폐쇄 되었다는 것이다.
사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아프리카에서 본 빅토리아 폭포가 더 감동적이었다. 3대 폭포를 모두 본 사람들은 웅장한 이과수를 첫 번째로 꼽는 경우가 많다는데, 날씨와 분위기는 물론이고 물의 색깔이나 관람 포인트들도 빅토리아 폭포를 즐길 때가 더 좋았다. 아르헨티나 사이드의 악마의 목구멍도 보지 못했고 흙탕물이었던 물의 색이 큰 영향을 준거 같다.
이과수 폭포를 마지막으로 브라질 여행이 끝났다. 본격적으로 땅이 넓은 남미여행을 시작하면서 장거리 이동이 시작되었다. 동선과 컨디션을 체크해서 적절하게 비행기랑 버스를 타고 이동할 계획을 세웠다.
인도에서 뎅기에 한번 걸려서 고생해서 밥도 잘 챙겨 먹고 컨디션을 잘 챙기면서 다닌다고 신경 썼는데,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말라리아와 뎅기에 걸려 건강상 큰 문제를 겪고 나니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세계여행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낸 우리 자신을 칭찬하며 안도할 수 있었다.
다음 여행지는 남미여행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아르헨티나다.